II. 길 위에서
캄보디아 하면 앙코르와트가 떠오른다. 그런데 사실 앙코르와트는 거대한 앙코르 유적(Angkor Ruins) 중 하나일 뿐이다. 앙코르 유적을 제대로 보기 위해 여행 오기 전 EBS에서 기획한 <신들의 땅, 앙코르>란 다큐멘터리와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이란 책을 보았는데, 그냥 오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앙코르 유적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남은 기록이 부족해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니, 나 같은 보통 사람은 그저 그 유적에 얽힌 간략한 소개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즐길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몇몇 유적들은 그 독특함과 아름다움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야외에 몇 분만 서 있으면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였지만, 3일 패스를 구입해 너무 재미있고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앙코르 유적은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융성했던 크메르 제국의 유산이다. 발견된 경위가 놀라운데, 19세기 프랑스 박물학자인 앙리 무오가 발견할 때까지 (실제로는 그보다 10년 전 프랑스 신부인 브이유보에 의해서도 발견되었는데, 묻혀버림) 몇 백 년 동안 밀림 속에 묻혀있었다. 처음 발견한 사람들은 유적의 크기와 특히 불상의 크기에 압도당해 겁을 먹을 정도였다고...
툭툭(Tuk Tuk) 타고 앙코르로 고고씽~
캄보디아에서 이 툭툭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캄보디아에서 툭툭 타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툭툭이 너무 좋다고 한다. 나도 백배 공감!)
3일 동안 나와 함께 다녀 준 고마운 나의 툭툭 드라이버 코살. 말이 없어 되게 조용한 줄 알았는데, 마지막 날 고마운 마음으로 점심을 대접하면서 같이 이야기해보니 쾌활한 사람이었다. 프놈펜에 살 때 한국어도 6개월 정도 공부했는데, 읽고 쓰기는 되는데 말하는 게 어렵단다. 한국사람들이 캄보디아에 사업하거나 관광차 많이 오니까 한국어 부지런히 배우는 게 좋을 거라고 이야기하자, 사업하러 오는 한국 사람들이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한다고 한다. 물론 코살의 경험에서 한 이야기이니까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코살이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앙코르 톰 남문 입구. 여기서부터 앙코르 톰의 관광이 시작된다. 앙코르톰은 앙코르 유적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유적지이다. 크메르제국의 전성기인 자야바르만 7세가 왕국의 수도로 지은 곳이다.
수많은 툭툭, 관광버스, 오토바이, 그리고 사람으로 북적북적.
고푸라(석탑으로 된 출입문) 위 사면상이 자비로운 미소로 사람들을 맞아준다.
앙로크톰의 남문 옆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
남문을 통과하기 전 이 아름다운 해자에 넋을 놓는다. 역사적 사실이나 그 기능을 몰라도 그저 이 풍경 하나 만으로도 아름답다.
사면이 얼굴 상으로 조각되어 있음. 이 사면상들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자야 바르만 7세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는 데서 관음보살이라는 설도 있고, 자야 바르만 7세 본인이라는 설도 있다.
앙코르톰 내에 있는 바이욘(Bayon) 사원의 전경.
멀리서 보면 이렇게 돌무더기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사면상들이 다양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좋아했던 바푸온(Baphuon) 사원. 쭉 뻗은 진입로 다리가 신비로운 곳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내게는 앙코르 톰의 대표 격인 바이욘 사원보다 바푸온이 더 매력적이었다. 기나긴 복원공사로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2011년에 내부가 공개되었다고 한다. 바이욘이 남성적이라면, 바푸온은 여성적인 느낌으로 섬세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입구의 다리에 서서 사원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다.
따프롬(Ta Promh). 이 곳 역시 방문객들에게 인기 있고 유명한 곳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영화 <툼 레이더>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거니와,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유적을 감싸고 있는 기이한 모습에 넋을 잃게 된다. 과거 인간이 점령했던 공간을 이제는 자연에게 내 준 듯한 모습이다. 이 곳에 있으면 어쩐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는 그런 곳이다.
따프롬의 전경.
이끼 쌓인 사원유적의 보존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이 또한 독특하고 아름다운 매력을 선사한다.
이곳은 스라스랑(Srah Srang)! 왕실의 목욕탕으로 지어진 곳이라 하는데, 목욕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호수이다. 자야바르만 7세의 궁녀가 3,000 명이었다고 하니 그들이 모두 들어가 목욕하려면 뭐 그 정도 크기의 목욕탕은 있어줘야 되지 않겠나 이해는 된다. 지금은 동네 주민들과 여행자들에게 아름다운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오래도록 앉아서 쉬고 왔다. 그 땡볕에... ^^;
이곳은 다께오(Ta Keo). 매우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더불어 좁고 가파른 그 계단을 오르며 다리가 후들거리는 체험을 하는 것도 다께오의 매력. 이 곳을 조각을 하기 전 단계에서 공사가 중단된 미완성 유적이라 별다른 장식이 없다. 그래서 매우 심플한데, 그 점이 다른 곳과 차별적인 매력을 선사하는 것 같다.
친구 둘이 쉬며 도란도란 여야기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앙코르 유적 투어의 하이라이트!! 바로바로 그 유명한 앙코르와트(Angkor Wat)
앙코르 유적의 정수라 꼽힐 만큼 건축학적으로도 훌륭하고,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에는 그 위용에 압도당하고, 두 번째로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홀리고, 세 번째로 앙코르와트가 제공하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묘한 신비로움에 빠져들어 자꾸만 가고 싶고, 가면 오랜 시간 있고 싶게 만드는 그런 곳이다.
서쪽 입구 중 한 곳에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
창이나 문을 통해 풍경을 끌어오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미학인 줄로만 알았더니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것만이 옳다는 아집과 독선을 버리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법임을 잠시 생각해 본다.
앙코르 유적에는 원숭이도 많다. 특히 이 앙코르와트에는 유독 많았던 기억이...
쉬기 안성맞춤인 뒤뜰. 잠시 앉아 명상에 잠겨 본다.
옆쪽으로 난 오솔길. 사원 관람도 좋지만 이런 길을 산책할 수 있는 것도 앙코르와트의 매력 포인트.
일출을 보기 위해 두 번째 방문한 앙코르 와트. 그러나 이날 구름이 너무 많이 껴 일출 보기 실패!!
2시간밖에 못 자고 심지어 세수도 못하고 왔는데, 아쉽지만 덕분에 앙코르와트에 두 번이나 올 수 있어 좋았다.
앙코르 유적을 보며, 누구나 그러하듯이 신비로움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으니 더더욱 그럴 테다. 그래서 그런지 앙코르 유적을 보며 이것저것 상상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앙코르 유적 관리의 허술함이었다. 일부 복원 및 공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나, 소수에 불과하고 저런 식으로 방치해도 될까 하는 그런 걱정이 들었다. 무엇보다 수많은 방문객들이 유적 위를 올라타고, 유적을 만지는 등 체험을 허용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라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허용이 되기에 나도 유적 계단을 오르기는 했지만, 이러다 앙코르 유적들 무너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졌다 하더라도, 과거 하루에 몇몇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해 성스럽고 조심스럽게 올라가도록 설계된 사원의 계단이 수많은 관광객들이 부주의하게 올라가며 발생하는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유네스코에서는 하루빨리 전면 폐쇄하고 복원 작업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앙코르 유적을 돈벌이 수단으로 밖에 캄보디아 정부와 앙코르 유적 관리 회사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듯하다. 만약 폐쇄하거나 체험을 허용하지 않으면 관광객들이 서운해 할 수 있겠지만, 인류 최대의 유산 중 하나인 앙코르 유적을 오래도록 보존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 듯하다는 생각을 당시 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언제 다시 가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