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radio #1 - 우음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어느 겨울, 잠시 숨을 고른다. 긴장되는 몸을 의식적으로 풀어보기도 하는데, 꽁꽁 언 몸과 마음을 쉽게 녹일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음악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연일 뉴스에서는 이례적인 추위 소식을 전하며 잔뜩 겁을 준다. 몸이 움츠려 들면 마음은 한없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겨울은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계절임엔 분명하다. 나를 가로막는 수십 가지의 핑곗거리와 이유. 당장의 따뜻한 달콤함이 익숙한 하루하루. 그렇게 겨울은 추위로부터 사람을 쉽게 길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발걸음이 자꾸 밖으로 향하는 이유는 겨울이 주는 뜻밖의 소중함 때문이다. 종종 마주했던 익숙한 장소도 생경하게 느껴지고, 세상의 소음을 날카로운 바람이 휩쓸어 가기도 한다.
한파주의보 소식이 있던 날 두툼한 패딩 점퍼 하나 툭 걸치고 서울 근교에 있는 우음도를 찾았다. 지평선 끝을 마주하며 걷는 순간,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던 무기력과 묶은 체증이 한순간에 상쾌함으로 바뀌었다. 색 바랜 억새풀 사이를 걸으며 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던 시간. 이 길을 걸으며 나와 함께했던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한다.
라디오헤드의 정규 9집 <A Moon Shaped Pool>(2016)의 비사이드 트랙으로, 라디오헤드의 명확한 세계관과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곡. 우리가 줄곧 접했던 친숙한 보사노바의 리듬을 이렇게까지 긴장을 하며 들을 수 있는지 무척이나 새로웠던 경험을 한 곡 이기도 하다. 톰 요크(Thom Yorke)는 평소 다양한 문학을 접하며 그 글을 쓴 작가의 표현 방식에 본인의 감정을 투영하여 곡을 쓴다고 하는데, 이 곡을 만들 때 어떤 감정이었을까, 꽤 궁금해진다. 한 없이 쓸쓸해지다가도 한 없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곡. 이 곡은 4분 14초의 기승전결이 명확한 라디오헤드 버전의 짧은 인생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미국의 Soul, R&B 뮤지션 앨런 스톤(Allen Stone), 그의 음악적인 장치와 요소는 화려하진 않지만 소울 풀한 그의 음성과 리드미컬한 음성이 절묘하게 섞여 노래를 듣는 동안 자연스레 고개가 까닥이게 된다. R&B 장르에서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그의 청량한 보컬 덕분에 익숙한 리듬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목소리를 대체할 아티스트는 잘 떠오르질 않는다. 그를 '맑은 소울'을 가진 매력 있는 아티스트로 부르고 싶은 이유가 명확히 생겼다. 리듬에 맞춰 걸음을 걷다 보면 왠지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전주에서 시작되는 보컬 폴 스미스(Paul Smith)의 목소리에서 몽환적인 무드가 느껴지는 곡. 흔히 음악 시장에서 말하는 '곡 감별사'들은 곡의 앞부분 몇 초만 들으면 이 곡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판가름이 난다고 하는데, 곡의 신선함에 있어 꽤 인상적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2004년에 싱글 앨범 [The Coast Is Always Changing]으로 데뷔하여 2005년 첫 앨범이 3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BBC 등의 미디어에서 크게 회자되기도 하였다. 2021년 하반기 유럽투어 일정까지 모두 완료하고, 출격 대기 중인 이 밴드를 한국에서 하루빨리 만나보고 싶다.
가사를 꼼꼼하게 챙겨보게 되는 밴드. 그렉 곤잘레스(Greg Gonzalez)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과거 경험을 통해 느꼈던 감정을 은유적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가사를 통해 상황과 장면을 투영하여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 곡을 들으면 과거의 생각이 몽글몽글 떠올라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하고, 때론 말랑말랑 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인생과 완벽하게 닮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공감하고 싶다. 호기심과 공감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넘나들어 마음을 간지럽힌다. 언젠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세상마저 고요한 날, 뽀드득뽀드득 거리는 새 하얀 눈을 밟으며 듣고 싶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아티스트 앤서니 라자로(Anthony Lazaro). 옅은 미소를 짓게 하는 이 곡은 햇살 가득한 어느 오후의 여유로운 일상이 떠오른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내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완벽한 하루를 그려본다. 의미 없는 가십거리에도 웃기도 하고,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다. 삶의 여유가 필요할 때, 잠시 이 곡을 들으며 '쉼표'를 그려봤으면 한다. 가만히 흘러가는 시간도 누군가에겐 의미 있는 하루가 될 테니. 삶은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엄청나게 화려한 것도 아니니, 그저 커피 한 모금에 말끔하게 위로받길.
글/김환기 (고아웃 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