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무언가 넣고 싶다.
괜히 씹고 싶고 이왕이면 따뜻하고 조금 부드러운 종류라면 좋겠다. 탄수화물이 꼭 포함된 거라면 더 좋겠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잘 구워 먹고 수박을 엄청 많이 먹었는데 9시가 채 되지 못해서 입안에 무언가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핑계는 입이 깔깔해서.
미니단호박 5개를 받아왔다. 전자레인지에 살짝만 돌려서 쪄서 먹으라고 하셨지만
귀찮아서 전자레인지용 찜기로 대충 돌렸다.
빡빡한 그 맛이 내가 참 좋아하는 맛이다.
스콘도 참 빡빡해서 좋아한다. 버터가 잔뜩 들어있는 입안 꽉 차는 빵을 우유랑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마음까지 흐뭇하다.
무언가 당겨도 무엇이 당기는지 모르게 된 지 몇 년 된 것 같다.
분명했던 취향과 선호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영역으로 밀려났다.
그리 중요한 영역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찼기에.
영화를 보러 갔다. 정말 오랜만의 영화였는데 주차는 몇 시간이 되는지, 주차장은 얼마나 혼잡한지, 영화관까지 실내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뭐든 다 일(work)이 되어버린 나를 보니 MBTI에 F가 있는 자로서 실망스러웠다.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즐길 줄 모르는 그런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너무 오랜만이라 촉이 왔다.
"나한테 청첩장 줄 거야?"
친구가 웃었다.
결혼은 하는데 결혼'식'은 안 한다고 했다.
아. 너무 멋지다.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
스드메도 식장비용도 아깝단다. 축의금은 다 축하해 주려고 줬던 거라 돌려받고 싶지도 않단다.
"그래? 나는 혹시 다시 하게 된다면 더 휘황찬란하게 결혼식을 해볼 생각이었어."라고 소신발언을 했다.
하지만 조금 늦더라도, 돌아가더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친구가 정말 멋있었다.
시댁에서는 많이 언짢아하셨다고 한다. 왜 안 그러겠어. 어른들에게도 결혼식은 큰 행사이니.
그래도 그냥 귀 막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 돈을 거기에 쓰고 싶지 않다고.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었다면. 과거는 그렇다 치고
나에게 앞으로 그런 용기가 있으려나?
지긋지긋한 유교사상에 나이 먹을수록 더 지쳐가면서
그것에 저항할 생각도 못하는 나는 정말 뼛속까지 기성세대.
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코어근육을 만들어서
언젠가는 내 방식대로 저항할테다.
동영상에 취해가는 흐름 속에서
글자를 읽는 것이 더 좋아지는 나다.
글자를 읽거나 쓰고 나면 그동안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던 조각들이
몇 개씩 연결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기분 마치 똑똑해지는 느낌.
꽤 괜찮게 살고 있어.
내게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대하며 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