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개월간의 시간을 함께 했던 우식이의 수학과외선생님이 오늘 마지막 수업을 했다.
아이와 선생님의 인연이었지만
나와도 각별했던 선생님이었다.
한참 어린 동생 같기도 했고
내가 다음번에 태어나면 저렇게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갓생을 사는 모습도 보여줬다.
초등학교 수학을 가르치는데 뭐가 그리 진심이 많은지
자신이 배우는 교육학 학문에서 새로운 접점이라도 발견하면
나에게 신이 나서 우식이의 모습을 해석해 주기도 하고
본인의 삶에 지쳐
'어머니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며 뿌엥 거리기도 했다.
이미 어제부터 나는 이 이별 때문에 마음이 영 불안했다.
삼켜지지 않은 모래가 입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뱉어야 할 말들과 흘리지 말아야 할 눈물 사이에서 이미 고민 중이었다.
친한 친구들이 우울증 약을 먹으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누군가와 헤어질 때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성향은
나이가 먹어도 바뀌지 않았다.
혼자 사는 샘이 아침에 과외 올 때는
우식이용 아침식사보다 더 그럴싸 한 브런치를 차려주며 내가 오히려 더 좋아했고
아무래도 과일은 많이 못 먹겠지 싶어 제철과일을 사면
맛있는 부분 꼭 챙겨서 간식으로 들여보내곤 했다.
내 아이를 사랑의 눈으로 봐준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나도 선생님을 늘 사랑의 눈으로만 봤던 것 같다.
자신의 본분에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곧 임용고시를 보고 진짜 선생님이 될 사람이라 그런지
우식이 책상도 한 번씩 정리하는 법을 알려주고
재밌는 보상 내기도 해서 아이랑 공부 규칙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 본인도 즐거워 보였다.
결국 나의 이별에 대한 태도는
20년 전처럼 측면으로 이별을 맞이하자는 고집을 유지하며
선생님 선물을 사러 돌아다니지도
사둔 카드에 편지를 적지도 않고 오늘이 왔다.
선생님이 과외를 하는 동안
일부러 집을 청소하고 정신을 산만하게 굴었다.
아이 과외 선생님과 헤어지는데 몰입해서 눈물부터 흘리는 나를 보여주는 건
어쩐지 창피했다. 그리고 전혀 집중되지 않은 상태에서 쾌활하게 카드를 써 내려갔다.
예전과는 다르다. 오늘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 나는
믿음직스러운 어른이고 싶었다.
꽤 괜찮은 인생을 사는, 좋은 상담자가 되어주는
마흔 살의 어른이
이별의 순간 뿌엥 하고 울어버린다면
아름답지 않을 것 같았다.
'나잇값을 하자.'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나의 슬픔 마음은 삼키고 태연하게 응원을 전해주자.
그게 조금이라도 성숙한 어른이 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가볍게, 마지막이 아닌 듯 인사를 하러 들어가는데
선생님은 이미 휴지를 이만큼 쌓아두고 펑펑 울고 있었다.
이 죽일 놈의 F들....
남이 울 때 안 울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나도 휴지를 붙잡고 두 눈구멍을 막았다.
하지만 이내 너무 많이 우는 선생님을 보니 되려 정신이 들었다.
선생님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그 우는 와중에도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감사했고 2년 동안 정말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우식이도 너무 잘 크는 것 같아서 기특하고
어머니와도 또 만나고 싶다고. 놀러 와도 되냐고 물었다.
아. 너무 예쁜 마음에
나는 정말 그 순간 선생님을 감싸줄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감사했다고. 이렇게 소중한 인연이 될 줄 몰랐다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제든 놀러 오고 살다가 힘들면 상담카톡도 하고
동네 언니 하나 알았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연락하라고.
나는 정말 진심이라고.
되도록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눌러
그렁그렁한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울지 않으려고 마음을 몇 번이나 환기시켰다.
그리고 선생님이 떠나고
우식이도 외출한 집에 혼자 앉아서
창밖을 보는데
눈물이 난다. 마음이 훵하다.
사람은 왜 만나고 헤어져야 할까. 의미 없는 물음이나 던져보다가
마음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