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공,
몽골 가기 전에 수십 번은 들은 듯하다.
이름에 '푸르-'를 달고 있길래 기대하며 궁금해했는데 차일 줄이야...
근데 몽골에서 보고 함께 하니 나름 이름이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푸르공 없는 몽골 여행은 뭔가 김 빠진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타고 있는 동안 내가 몽골에 있다는 걸 잊지 않게 해 주더라.
그러다 알아 버렸다. 푸르공의 기묘한 존재감을_
('푸르공'이 본명인 줄 알았지만 몽골에서 불리는 이름일 뿐이라고. 본래 이름은 러시아 자동차에서 만드는 '빵덩어리'라는 뜻의 '부한카'라고. 1965년에 군용으로 처음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튼튼.)
그 많던 각자의 빵빵한 캐리어, 뚱뚱한 백팩, 며칠을 책임질 물과 식재료, 사람 사람들을 모두 품었다.
자리는 대략 조수석에 한 명 내지 두 명 가능. 가운데에는 좌석이 두 줄로 되어 있는데 한 줄에 두세 명씩(작은 사람이라면 네 명까지) 가능. 두 줄 중 한 줄이 역방향인 차도 있음. 제일 뒤쪽에는 짐을 실을 수 있게 되어 있음.
기사 분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차의 드라이버 빌게 아저씨는 음악 듣는 걸 즐기는 듯하다. 운행 중에 노래 들을 일이 많았다. 심지어 영상까지 틀어 놓아서 뮤직비디오까지 보게 되었다는! 노래도 영상도 우리나라 70~80대 가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가요가 중간중간 국악을 넣기도 한 것처럼 몽골 가요에도 몽골 악기가 쓰인 듯. 그 소리들이 몽골 초원과 잘 어울렸다. 나중엔 노래가 안 나오니 허전한 느낌마저…
초원에서는 어디에서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발 닿는 곳이 모두 화장실이 될 수 있다.
근데 성별이 다른 경우나 큰 것일 때는 난감해진다.
누가 다가오나 망을 봐야 할 상황도 생기곤 한다.
푸르공 너머에 일 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
망보는 것도 아닌데 남 일 보는 걸 지켜보는 사람도?
비포장도로에서는 어떤 길을 마주칠지 모른다. 푸르공은 물도 바위도 언덕도 문제없다는 듯 거뜬히 넘어가더라. 가끔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은 큰 물과 경사를 만나도 표정 그대로.
웬만해서는 이들을 막을 수 없다.
일부 기사 분들은 정말 경주를 하듯이 밟는다. 그런 때의 덜컹거림은 웬만한 놀이기구 저리 가라다.
레이스와 같은 달리기 중간중간에 푸르공은 초원의 푸르름을 꺼내 주었다.
트여 있는 초원의 한복판에서 묵어야 할 때, 일부 뾰족한 바람이 우리를 향하는 경우가 있다.
나란한 푸르공들은 문지기처럼 서서 모난 바람은 다가오지 못하게 해 주었다.
(사진에서 오른쪽 끝의 네 대. 참고로 왼쪽 끝 텐트는 나의.)
초원 위에서는 푸르공이 가는 곳이 길이다.
누군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길을 만들기도 한다.
망설임 없이 막힘 없이 달리는 모습이 꽤나 자유로워 보였다.
자꾸 미루지 말아야지 싶었다. 주저도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