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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대한캥거루 Oct 16. 2024

젊은 꼰대의 뇌리에 박힌 늙은 부자의 6가지 인생조언

젊음이 재산일까 물질이 재산일까.


나는 대기업 점포개발 부서에서

부동산 계약 업무를 하는 12년 차 월급쟁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신입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나도 어느덧 직장 내 '고인물'이 되어버렸다.


작년부터 점포 입점을 약속드렸으나

아직까지 출점을 못해 공실 상태인 건물이 있다.


공실 상태로 인해 이 어르신이 놓친

기회비용은 작은 사이즈가 아니다.


저희 입점을 기다리지 마시고

다른 세입자를 구하셔라고 했지만


기다리는 동안 월세 달라고 안 할 테니

조급해말고 업무 보라고 하신다.

소위 경제적 자유를 오래전에 이루임대인이다.

(마음 불편해서 일이 안된다.. 따흑)


감사하면서도 마주하기가 죄송스럽다.


나는 과거 20대 신입 시절엔

업무 중 대면하게 되는 나이 드신 분들께서

우리가 젊고 건강한 시절에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시는 게 참 듣기 싫었다.


이미 평안한 삶에 안착한 기성인들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린 청춘을 자위하고자

젊은이 앞에서 쏟아내는 무용담 같아서이다.


기댈 곳이라고는 백화점 뒷골목에

위치한 월세 한 칸에 소형 중고차 한 대가

다였던 20대의 나는,


물려받을 재산도 딱히 없는 처지였기에

그나마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서 나오는

월급이면 족했다.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면,

얼른 퇴근 후 사람 북적한 시내로 나가 

이자까야 테이블에 동료들과 나란히 앉아

맛들어진 안주에 찐하게 소주 한잔 하는 상상이나

예쁜 여자친구가 생기면 하고 싶은 것들,

여자 만나는 방법이나 고민하곤 했다.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런 얘기가 재밌다.

좋은 현상인지 모르겠다.


.

.


개인적으로는 죄송한 분이다.


같은 출신 군 후배라고 마주치면

 사주시고 커피 사주시고 하시는데

나보다 연세가 무려 45세가 많으시다.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한다고 좋아해 주시는데

난 왜 자꾸 도망 다니고 있는가.



여하튼 오늘 이 분과 나눴던 얘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주저리 기록해 보려고.


@pixabay.com


어르신께서는 본인 아버지 얼굴을 모른다.


강릉에서 태어났다고 하셨다.


본인이 어느 정도 자라서 철들기 전

어릴 시절에는 가난한 집에서 정말 개처럼

살았다고 한다.


출생과 동시에 가난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만사 욕심이

많으셨고 공부도 곧 잘하셨다고 하셨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 돈을 훔쳐

주문진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주문진에서 춘천 가는 버스를 탔거든.

늦은 시각 춘천에 도착해 갈 곳이 없어서

어느 시내 상가 계단에서 잠이 들었는데

어떤 아저씨께서 깨우셨고 신문 배급소로 데려가셨어"


@Pixabay.com

"거기에서 약 1년 동안 신문 배달을 하면서
배급소에서 먹고 잤어"


이제 한참을 지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돈을 훔쳐 집을 나온 것은
분명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은 행위였지만

그때가 아니었다면 시골에서 글자만 아는

바보가 되었을 거라고 혼자 웃으셨다.


학교가 너무 가고 싶어 매일같이 교문 앞을

서성였다고.


본인 일생의 은인이신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께서

처음에는 사연을 듣고 호통을 치시더니

강릉 집으로 연락하셨고,

학교 입학과 동시에 본인 집으로 데려가셔

방 한 칸을 내주셨다한다.


"당시 나는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삼 년 동안 신문 배달을 하면서
고등학교 학비를 대며 자취를 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어"


"대학시절 내내 남의 집 가정교사를 하며
메이드를 했는데, 정말 서러웠어."


하대 받으며 지낸 당시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덕에 학비를 낼 수 있으셨다고.


이후 학군 사관으로 대학 졸업 후

장교 임관을 하셔서 군 생활을 하셨고,

군생활 이후에는 외교부로 들어가

외교관 생활을 하셨다.


오늘 나눴던 짧은 대화 중에 기억이 나는 것

몇 가지만 적어보려 한다.

머리가 나빠서 다 기억은 안 나지만 말이다.


1. 다른 사람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 아니야.

다만 본인 결정에 책임과 최선은 스스로의 몫이다.


2. 사람은 배신의 동물 이긴 하나 돌이켜보면

스스로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야.

정주영 회장이 대선 나왔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반기를 들었던 사례를

얘기하셨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그 과정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을 것이다.

보답은 못할 수 있으나 반기를 들어서는 안된다며.


본인 고려대 재학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학생회장 활동했다고 한다.


데모로 인해 정상적 취업이 힘든 그를 데리고

키워 준 사람이 정주영이라는 말을 하셨다.

믿거나 말거나.


3. 사람은 확실히 운때가 있다.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야. 아무 생각도 없는데

찾아오는 운은 없어.

때가 오면 더 강한 동기가 생긴다.

운이 왔다는 것을 본인이 캐치를 할 수 있어야 .


4. 팔십이 넘으니 할 것이 없어.

여유가 있고 시간도 많은데 젊을 때는 일만 하고,

지금은 혼자가 돼서 재미가 없는 사람이 되었어.


이것저것 배운 것이 많이 없다며 비즈니스 삼아

취미 삼아서 골프를 상당히 오래 쳤는데 이것도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허리가 아파서 안 친지

2년 정도 되었다고 하신다.


정적인 취미와 동적인 취미, 그리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취미를 젊을 때부터 꼭 하라고 하셨다.


개인적으로는 수석, 골동품 수집을 하고 계신

수석을 구하러 충북으로 주말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지금 본인에게는 취미이자 새로운

낙이 되어서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고 하심.


5. 1974년 일본에 갔다가 일본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언제쯤 저런 것이

일상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나라는 정말 대단한 나라야.


이어서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시며

요즘 젊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게 어렵다 보니

너무 염세적인데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6.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팔십이 넘어서 보니 세월이 정말 빠르다.

젊을 때 편하려 말고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금전적,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일상과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좋은 인연과 좋은 취지의 모임을 오래도록

유지해 나가라고 조언하시며.



십 년 전이면 정신교육에 고통스러워하며

허벅지를 꼬집고 있었을 텐데,

나도 조금씩 익어가나 보다.



임대 계약서 날인은 어르신이 본인 집으로 가서

자고 하셨다.


집은 넓으나 안이 춥고 싸늘했다.

주로 지방에 가있고 자주 오지 않는다 하셨다.


내벽 한편에는 가족사진으로 가득 차있었다.


커피를 내려 주신다.


새삼 인생은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이라는 걸

이 분 뒷모습 보고 느꼈다.


업무 중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우리의 만남은 각자의 인생 안에서

짧은 인연으로 스쳐지날 수도 있지만

여운이 있을 것 같다.


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서류 날인을 끝냈다.


나이가 들어도 매 순간이 인생의 젊음임을

짧은 대화 속에서 깨닫고

삶이란 시간이 흐르며 외로움과 친해지는

방법을 깨닫는 과정임을 느끼며

다음 일정으로 향했다.


앞으로 젊은 날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사람들을 만나며,

어떻게 내 나이 듦에 대해 받아들이고 

흐르는 듯이 살 것인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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