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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Oct 08. 2023

위스키가 한국에서만 유독 비싼 이유

주세법 등 위스키 관련 법령 살펴보기

술을 제대로 마셔본 것은 대학교 때였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모임에서 한 잔

동아리 모임이 끝나고 한 잔

미팅에서 한 잔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한 잔


시간이 흘러 회사에서도 온갖 이름의 회식으로 한 잔


대학교 때 철없이 객기로 마시던 술도, 신입사원의 패기로 마시던 술도 사실은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술을 맛으로 마셨다기보다는 분위기에 따라 마셨던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술이라고 하면 소주나 맥주뿐이었는데, 제게 있어 소주나 맥주는 CH3CH2OH 화학 물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쓰디쓴 술을 멀리 하게 되었고, 어느새 저는 '알쓰(알코올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들과 함께 스키장을 갔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 매서운 바람을 헤치면서 스키를 탔고, 저녁에는 낮에 얼어붙은 몸도 녹일 겸 바비큐를 해서 먹었습니다. 


친구들은 술을 참 잘 마시고, 자주 마시고, 좋아합니다.


친구 중 하나가 일본 여행에서 경험했다며 마트에서 산 '짐빔 위스키'에 '진저에일'을 섞어 '하이볼'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더군요.


소주의 쓴맛도 아니고, 맥주의 시큼한 맛도 아닌

달달한 목 넘김 끝에 위스키의 향긋한 향이 살며시 내려앉았습니다.


처음으로 술이 맛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후각에 민감한 편인데, 소주에는 알코올 냄새만 있을 뿐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향긋한 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위스키는 참나무(오크)로 만든 캐스크(통)에 장기간 숙성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과 향이 위스키에 담겨 다양한 풍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위스키 캐스크 - 출처: Food & Wine




이후 '위스키'는 가끔 마시는 술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대중적인 위스키인 짐빔, 잭다니엘, 조니워커 블랙 등을 샀습니다. 

그런데 조니워커 위스키 중 가장 고급라인의 '조니워커 블루'를 마실 기회가 생겼는데, 기존에 마셨던 대중적인 위스키에 비해 쓴 맛이 없고, 따뜻한 스페셜티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의 진한 향이 입안 전체에 확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마다의 아로마(테이스팅 노트)를 가진 위스키에 매료되었고, 발렌타인·발베니·맥켈란·글렌피딕·카발란·야마자키·히비키 등 다른 유명 위스키를 맛보고 싶었습니다.


위스키를 막상 사려고 보니 너무 비쌌습니다. 바로 생산이 가능한 '희석식 소주'나 발효시간이 1~2주 남짓한 '맥주'에 비해서, 위스키는 오랜 숙성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그 맛과 향이 완성되므로 그 오랜 시간에 비례하여 생산원가도 올라가게 됩니다. 생산원가가 비싼 것은 길고 어려운 제조공정으로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외와 비교해보면 한국에서는 2~3배 정도 비싼 가격에 위스키가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왜 한국에서만 유독 위스키가 비싼 걸까요?




술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은 크게 '종가세'와 '종량세'로 구분됩니다.


종가세는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고, 종량세는 수량(양)을 기준을 세금을 매기는 방식입니다. 종가세는 술의 가격이 싸질수록 세금이 작아지고, 가격이 비싸질수록 세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구조이고, 종량세는 술의 가격에 상관없이 양에 비례하여 세금이 증가하는 구조입니다.


주세법 제8조는 주류에 대한 세율을 정하고 있는데, 

맥주의 경우 1킬로리터당 885,700원 (2023년 10월 기준)로, 

증류주(소주, 위스키)류의 세율은 72%로 정하고 있습니다.


주세법 제8조(세율)

① 주류에 대한 세율은 다음과 같다.

2. 발효주류: 다음 각 목에 따른 세율

다. 맥주: 가목의 계산식에 따라 매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세율(100원 미만은 버린다).

3. 증류주류: 100분의 72


주세법 시행령 제7조(세율)

① 법 제8조제1항제2호가목 및 다목에 따라 2023년 4월 1일부터 2024년 3월 31일까지 주류 제조장으로부터 반출하거나 수입신고하는 탁주와 맥주에 적용하는 세율 및 가격변동지수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다.

2. 맥주: 1킬로리터당 885,700원(가격변동지수: 3.57퍼센트)


우리나라는 주류에 대하여 맥주 등에 대하여는 종량세를, 위스키와 소주 등 증류주류에 대해서는 종가세로 혼합하여 과세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영국, 미국,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은 위스키에 대해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비싼 위스키에 종가세로 세금이 72%나 붙으니 한국에서만 유독 위스키가 비싼 것이지요.


① 1리터에 5만원 가치의 위스키와, ② 1리터에 50만원 가치의 위스키에 대해 종량세와 종가세를 비교해보면,

종량세 세금이 1리터에 5천원이라고 가정하면 ①과 ②모두 세금이 5천원이 되어 ①은 5.5만원, ②는 50.5만원이 됩니다.

종가세 세금이 10%라고 가정하면 ①의 경우 5만원의 10%인 5천원이 더해져 5.5만원이 되고, ②의 경우 50만원의 10%인 5만원이 더해져 55만원이 되는 것이지요.  종가세의 경우 둘의 주세 부과 전 가격 차이는 45만원이었으나, 주세 부과 후 가격 차이는 49.5만원으로 상당량 늘어나게 됩니다. 


한국과 같이 종가세를 채택하게 되면 가격이 저렴한 위스키에 비해 가격이 비싼 위스키는 주세가 크게 상승하나, 종량세를 채택한 국가들에서는 비싼 위스키일지라도 주세가 일정하니 가격이 크게 상승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교육세법에 따라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한 교육재정의 확충에 드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세'를 맥주와 증류주(위스키, 소주) 납세의무자에게 부과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교육세율은 30%입니다.


교육세법 제3조(납세의무자)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이 법에 따라 교육세를 납부할 의무를 진다. 

4. 「주세법」에 따른 주세(주정, 탁주, 약주에 대한 것은 제외한다. 이하 같다)의 납세의무자


교육세법 제5조(과세표준과 세율)

①교육세는 다음 각 호의 과세표준에 해당 세율을 곱하여 계산한 금액을 그 세액으로 한다.


또한, 위스키는 대부분 스코틀랜드, 미국, 대만, 일본 등 해외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위스키는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관세법에 따라 '특정국가와의 관세협상에 따른 국제협력관세율'이 적용되어 20%의 관세율이 부과됩니다.


제14조(과세물건) 

수입물품에는 관세를 부과한다.


제15조(과세표준) 

관세의 과세표준은 수입물품의 가격 또는 수량으로 한다.


제73조(국제협력관세) 

① 정부는 우리나라의 대외무역 증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특정 국가 또는 국제기구와 관세에 관한 협상을 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협상을 수행할 때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관세를 양허할 수 있다. 다만, 특정 국가와 협상할 때에는 기본 관세율의 100분의 50의 범위를 초과하여 관세를 양허할 수 없다.

③ 제2항에 따른 관세를 부과하여야 하는 대상 물품, 세율 및 적용기간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마지막으로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상품(재화)의 거래나 서비스(용역)의 제공과정에서 얻어지는 부가가치(이윤)에 대하여 과세하는 세금인 '부가가치세' 10%를 최종소비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부가가치세법 제29조(과세표준)

①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에 대한 부가가치세의 과세표준은 해당 과세기간에 공급한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가액을 합한 금액으로 한다.

② 재화의 수입에 대한 부가가치세의 과세표준은 그 재화에 대한 관세의 과세가격과 관세, 개별소비세, 주세,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및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를 합한 금액으로 한다.


부가가치세법 제30조(세율) 

부가가치세의 세율은 10퍼센트로 한다.




종합해 보면, 위스키 한 병에는 '위스키 값 + 관세 20% + 주세 72% + 교육세 30% + 부가가치세 10%'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10만원짜리 수입 위스키 1병에 납부해야 할 세금은 (1) 관세는 20%인 2만원, (2) 주세는 수입원가와 관세의 72%인 8만 6천원, (3) 교육세는 주세의 30%인 2만 6천원, (4) 부가가치세는 '수입원가+관세+주세+교육세'의 10%로 2만 3천원으로 (5) 10만원 위스키 1병에는 세금만 15.5만원이 매겨져 (6) 실제 소비자 구매가격은 25만 5천원이 되는 것입니다. 약 2.5배 비싸지는 것이죠.

(1) 관세 = 10만원 × 20% = 2만원

(2) 주세 = (10만원 + 2만원) × 72% = 8.6만원

(3) 교육세 = 8.64만원 × 30% = 2.6만원

(4) 부가세 = (10만원 + 2만원 + 8.6만원 + 2.6만원) × 10% = 2.3만원

(5) 세금 합 = 15.5만원

(6) 실제 소비자 구매가격 = 10만원 + 15.5만원 = 25.5만원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과 비교해 보면 위스키의 실제 구매 가격차이는 약 2.2배만큼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행기나 배 값이 비교적 저렴한 일본으로 위스키 쇼핑을 하러 떠나는 이른바 '퀵턴'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관세법 제96조에 따라 여행자 휴대품의 경우 술은 2병까지 관세가 면제되고, 일본의 주세인 종량세 효과까지 볼 수 있기에 좋은 위스키를 한국보다 값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관세법 제96조(여행자 휴대품 및 이사물품 등의 감면) 

①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물품이 수입될 때에는 그 관세를 면제할 수 있다. 

1. 여행자의 휴대품 또는 별송품으로서 여행자의 입국 사유, 체재기간, 직업,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세관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물품


관세법 시행규칙 제48조(관세가 면제되는 여행자 휴대품 등) 

③제2항에도 불구하고 술ㆍ담배ㆍ향수에 대해서는 기본면세범위와 관계없이 다음 표(이하 이 항에서 “별도면세범위”라 한다)에 따라 관세를 면제하되, 19세 미만인 사람(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은 제외한다)이 반입하는 술ㆍ담배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하지 않고, 법 제196조제1항제1호 단서 및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구매한 내국물품인 술ㆍ담배ㆍ향수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에는 별도면세범위에서 해당 내국물품의 구매수량을 공제한다. 이 경우 해당 물품이 다음 표의 면세한도를 초과하여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에는 해당 물품의 가격을 과세가격으로 한다. 




위스키에만 유독 세계적인 형평에 맞지 않는 과도한 주세 의무가 부과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한국은 소주가 주류이고, 소주의 가격은 대다수 서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가격을 올리기 쉽지 않다는 점도 이해됩니다. 소주는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로 묶여 있어 위스키의 주세제도를 변경하면 소주의 가격도 연동되어 변하는 문제가 있는 것도요. 또한, 국내에는 아직 위스키 생산이 활발하지 않아 대부분 수입해 오는 상황에서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면 소주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해외기업의 이윤 추구를 돕게 되는 등 부작용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데는 인구수만큼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4캔에 만원 하는 맥주를 시원한 맛에 자주 마시는데서, 누군가는 소주 한잔의 위로에서,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한잔의 달콤한 와인에서, 누군가는 가끔씩이지만 좋아하는 향을 가득 머금은 위스키 한잔을 마시는데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술에 대한 취향과 다양성을 존중하여, 술 한잔의 위로와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람들이 가격 때문에 소주와 맥주만 선택하지 않도록, 위스키 등 좋아하는 술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도록 주세제도 보완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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