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고 나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레거시(Legacy)로 남겨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는 유독 실패를 많이 하였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의사결정을 하였고, 그 선택의 대부분은 그릇된 판단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라는 우산이 나를 보호해 주길 바랐지만, 현실적으로는 모든 풍파를 직접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세상이라는 전장(戰場)에서 지금까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몸과 마음에는 깊게 베인 수많은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정도 상처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나보다 먼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여 내가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부모나 멘토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저는 그러하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인생의 풍파를 직접 온몸으로 겪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실패와 그릇된 선택에 관하여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이라면 내가 살면서 경험하고 선택해야만 했던 유사한 과정을 겪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저의 오답을 알려주어 적어도 그 선택만은 하지 않도록 일러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기에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고, 설명한다 해도 그 순간에는 쉽사리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또한, 인생의 무수한 변수 속에서 언제나 아이들 옆에 있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을 기록하여 아이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라식수술'이라고 주저 없이 답할 것입니다.
마치 인생의 소용돌이가 운명처럼 저를 그릇된 선택으로 내몰아 쳤습니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평소에는 안경점에서 안경과 (소프트) 렌즈를 맞추었는데, 그날따라 안과에서 렌즈를 맞추면 좋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평소 렌즈를 맞추기 위하여 동네 안과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이 휴일이었고, 동네에 있는 다른 새로운 안과를 갔습니다. 렌즈를 맞추는 의사의 태도는 무례하였고, 의사와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우여곡절 끝에 맞춘 렌즈가 집에 와서 보니 접히면 펴지지 않는 불량품이었습니다.
그렇게 안경과 렌즈 착용에 대해 피곤하고 지겨운 생각이 들자 과거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당시 유행하던 무테안경을 동네 안경점에서 맞추었습니다. 무테안경에는 안경과 귀받침이 나사로 고정되어 있고, 그 나사에는 어떠한 보호장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상적인 무테안경이라면 눈이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위험한 나사에 대비해 보호실리콘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는 법적으로 본다면 제조물책임법상 설계상의 결함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가 끝날 무렵 체육시간에 축구를 하였습니다. 평소에는 안경을 벗고 축구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안경을 쓰고 잘 보이는 상태로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상대방이 찬 공에 얼굴을 맞았고, 무테안경의 날카로운 나사가 왼쪽 눈썹 부위를 심하게 찢었습니다. 얼굴 전체가 덮일 만큼 피가 흘렀습니다. 상처의 아픔보다도 17살 사춘기 소년의 얼굴에 큰 흉터가 생겼다는 사실로 매우 낙담하고 상심하였습니다. 그렇게 안경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문득 대학교 친구가 수능을 보고 라식수술을 받고 안경을 쓰지 않아 너무 만족한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친구가 라식수술에 대해 말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안과에서 잘못된 렌즈를 맞춘 것이 트리거가 되어 과거의 안경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되살아 났고, 그 순간 친구로부터 라식수술에 대한 정보를 접하니, 라식수술을 받아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라식수술을 받기 위해 강남의 유명한 안과를 찾았습니다. 화려한 인테리어 아래에서 의사는 의료법상 설명의무를 위반한 채 라식수술의 좋은 점만을 이야기할 뿐 부작용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할인까지 해준다고 하니 평생 안경과 렌즈를 살 비용보다도 저렴하다고 생각되어 더욱 라식수술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때마침 라식수술이 유행처럼 번져가던 때라 라식수술을 안 하는 것이 이상한 분위기인 점도 결정에 한몫하였습니다.
당시 200만 원 정도의 거금이었는데, 어머니께서도 고등학교 내내 열심히 공부한 아들의 부탁이니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어리석고 어렸던 20살의 저는 절대 해서는 안될 라식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련의 모든 일들이 라식수술을 받는 것을 운명인양 펼쳐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악운과 악연이 겹쳐서 운명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고, 그 소용돌이에서 저는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라식수술 직후 잘못됐음을 직감했습니다. 눈이 너무 건조해서 인공눈물을 달고 살아야 했고, 눈이 너무 약해져서 쉽게 피로해졌고, 밤에는 빛 번짐이 심하여 눈이 부셨습니다. 라식수술 전 한 번도 안과에서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라식수술 후에는 영등포의 유명한 김안과 의원 등 많은 병원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후회와 번민 속에서 시간이 흘렀고, 어느 순간부터는 시력이 떨어지고 난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라식수술을 하고 안경을 쓴다는 것은 라식수술을 받은 후회를 더 키워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억지로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안경 없이 지냈습니다.
매년 11월은 건강검진을 받는 달입니다. 건강검진을 받고 2주 뒤 이메일로 오는 결과지를 아무 생각 없이 열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눈에 이상 소견이 있으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라식수술 후 눈이 약하다는 것을 늘 경계하였기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안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녹내장 초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녹내장은 원인 모를 안압의 상승으로 시신경이 파괴되어 실명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걸리는 병이지만, 라식수술 등으로 인해 눈이 약해진 젊은 사람들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녹내장에 대한 가족력도 없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녹내장의 발생은 결국 라식수술이 주된 요인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20년 전 어리고 이러석은 제가 한 라식수술이라는 선택이 20년 후 지금의 나를 다시 옭아매었습니다.
그때 그러한 선택을 한 제가 너무 원망스럽고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위험한 라식수술을 받은 것이 저만의 잘못이었을까요?
너무 안 좋은 상황이 우연처럼 겹쳐 라식수술을 선택하게 된 건 악연이었다고 치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식수술을 쉽사리 허용해 준 사회가 더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부작용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고객 상대로 라식수술을 하나 해치워서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양심과는 거리가 먼 의사의 이기심과 상술이 문제였을 것이고,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미용목적의 라식수술을 아무런 제한 없이 너무 쉽게 승인하여 쉽사리 시행될 수 있도록 한 정부(보건복지부, 식품의약안전처)가 문제였을 것이고,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는 라식수술에 대하여 무지한 비의료인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장치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국회의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라식수술에 이끌리기까지 그 선택을 저항하지 못할 만큼 너무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안경에 얼굴을 다치지 않았다면,
대학교 때 무례한 의사와 불량인 렌즈를 만나지 않았다면,
친구로부터 라식수술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면,
어머니께서 라식수술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못하게 하였다면,
이 모든 일을 겪고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더불어, 의사가 돈에만 눈이 멀지 않고 젊은 학생에게 건강한 희망을 주기 위하여 라식수술의 부작용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도와주었다면,
정부가 라식수술을 안과의사들에게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면,
라식수술을 시행하는 안과의사를 규제하고 라식수술의 부작용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가 있었다면
이처럼 라식수술을 결정하게 만든 모든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추하며 후회하였습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에 의사나 사회나 법이 아이들을 라식수술의 부작용으로부터 보호해 줄까요?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부모' 뿐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라식수술을 절대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라식수술이 주는 이점보다도 더 큰 부작용이 반드시 생기므로 아이들이 이로 인해 저와 같은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근본적으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감에 따라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고 라식수술 등 미용목적의 수술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이 사실만은 명심했으면 합니다.
신체의 완전성을 해치지 말 것
그러한 미용수술 없이도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계속 일깨워줌으로써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