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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Jul 02. 2024

무소유

짧고 쉽게 쓰는 생각 #3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 법정스님의 <무소유> 중에서 -


미니벨로 자전거를 작년 6월쯤 중고로 구매해서 올해 4월까지 추운 겨울과 비가 오는 날 제외하고는 열심히 출퇴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항상 저를 앞질러 가는 로드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드 자전거의 빠른 속도감으로 사바나에서 치타가 달려 나가는 듯한 멋진 질주를 하고 싶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있는 높은 언덕을 뚜르드프랑스의 산악왕(KOM, King Of Mountain)처럼 더 편하게 오르고 싶었습니다.

로드 자전거만 사면 모든 게 다 만족스러울 것만 같았습니다.


소파에 누워 있다 덜컥 몇 백만 원이나 하는 로드자전거를 16개월 할부로 구매하였습니다.




로드 자전거를 사고 나니 이에 어울리는 페달, 클릿슈즈와 같은 용품과 속도, 파워 등을 표시해 주는 싸이클링 컴퓨터(속도계), 로드용 가방도 필요했습니다.


또한, 로드 자전거를 타보니 자세도 어색하고, 처음 신어보는 클릿슈즈도 불편했습니다. 피팅을 받아봐야 하나 고민도 되고 신경이 계속 쓰였습니다.


로드 자전거로 몇 번 출퇴근을 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자전거 전용 도로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와 함께 도로를 달려야 했습니다. 출퇴근길 도로 위의 차들은 성난 황소처럼 매우 거칠고 위험했습니다.


결국, 로드 자전거는 취미/레저용으로 타기로 결정하고, 기존 미니벨로 보다 더 비싼 브롬톤을 출퇴근 목적으로 추가 구매하였습니다.


그렇게 자전거를 구매 한 순간부터 한 두 달 정도 자전거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자전거 관련 정보를 알아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여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갖고 싶었던 로드 자전거를 샀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미니벨로로도 충분히 즐겁게 출퇴근이 가능했기에 비싼 자전거를 괜히 샀나 후회되는 마음,

실용성이 현저히 떨어져 베란다에 보관만 하고 있는 아쉬운 마음,

욕심을 내어 형편에 맞지 않는 물건을 들여 무리한 할부금을 지불해야 하는 무거운 마음,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자전거가 가지고 싶은 탐욕스러운 마음 등


무엇보다 새 자전거를 사면서 쏟았던 시간과 열정을,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쏟았다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에 집중했다면 하는 기회비용에 대한 아쉬움도 생겼습니다.




자전거만 사면 모든 게 만족스럽고 행복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막상 원하는 자전거를 손에 넣으니 이로 인해 마음이 쓰였고, 결국 자전거얽매이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기다리던 아파트 청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형편보다 분양가가 많이 높게 나왔습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청약을 넣을까 했습니다.

아파트만 청약되면 모든 게 다 만족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형편에 맞지 않는 아파트에 청약된다고 해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무리하면 할수록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기에, 결국 아파트에 얽매이게 되겠지요.


또한, 마음에 여유가 없어 정작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과 가족, 그리고 본업 같은 것들이지요.


당일날까지 많이 고민하였지만 결국 청약을 포기하였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마음이 덜 얽매이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무소유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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