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터 Nov 08. 2023

여행 중독이 사주 때문이라고?

사주로 멘탈 회복하기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사주 탓

"다시는 사주 볼 생각하지 마세요." 인생 첫 사주를 봤을 때 들은 말이었다. 사주로 밥벌이를 하시는 분이라면 모름지기 '30분 가지고 풀이를 할 시간이 부족하니 추가 금액을 지불하시면 더 자세히 말해드리겠습니다.'와 같은 추가 요금 결제를 유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예 다음 소비의 싹까지 잘라버리다니, 본인의 수익도 포기하고 하는 조언이라면 분명 어마어마한 이유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사주 보시는 분이 말하셨다.


"사주가 너무 좋아서 어디 가서 나쁜 소리 못 듣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사주 보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사세요."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었다는 나에게 잘 그만두었다고 남 밑에서 일 못할 팔자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프리랜서로 살아도 본인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분명 나올 거라고 말이다. 좋은 이야기만 해주시기에 사주 풀이라기보다는 멘탈 테라피가 아닌가 생각하고 상담을 종료했었다. 그 후로 실제로 몇 년간 잘 살아오다가 올해 문제가 생겼다. 


행운을 비는 'Cross your finger'


정말 이렇게 안 좋은 일이 한 번에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난리난 한해였다. 한 가지 일이 잘 해결되면 또 다음일이 터지고, 교통사고에 사기까지 당하는 일이 연속으로 터졌다. 악랄한 작가가 시나리오를 쓸 때도 이렇게 까지 주인공을 괴롭히진 않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 여행까지 가지 못하니 스트레스를 풀 창구도 없어졌다. 그러니 두통이 오고 구토하더니 급기야 급성 스트레스 진단을 받고 만 것이었다. 근데 나의 노력으로 닥쳐오는 불행을 막을 수 없으니 답답했다. 스트레스 관리를 하려면 불행의 원인을 막아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할 수 있는 일인지 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분명 사주 보시던 분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다 잘될 거라고 했는데 듣기 좋으라고 거짓말을 하신 건가 그동안의 믿음이 깨져가고 있었다. 


사주 봤을 때 적어두었던 메모를 다시 찾아봤는데 그동안 기억하지 못했던 문장이 적혀있었다. 


"23년에 운이 좋지 않으니까, 그전까지 꼭 잘 쌓아둬야 해요."


그 문장에 너무 놀라 사주 어플을 깔았다. 그리고 2달밖에 남지 않은 올해의 토정비결을 봤다. 거기엔 이 세상에 가장 독한 단어로만 쓰인 악담이 가득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하는 일마다 잘 안되고 돈을 벌어도 모이질 않고 다 공중에 흩뿌려질 거란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주에 지살이 있어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거라고 했다. 지살은 땅에 의한 재앙으로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돌아다녀야 하는 사주. 알고 보니 여행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운명에 의한 것이었을까. 정말 사주가 사람 인생을 예측할 수 있는 건가 사주 맹신론자가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2023년의 운세를 보고 나니 '2024년 토정비결'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 연도도 안 좋으면 급성 스트레스가 만성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겨버렸고, 2024년 운세까지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2024년엔 좋은 이야기 밖에 없었다. 어차피 올해는 2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사주를 맹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일이 안 풀리는 것도 다 사주 탓이고, 여행을 다녀서 돈이 없는 것도 다 사주 탓이라고 말이다. 어차피 2024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니까 조금만 참으면 해결될 일들이었다. 그러고 나니 급성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기 때문이겠지만)


두통 호소



얼마 전에 결혼한 친구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집이었으면 좋겠어?” 


집을 어떻게 꾸밀지 의논하려 물은 것이었고, 그 친구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게 얻은 결론은 디터람스라는 산업디자이너처럼 살고 싶다였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디터 람스'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본인의 손때가 묻은 가구들이 마치 그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한 공간에 오래도록 세월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어서 친구가 나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집이었으면 좋겠냐고. 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서울의 한 호텔


 “매일 다른 집에서 눈을 뜨고 싶다.” 


끝없이 여행해서 새로운 동네를 볼 생각에 눈이 저절로 떠지고. 씻지 않고 모자를 눌러쓴 채 냅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두근거리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이다. 같은 질문에 이렇게 까지 정반대의 대답이 나올 수 있구나 하고 친구와 나는 신기해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살'이라는 게 나의 사주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정착해서 한 공간의 세월을 간직하고 싶은 친구의 사주에 지살이 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떠돌이 사주가 나에게 온 것이 어찌나 다행인가. 물론 여행으로 돈을 써버려서 집은 사지 못하겠지만, 나만의 만족으로 삶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 행운처럼 느껴졌다. '떠돌이 운명을 타고났다니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하고 말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