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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Jul 02. 2019

혼자 하는 여행에 관한 고찰: 덴마크 코펜하겐

혼자 하는 여행은 나 자신과의 여행이었다

 

 '여행'을 하는 일. 여행에는 가까운 국내 여행과, 단거리 또는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을 하는 해외여행이 있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행이 보편화된 시대다. 보통은 주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만, 요즘은 홀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꽤나 많아졌다. 혼자 해외여행을 하게 될 경우 한국에서처럼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온통 낯선 환경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그렇기에 길을 물어보거나 주문을 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맘대로 자유로이 구경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일까. 오늘도 많은 이들은 떨리는 마음을 안고 용기를 내어 혼자 여행을 떠난다.


나 또한 혼자 여행한다는 것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었다. 홀로 훌쩍 떠나는 이들이 그저 멋있게만 보였다. 낯선 저세상을 자유롭게 누비고 걸으며 탐험할 수 있다니. 특히 유럽에 엄청난 동경이 있었던 나는 작년 1학기 교환학생도 독일로 다녀왔고, 학기 중 틈틈이 짬을 내어 근교를 여행했으며 학기가 끝나고는 마저 여행하지 못했던 곳을 다녀왔다. 많은 국가와 도시를 여행했지만 그중 혼자 다녀온 곳은 덴마크와 영국이었다. 홀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멋있어 보이기만 하던 모습 뒤 어떤 어려움과 외로움이 숨겨져 있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혼자 여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여행에서 겪는 수많은 변수와 사건을 혼자서 견뎌내는 일은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던 일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다름 아닌 현실이었다



 7월 초, 독일에서의 한 학기를 마치고 교환학생 생활 동안 친해진 언니들과 동유럽을 여행했다. 동유럽을 다녀온 뒤엔 혼자서 덴마크를 다녀오기로 했다. 내가 살던 도시는 독일 북서쪽 지역이라 야간 버스를 타고 10시간 정도를 달리면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남긴 살벌한 야간 버스 후기를 읽곤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가격이 너무도 저렴했기에 그냥 경험 삼아 타보기로 했다. 그렇게 인생 첫 혼자 여행이 야간 버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누구보다 겁이 많은 나였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험난했던 덴마크 가는 길. 새벽쯤 눈을 뜨고 현재 위치를 확인해 보니 이제 막 국경을 지나고 있었다.


  해가 다 저문 깜깜한 밤 11시 반. 이미 도착해야 하는 버스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커다란 배낭과 캐리어를 들고 버스 정류장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 혼자였던 나는 혹시 내가 정류장을 헷갈린 건지, 티켓 예매를 잘못 한건 아닐까 불안했지만 그냥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12시가 가까워질 즘에야 도착한 버스. 좋은 자리를 잡아 편하게 자면서 가는 내 모습을 상상했던 나는 눈 앞에 펼쳐진 버스 안 풍경에 적잖이 당황했다. 다양한 인종의 낯선 사람들과, 퀴퀴한 냄새와 정신없이 시끄러운 버스 안모습은 내 정신을 쏙 빼놓아 버렸다.


1층과 2층을 왔다 갔다 하며 헤매다 겨우 한자리를 잡고 가방을 꽉 부여잡은 채 자리에 앉았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두 시간 간격으로 정차하는 버스. 자리는 너무 좁아 다리조차 제대로 필 수 없었다. 자고 있는 사이 누군가 내 짐을 훔쳐 가거나 이유 없는 시비를 걸어올까 봐 두렵기도 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겨우 도착한 코펜하겐. 온몸의 뼈가 재조립되는 기분이었다. 집 나오면 고생뿐이다, 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7월의 끝 무렵, 덴마크 코펜하겐의 번화가 거리


 버스에서 내리니 아침 10시. 숙소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였기에, 하는 수없이 중앙역 화장실에서 돈을 내고 들어가 (대부분의 유럽 화장실은 1000원 미만의 돈을 받는다)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그리곤 15분 정도 걸어 예약한 호스텔에 짐을 보관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다행히도 시설은 깔끔했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쓰러지고 싶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과 내일밖에 없었기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단 번화가로 나가보기로 했다.


물병마저도 귀여운 덴마크. 하지만 슬프게도 탄산수를 구매해버렸다.


  목이 말라 마트에 들러 물을 한 병 사고, 레고의 고향에 왔으니 레고 스토어도 한번 구경하고, 디자인하면 북유럽이니 4층 규모의 넓은 디자인 백화점도 구경했다. 그리곤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에 들어가 라테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여행 일정을 정리했다. 쉽게 오기 어려운 북유럽까지 왔는데 어영부영 시간을 때울 순 없으니 다시 한번 노트를 보며 갈만한 곳을 추렸다. 잠시 여유를 갖고 생각을 정리하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북유럽답지 않은 30도가 넘는 엄청난 더위와 강렬한 햇살을 뚫고 거리로 나왔다.



 먼저 덴마크 디자인 뮤지엄으로 이동해 북유럽 디자인의 역사를 보고 가구를 구경했다. 그리곤 배가 고파져 코펜하겐 대학교 근처 북 카페로 향했다. 낯선 사람들 속에 자리를 잡고 수제 버거를 주문 했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물가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 북유럽. 덴마크의 물가 또한 상상 초월이었기에 이렇게 음식점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건 내게 사치나 다름없었다. 다음날엔 독일에서 가져온 빵과 요구르트로 대충 때웠고, 점심은 라테와 빵, 저녁은 핫도그를 먹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식당에서의 식사


 유럽의 음식점에선 한국에서처럼 내가 원할 때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할 수 없다. 대신 자리에 앉아 종업원의 눈을 계속 마주치며 그들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기다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먹은 뒤 계산을 할 때도 같은 방법으로 해야만 한다. 이곳에선 종업원을 이리저리 부르는 일이 무례한 행동이라고 한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혼자서 낯선 외국인들 사이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먹는 일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때로는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주문을 한참 뒤에야 받아주거나, 아예 내 존재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였기에 자유로웠지만,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네


덴마크의 인테리어 디자인 샵 <HAY HOUSE>


이틀간의 여행은 꽤나 자유로웠다. 혼자 여행하면 함께하는 사람의 성향이나 여행 스타일, 컨디션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맞춰서 다닐 수 있다. 배가 고플 때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시 쉬었다 갈 수도 있다. 의견이 달라 부딪힐 일도 없고, 여행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기도 하다. 우연히 걷다가 마주친 포스터 가게에서 예쁜 그림과 사진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카페에 들어가 노트를 펼치고 글을 쓰며 잠시 여유를 갖기도 하고, 운하 근처에 앉아 사람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멋진 풍경을 보면 잠시 멈춰 설 수도 있었다.


운하 근처에 놓여 있던 알록달록한 조형물들


하지만, 여행 내내 나를 졸졸 쫓아다닌 건 외로움과 적적함이었다. 내가 하고 싶고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만 꽉꽉 채워 나만의 맞춤 여행을 할 수 있었음에도 어딘가 심심했다. 당장이라도 내 곁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있기를 바랐고, 누군가 나와 함께였다면 이 여행이 더 재밌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거리를 걸을 때도 그랬다. 멋진 풍경을 바라볼 때면 이 순간을 함께 공유하고 기뻐할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덴마크 여행 마지막 날, 늦은 오후 우연히 지나친 공원에서 필름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큰 스피커에서는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친구 또는 애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풀밭에 드러누워 얘기를 하거나 맥주를 마시며 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혼자였다. 자유롭고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 나는 더욱 외로웠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완벽한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평소 혼자 카페 가기를 좋아하고 혼자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는데 말이다.


혼자 여행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나 보다. 내가 외로움을 이렇게나 많이 탔었나? 어쩌면 반년 동안 낯선 타지 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친구들을 늘 보고 싶어 했고, 자주 한국을 그리워했었기에 더 그렇게 느낀 걸지도 모른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나와의 여행이었음을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마주한다. 여행은 그 사람의 생활을 압축시켜놓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계획을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즉흥적으로 여유롭게 다니는 걸 좋아하는지. 관광지 위주로 보는 게 좋은지, 아니면 숨겨진 장소들을 구경하길 좋아하는지. 주로 어디에 소비를 하고, 어떤 숙소를 선호하는지 등등.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걸 중요시하고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는지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어떤 것에 관심이 많고 무엇을 중요시하며 돌발 상황에선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말이다.


결국, 혼자 하는 여행은 나와 하는 여행이었다. 나를 알아가는 여행인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가기 위해 대화를 하고, 관심사를 공유하고 시간을 보낸다. 마찬가지로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나 또한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모습을 발견했다. 타인과 있을 땐 미처 보이지 않던 나의 성격과 장단점들이 숨길 새도 없이 드러났다. 낯선 이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태평하게 있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 유난히 겁이 많은 사람인 걸 알았고, 좋아하는 것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점이 숨길 수 없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배우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는 것도 다시 한번 느끼면서.



 홀로 떠난 여행은 예상치 못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덴마크 여행 이후 홀로 떠난 영국. 일주일간 묶었던 런던의 어느 호스텔에선 뮤지컬을 보러 매년 런던에 온다던 오스트리아 친구를 만나 매일 함께 조식을 먹었고, 영어가 서툴지만 귀여운 프랑스 친구도 만났다. 또한 한국에 와보고 싶다던 영국인 친구와 친해져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녀는 내게 갈만한 장소를 추천해 주거나 맛있는 당근 케이크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여행에서 만난 고마운 인연이 있었기에 혼자 하는 여행이 더 값질 수 있었고, 많은 걸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세계가 한 뼘 더 넓어졌다.





수많은 상황과 어려움을 마주쳐야 하고, 외로움과 적적함을 견뎌내야 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너무도 값지기만 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하고, 모든 일을 당연시하지 않게 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도움을 받거나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여행이 내게 건네는 모든 것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게 만든다.


오늘도 그렇게 많은 이들은 혼자 여행을 떠난다. 나에 대해 더 알아가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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