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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호치민 여행 (1화)

호치민의 첫 인상을 결정지은 것들

by 하루


월간유랑기를 시작하며


아련 2018년에 왜 이렇게 열심히 여행을 다녔나 생각해보니까 1월에 갔던 호치민 여행 생각이 났어요. 그 때 여행이 너무 좋았거든요. 너무 좋아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올해는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가야겠다고 말했었는데-


형주 정말로 그렇게 됐죠. (빵 터짐)


아련 그래서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정리를 하고 싶었어요. 열심히 구름이 떠다니듯이 돌아다녔는데 그냥 이렇게 한 해를 보내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서요. 얼마 전에 호치민 여행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을 다시 찾아보려고 했는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핸드폰을 바꿨잖아요. 지금 사진을 다시 찾아보려면 예전 핸드폰을 다시 열어봐야 하더라구요.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들은 지금도 바로 볼 수 있지만 사진을 올린 건 일부분이고.


형주 구글에 연동해서 백업해요. 그게 편해요.


아련 (해답을 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남아있는 사진들을 보니 벌써 너무 오래 됐어요. 올 한 해 부지런히 떠돌아 다녔던 추억들을 꼽씹어 보는 거 어때요?



여행을 떠나기 전 너무나 무지했던 우리


아련 일단 여행을 가기 전부터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여행을 가기 전에 호치민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형주는 어땠어요?


형주 피상적으로 아는 정도였어요. 사실 나는 베트남을 이미 몇 번 가봤음에도 불구하고 북쪽이 ‘나쁜’ 놈인지, 남쪽이 ‘나쁜’ 놈인지도 몰랐어요.


아련 어느 쪽이 나쁜 놈이예요? (진지)


형주 (웃음) 우리가 배워왔던 것들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베트남전 당시 사회주의, 공산당을 지지한 쪽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우리나라 군인들이 많이 파병되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게 베트남의 북쪽과 남쪽 중에서 어느 쪽을 위한 것인지* 몰랐어요. 그럴 정도로 베트남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반공교육에서 통일교육으로 바뀌는 데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련 맞아요, 사회주의를 지지하던 쪽이 전쟁에서 이긴 것도 알았지만 나도 그게 남쪽인지 북쪽인지 따져서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형주 그래도 나는 라오스를 여러 번 다녀오면서 동남아에 대해서 주워들은 지식들은 있었어요. 베트남의 지리, 예를 들어 하노이가 어디에 있고 호치민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 호치민 공항에서는 트랜짓도 해봤어요. 그래서 호치민은 수도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큰 대도시다, 딱 그 정도까지만 알고 있었어요.


아련 나의 경우엔, 하노이를 가봤는데도 호치민이 수도**인 줄 알았어요. 호치민이 더 개발된 도시라는 건 막연하게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현대적인 도시, 그러니까 수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여행을 가기 전에 호치민에 대해서 갖고 있던 선입견이 있었다면, 호치민을 검색했을 때 한인 타운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놀랐어요. 한국 떡볶이 브랜드뿐만 아니라 온갖 프랜차이즈 체인점들이 거의 다 들어와 있다고 나오더라구요. 모든 것이 거의 똑같이 구비되어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정말 놀랐어요.


'hochiminh city'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들. 자연스레 대도시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강조해도 숙소는 중요하다


아련 그렇게 호치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여행을 떠났잖아요. 그래서인지 1월 호치민 여행을 생각해보면, 첫 날부터 정말 고생했던 기억이 나요. 호치민의 첫 인상은 어땠어요?


형주 호치민 여행은 우리가 서로 다른 도시에서 들어오기로 했었어요. 아련이가 조금 늦게 인천에서 바로 들어오기로 하고 나는 라오스에서 쿠알라룸프를 경유해서 호치민 공항에 먼저 도착했죠. 호치민 공항에서 입국장을 나가기 전에 굉장히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엔 환전소 밖에 없었어요. 입국장 밖에는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음식점들이랑 커피숍이 있었고요. 아련이가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음식을 먹으러 입국장 밖으로 나갔는데, 밖에는 환전소가 없었어요. 베트남 여행을 가려면 보통 미국 달러로 환전을 해서 베트남 현지에서 동으로 다시 환전을 해야하는데 공항 바깥쪽에는 환전소가 없는 줄 모르고 그냥 나와버린 거죠. 입국장 바깥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신용카드를 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1월에 호치민 여행을 간 것이었는데 공항 밖으로 나갔을 때 많이 더웠던 것이 기억나요. 패스트푸드점도 실외에 있어서 혼자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땀이 많이 났어요.


아련 그랬구나. 그럼 호치민의 첫 인상에서 강렬한 기억은 '더위'인가요?


형주 맞아요, 너무 더웠어.


아련 덥고. 찝찝하고.


호치민의 1월 평균 날씨. 적혀있는 대로 우리나라의 한여름과 비슷하게 더운데 습도는 훨씬 높다. 그래서 체감 기온은 실제보다 더 높게 느껴진다.



형주 밤 늦은 시각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너무 덥고 습했어요. 더위도 더위지만, 아련이를 만난 다음도 순탄하지는 않았죠. 엄청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련 그랬죠. 호치민 시내로 들어간 뒤에 부딪혔던 난관이 너무 강렬해서 난 그 전의 일들은 기억도 안 나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숙소 앞 골목길에 다다라서 택시에서 내렸을 때.


형주 하하하하하.


아련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비행기가 꽤 딜레이가 됐었어요. 몇 시간 딜레이가 됐었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갑자기 딜레이가 되어서 공항 게이트 앞에 앉아서 꽤 긴 시간을 보내며 지쳤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그것보다도, 숙소 앞 골목길에 다다라서 택시에서 내렸을 때.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해요. 일단 정말 정말 깜깜했고, 사방에 아무도 없고 정적만 감돌았어요. ‘망했다’라는 신호가 왔지.


형주 망했다? (웃음) 그 순간이 망했다는 느낌이예요, 아니면 여행지로 호치민을 선택한 것 자체가 망했다는 느낌이예요?


아련 일단은 그 순간, '우린 망했다'였어요. 불길하다, 이런 느낌.


형주 불길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네. (웃픔)


아련 여행자 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숙소로 정했는데 아무리 밤늦은 시간이었다지만 사방에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잖아요. 다른 여행지들은 아무리 늦은 시각이어도 몇 군데 문을 열거나 불을 밝혀놓은 가게들이 있었는데, 거기는 정말 깜깜했어요.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싸-한 느낌. 우리 숙소가 있다고 짐작되는 더 작은 골목 안에도 모든 불이 다 꺼져있고 사람 한 명 없고 건물 생김새도 숙소가 있을 법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택시에서 내린 뒤 길지 않은 시간동안 엄청난 감정의 굴곡을 경험했죠.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그 정도로 늦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한 건 처음이었어요. 나한테도 생소한 상황이니까 여러 모로 더 불안했던 것 같아요.


형주 아마 새벽 3시가 넘었을 거예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아련 새벽 3시가 넘어서 깜깜한 골목길에 도착했는데 원래 예약했던 숙소와 갑자기 연락이 끊겼잖아요. 인천에서 출발할 때 딜레이 상황을 알렸고 그 쪽에서도 걱정 말고 숙소에 도착하면 알려 달라, 바로 나가겠다고 메일도 왔었는데 말이예요. 숙소에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지, 국제전화를 걸어도 신호는 가는 데 받지를 않지.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지. 정말 말 그대로 패닉이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골목길을 한 바퀴 돌고 눈에 보이는 숙소 아무데나 들어갔던 데가-


형주 다**** 호텔. 이름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련 맞아요!!! (웃음) 우리 둘 다 너무 힘들었잖아요. 그 곳에서 버텨야 했던 순간이 너무너무 힘들었죠. 세 네 시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고 예약해 놓은 숙소랑 연락이 안 되는 절박한 입장이었으니 비용이 저렴하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곳의 청결도가... (말잇못)


형주 이미 공항에서부터 너무 덥고 땀을 많이 흘려서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어요. 짜증이 나도 상황을 바꿀 수 없는 경우에는 최대한 참고, 여행에서는 더더욱 그런 편인데 그 때는 정말 짜증이 많이 났어요. 호텔 직원분들이 자다가 일어나서 우리를 받아준 건 감사했지만... 결국 너무 찜찜해서 잠들지도 못했죠.


아련 그래서 호치민의 첫 인상은 굉장히 안 좋은 편이었어요. 그것보다 첫 인상이 안 좋은 경우가-


형주 회항?


아련 (빵 터짐) 그건 다음 여행을 이야기할 때 본격적으로 꺼내보자구요. (웃음) 아무튼 밤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에 도착했는데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는 문이 잠겨있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 사방은 깜깜하고 눈에 보이는 호텔 아무 곳이나 문을 두드려서 자고 있던 직원에게 사정해서 급하게 숙소를 구했는데 들어가보니 금방이라도 벌레들이 와글와글 나올 것 같았다, 이게 호치민의 첫 인상이었으니 아직까지 이보다 첫 인상이 안 좋은 경우는 없었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깨달은 건데, 인천-베트남 비행편은 밤 비행기가 유독 많은 것 같아요. 하노이에 갔을 때도 밤 늦은 시각-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 도착했었어요.


형주 그러네요.


아련 하노이 여행에서는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깜깜하고 조용한 골목에 둘이서 나왔을 때,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적막만 남아있었는데 굉장히 좁은 골목 안쪽에서 불빛이 새어나왔잖아요.


형주 닭쌀국수 사먹었던 곳?


아련 네, 첫 날 도착하자마자 그 가게를 발견한 게 행운이었죠. 소박하지만 엄청나게 맛있었던 닭쌀국수를 한 그릇씩 먹었던 게 정말 좋은 첫 인상으로 남았어요.


2016년 10월 하노이 여행에서 먹었던 닭쌀국수. 이후로 포-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형주 하노이 올드쿼터가 훨씬 더 오래된 동네이고 청결도에서도 더 떨어지는 곳이었을텐데, 깜깜한 밤에 오히려 더 평화로운 분위기였어요. 그 때 우리가 심지어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맞으면서 돌아다녔는데.


아련 맞아요, 우산도 없었죠. 인천-베트남 비행편에 밤 비행기가 많은 게 아무래도 저가 항공들이 많이 포진해있어서 그럴까요? 늦은 시각에 현지에 떨어지면 평범한 여행보다 돌발 상황이 많이 생겨서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있는데 그게 그 여행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베트남의 여러 도시마다 첫 인상은 달랐던 걸 생각하면 밤 늦게 도착하는 것이 꼭 불리한 건 아닌 것 같아요.


형주 하노이에서는 직원분들이 꺼져있던 불을 켜고 자다가 나온 것이 분명했는데 굉장히 친절하고 호의적으로 맞아주셨어요.


아련 만약에 호치민에서도 첫 날부터 숙소가 잘 해결됐다면 첫 인상도 굉장히 달라졌을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그 숙소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었기 때문에. 여행에서 첫 인상을 결정짓는 건 역시 숙소가 큰 역할을 해요.


형주 크리스티나한테 버림받은 날이었죠. (둘 다 빵 터짐) 심지어 그 날 이후로 베트남 어디를 가도 크리스티나의 숙소를 볼 수 있었어요.


아련 맞아요!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베트남 전역에 크리스티나의 숙소가 퍼져있다니.*** (웃음) 이렇게 호치민의 첫 인상을 돌이켜 보면 강렬하고 부정적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치민 여행은 정말 좋았죠. 여행을 하면서 어떤 포인트에서 우리의 첫 인상이 바뀌었는지, 그걸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겠네요.


(다음 화에서 호치민을 아름답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덧붙이기


* '베트남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잠시 점령했던 일본이 물러가자 베트남에는 다시 프랑스 군대가 들어왔다. 베트남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곧 무력 독립 투쟁을 시작했고 1954년 드디어 프랑스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베트남은 민족주의적이고 친서방적인 남베트남과 공산주의적이고 친수적인 북베트남으로 나뉘었다.' - 출처: 악몽의 전쟁, 수렁에 빠진 제국 - 베트남 전쟁(1964~1975년) (미국사 다이제스트 100, 2012. 10. 22., 가람기획)


**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다. 호치민은 '경제수도'라고 불리며 베트남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N모 포탈 사이트의 백과사전 정보를 참고하면, 프랑스 지배 시절 전형적인 식민 도시로 발전하였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적은 많지 않으나 도로와 배수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아름다운 풍경이 많아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베트남전 역사와 함께 연결지어 본다면 북베트남의 수도가 하노이, 남베트남의 수도가 호치민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으나 전쟁에서 북베트남이 승리하면서 하노이가 공식적인 수도로 남게 된 듯 하다.


*** 부킹닷컴 홈페이지에서 크리스티나의 숙소를 검색해보면 호치민에만 5개, 하노이에는 2개, 다낭에도 5개의 숙소가 나온다. 모두 공통적으로 'Christina's-'라는 명칭으로 시작되고 게하나 호스텔로 운영하는 곳도 있고 독립된 방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호치민 여행에서 첫 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다음 날 들어간 뒤 생활해 본 결과 인테리어도 예쁘고, 깔끔하면서 무엇보다도 베트남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에어콘 성능과 청결도가 훌륭했다. 처음에는 크리스티나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에어비앤비라고 생각하고 숙소를 잡았었는데 베트남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이 정도의 퀄리티와 규모를 유지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집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용하는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실제로 우리가 묵었던 크리스티나의 숙소를 검색해 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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