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기간제 교사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기간제 교사를 그만 두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우선 '기간제 교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전 글의 문장을 끌어오자면 학교는 '선생님들이 어떠한 사유로 휴직을 하는 경우, 또는 학교에서 선생님을 필요한 만큼 뽑아야 하지만 어떤 사유로 뽑지 않는 경우 필요한 기간만큼 그 자리를 맡아줄' 존재가 필요하게 된다.
전자의 경우, 선생님들이 휴직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먼저 육아 휴직이 떠오르지만 건강 문제나 개인 사정 등 다양한 이유로 휴직을 신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말은 휴직 기간 또한 다양하게 나뉜다는 걸 의미한다.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학사운영을 고려하면 6개월, 1년 단위로 휴직을 하는 것이 편리하겠지만, 때로는 몇 주부터 몇 개월로 딱 떨어지지 않는 날짜들이 남기도 한다. 그 기간 동안 선생님이 수업을 해야 하는 시수와 업무량을 고려해서 시간 강사나 기간제 교사를 모집한다.
문제는 후자, 학교에서 선생님을 필요한 만큼 뽑아야 하지만 '어떤 사유'로 뽑지 않는 경우이다. 선생님이 필요한데 왜 필요한 만큼 뽑지 않을까?
사실 이것은 학교에 제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 어느 기업, 어느 일자리를 둘러봐도 계약직이 존재한다. 어디에나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일손이 필요한데 왜 직원을 뽑지 않을까? 정규직 직원은 가뭄에 콩 나듯 뽑으면서 계약직 직원을 구인하는 공고는 몇 개월마다 쉬지 않고 올라올까?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복지를 강조하고 근무환경이 좋기로 유명한 유럽의 자동차 회사 사장이 한국 지점을 방문할 때마다 방문 기간에 해낼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의 업무를 챙긴다고 한다. 이번 일정에는 무리가 아니겠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인은 가능하잖아요'라고 말하며 웃었다는 이야기였다. 각자 발을 담그고 있는 분야는 달랐지만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는 노동 문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씁쓸한 웃음을 나눴다.
학교에서는 보통 학교 운영에 변동이 있을 예정이라서 필요한 만큼 새로운 정규 선생님을 먼저 뽑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든다. 예를 들면 학급수. 지역별로 학생수가 급감하는 곳이 많고 정책적인 이유에서 학급수를 조정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급수가 확정된 학교는? '교육과정'이라는 만능 변명거리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의 방향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한 명의 대통령 임기 내에도 굵직한 변화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분야가 교육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학년도, 2018학년도에는 하나의 고등학교 내에서 학년별로 적용되는 교육과정이 달랐다. 한 학년 위 선배들은 한국사를 필수 교과로 배우지 않았지만 바로 아래 학년은 수능 시험에서 한국사 과목을 시험 보지 않으면 무효 처리를 당하는 식이다.
국제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강조할 때는 영어 교과의 시수가 최대로 늘어날 수도 있다. 융합 인재를 강조하는 정책이 적용되었을 때는 과학 교과 시수가 최대로 늘어날 수도 있다. 특정 교과가 강조되면서 학습 범위가 늘어난다는 말은 다른 교과의 축소를 의미한다. 이공계 분야를 강조하면서 융합 인재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2015 개정 교육 과정은 2018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적용되었는데, 그 결과 문이과를 가리지 않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워야 하는 공통과학 시간이 생겨났다. 이것이 교사 수급에 가져오는 변화를 쉽게 설명하자면 2017년도에 OO 학교에 문과 학생들을 위해 과학 교사가 4명 필요했다면 2018년에는 5~6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늘어난 과학 시간 대신 줄어든 교과의 교사는 그만큼 불필요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한 학교에 필요한 교사의 수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노동 문화에서 시장의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여유 인원까지 고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30명이 지을 수 있는 집이 있다면, 35명을 고용해서 맡은 부분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건강도 챙기고 서로 조언도 해주면서 만들어가는 문화가 아니라 정규직으로 20~25명을 고용하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계약직 2~5명을 더한다.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뽑아낼 수 있으니까.
'기간제 교사'라는 말은 이미 용어 자체에서 존재의 한계가 명시되어 있다. 교사라는 직업군 앞에 붙어있는 '기간제'라는 단어 때문에 정해진 기간에만 해당 직업을 역임할 수 있는 임시적인 존재. 위에서 언급한 사유로 필요한 기간을 채우기 위한 존재이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이 만료되면 자동적으로 기간제 교사를 그만둘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아주 간단한 이야기 같다. 1년 계약이었으면 열심히 1년을 일하고 계약일이 종료되면 '안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청에서 배포한 '2015 사립학교 교원 인사실무 편람'의 일부분을 살펴보자.
다. 사립학교법 제54조의 4(기간제 교원) 제3항
o 기간제 교원의 임용기간은 1년 이내로 하되, 필요한 경우 3년의 범위 내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총 4년 임용)
- [2015 사립학교 교원 인사실무 편람] 2장 임면 일반 내용 중 -
2. 기간제 교원으로 4년의 기간 동안 또는 4년 미만 근무하다가 임용기간이 만료된 사람을 신규채용절차를 거쳐 같은 학교에서 동일한 임용사유로 다시 기간제 교원으로 임용할 수 있는지 여부
▷ 교육공무원법 제32조 제1항 또는 사립학교법 제54조의 4 제1항에 따라 기간제 교원으로 4년의 기간 동안 근무하다가 임용기간이 만료된 사람은 신규채용절차를 거쳐 같은 학교에서 교육공무원법 제32조 제1항 또는 사립학교법 제54조의 4 제1항 각 호에 따른 동일한 임용사유로 다시 기간제교 원으로 임용될 수 있다고 할 것임 (법령해석례 11-0796)
▷ 교육공무원법 제32조 제1항 또는 사립학교법 제54조의 4 제1항에 따라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에 서 기간제 교원으로 4년 미만의 기간 동안 근무하다가 임용기간이 만료된 사람은 신규채용절차를 거쳐 같은 학교에서 「교육공무원법」 제32조 제1항 또는 「사립학교법」 제54조의 4 제1항 각 호에 따른 동일한 임용사유로 다시 기간제 교원으로 임용할 수 있음 (법령해석례 10-0490)
3.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의 기간제 교원으로서 4년의 임용기간을 마친 사람을 같은 학교에서 임용사유를 달리하여 기간제 교원으로 다시 임용할 수 있는지 여부
▷ 교육공무원 임용령 제13조 제3항 또는 사립학교법 제54조의 4 제3항에 따라 고등학교 이하 각급학 교의 기간제 교원으로서 4년의 임용기간을 마친 사람은 신규채용절차를 거쳐 같은 학교에서 교육공무원법 제32조 제1항 또는 사립학교법 제54조의 4 제1항 각 호에서 정하고 있는 임용사유를 달리하여 기간제 교원으로 다시 임용할 수 있음 (법령해석례 10-0490)
- [2015 사립학교 교원 인사실무 편람] 4장 법률해석 및 판례 내용 중 -
서울시 교육청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간제 교사의 임용기간은 최대 1년이지만, 필요한 경우 1년의 원 계약이 끝난 뒤 최대 3년까지 기간을 연장해서 재임용할 수 있다. 임용사유가 달라질 경우(예를 들어 '정원 외 교원 수급' → '육아 휴직 대체'), 새로 공고문을 올려서 면접과 시강을 다시 치르는 신규채용절차를 거친다면 동일 학교에서 재근무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간제 교사가 계약 기간을 채운 뒤 어떻게 그 학교와 이별하는가, 이것은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된다.
아마 주변에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거나 했었던 분에게 물어본다면 개인별로 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그만큼 무궁무진하다. 많은 학교는 필요한 정원보다 적은 수의 교원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기간제 교사는 항상 필요하다. 기간제 교사가 필요한 과목에 변화가 없다면 해당 기간제 교사와 계약을 끝낼 수도 있지만, 계약을 연장할 수도 있다. 계약 해지는 채용 문제보다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문제다. 기본적으로 계약서상 기간제 교사의 수명은 최대 1년이기 때문에 그냥 '계약 만료' 시점까지 그대로 두어도 알아서 인연은 끝난다. 그러다 보니 기간제 교사 채용 과정에 비해서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은 학교마다, 또는 관리자마다 천차만별이다.
1년짜리 계약을 했다면 보통 11월 말에서 12월 사이에 다음 해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는지 아니면 유지되는지 운명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관리자(보통 교감 선생님이 담당)가 해당되는 기간제 선생님을 불러서 학교의 입장을 설명하고 통보한다. 자리가 유지되고 선생님도 그 학교에서 계속 근무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계약이 연장되기도 한다. 그 학교에서 선생님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학교 사정상 자리가 없어서 계약을 연장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학교에 추천을 해주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매우 이상적인 경우의 이야기다.
최악의 경우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내년도 자리의 유무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다. 이때 기간제 교사는 철저히 '을'의 입장이 되는데, 관리자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자리가 없든, 자리가 있는데도 자신과 재계약을 원하지 않든, 조금이라도 빨리 학교의 사정을 알아야 다른 곳에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답답한 쪽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몇 주에서 몇 개월까지 매일 얼굴을 마주치지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상대의 눈치를 보다가 지칠 때쯤, '그동안 열심히 근무한 나에 대한 평가가 이것이구나'라고 깨닫는다. 결국에는 기간제 교사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의 자리라는 것을 실감하며 마음을 닫게 된다.
다음 해의 운명은 보통 12, 1, 2월 사이에 결정되기 때문에 기간제 교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번 겨울은 유독 춥다'라고 이야기한다. 2013년부터 6년간 기간제 교사로 지내면서 나 역시 해마다 추운 겨울을 보냈다. 서로 도우며 교사 생활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갑자기 경쟁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같은 교과의 기간제 교사를 경쟁자로 보고 만나는 순간부터 신경전을 하는 동료도 있었다. 자리가 없으니 나가라는 통보를 들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번복하는 사례도 보았고,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와 이유로 둘러대며 제 발로 나가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들었다.
나는 '나'라는 존재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서히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언제 불필요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이 담고 있는 교육적 메시지들 때문에 슬펐다. 언제든지 대체될 존재. 학생들을 가르치는 순간의 책임은 동일하지만 동료로서는 동등하게 여겨지지 않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실력을 재평가, 재검증받아야 하는 존재. 채용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이 모두 학생들이 대학을 가고 취업도 한다면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었지만 교육 현장에서 언급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많은 경우 가르쳤던 학생들과 제대로 이별하지 않고 조용히 학교를 떠났다. 불편한 이야기는 자주 쉬쉬하거나 외면당했다. 이 모든 것이 교육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학생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와 잘 이별하는 방법, 불편한 이야기를 직면하는 방법을 나눠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학생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선생님은 어렸을 때도 꿈이 선생님이었고 영원히 선생님일 것 같았다. 학교 현장에서 수년을 보낸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간제 교사로 소모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나를 지키려고 발버둥 쳤다. 이제는 그 과정에서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어느새 겨울이 가고 새로운 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