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등급형 인간'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하는 초등 또는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공립학교 교원이 되는 방법과 사학재단에서 추진하는 개별 채용 시험에 합격하여 사립학교 교원이 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채용 과정에서 필기시험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이전 글에도 언급했듯이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일부 학교들은 기간제 교사 채용 과정에서도 서류전형과 면접 및 시연 사이에, '필기시험'을 넣기 시작했다. 퇴직 교원이 다시 기간제 교사로 교원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원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임용시험이나 사립학교 채용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기간제 교사에 지원한다. 그렇다면 기간제 교사 채용 과정에서 필기시험을 보는 것은 정규교원이 되기 위한 필기시험을 보지 않거나 떨어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간제 교사가 되기 위한 필기시험을 한 번 더 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된다. 필기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또 시험을 봐야만 하는 것.
기간제 교사 채용 과정에 필기시험을 도입한 학교 입장에서는 기간제 교사라고 할지라도 해당 학교에 근무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수준이 있으므로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 교육청 사이트 구인란에 올라오는 채용 공고 중에서 필기시험 전형을 넣은 학교들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고 입시 결과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년간의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한 뒤 학교에서 내세우는 이야기들은 설득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교사의 교수 능력과 필기시험 성적은 전혀 상관이 없다. 과거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든, 대학교에서의 성적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정규교원 채용을 위한 필기시험에서 얼마나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였다고 하더라도 실제 학교 현장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동료와 학생들에게 존경받느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오히려 필기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는 것이 체제에 순응하고 얼마나 모범적이었나를 말해주는 증거라고 보면 모를까.
또 다른 문제는 그렇게 출제되는 필기시험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기 위한 필기시험 유형은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 그해 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해당 과목 교사 중에서 '맡을 만한 사람'이 맡는다. 당연하게도 학교마다 천차만별의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것은 사립학교 정규교원 필기시험과 비슷하다.*
사립학교 정규교원 채용을 위한 필기시험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세상'이다. A학교는 1차에서 전공 교과를 가리지 않고 한문으로 된 사자성어 읽기 문제를 내기로 유명하다. B학교는 1차에서 무조건 인적성 검사를 본다. 사칙연산과 시사이슈, 성격 테스트 같은 질문에 답한 결과로 그 해 지원자의 90프로를 떨어뜨린다. 심지어 어떤 학교에서는 하얀 A4 종이에 마음대로 원을 그려보라고도 했다. (영어 교과의 경우) C학교에서는 오직 언어적 유창성만 보기 위한 문제를 낸다면, D학교에서는 영문법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냥 '깜깜이' 시험이라고 보면 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채용 과정에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 필기시험 문제를 공개하는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것이다. 일부 지원자들이 시험이 끝난 후 남긴 후기들만 겨우 살아있는 정보가 된다. 하지만 그 정보는 너무나 제한적이다. 매년 서울에서만 수백 명의 인원이 사립학교를 돌며 시험을 보지만 각 학교별 평가 과정과 필기시험에 관한 후기가 단 하나라도 올라오면 다행이다. 채용 과정에서 탈락과 합격의 기준을 설명하지는 않더라도, 출제한 문제를 공개해줬으면 하는 것이 지원자들의 바람이다. 현재로서는 사립학교 정규교원 채용은 아무것도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비밀스럽게 진행된다. 채용비리를 실토하는 명확한 물증이 있어서 신고가 들어가지 않는 한, 운이 나쁘게 철저한 감사에 걸리지 않는 한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난 뒤 걸리지 않은 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으니 얼마나 편리한 시스템인가.
기간제 교사 채용을 위한 필기시험도 마찬가지다. 역시 깜깜이 시험이고 어떤 것도 공개되지 않으므로 지원자는 그것이 삽질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이미 내정된 사람이 있는지 아닌지도 짐작할 수 없어서 이유 없는 불안과 '내가 부족했겠지'라는 자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뒤섞인 채로 다음 원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2010년대 중반 이후 기간제 교사를 뽑는 과정에 필기시험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쉬운 설명은 '기간제 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국의 교대와 이화여대 초등교육과를 다니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교원자격증을 획득하려면 사범대학교나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거나 학부과정에서 교직이수를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중등학교 교원자격증을 가지고 졸업하는 인원이 초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데, 요즘에는 이에 더해 전반적으로 대학원을 진학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학부 과정에서 복수/이중/부전공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국어, 영어, 수학처럼 교육 정책이 변하더라도 비교적 영향을 덜 받으면서 수업 시수가 유지되는 교과들은 그만큼 기간제 교사의 자리도 유지된다고 생각하지만 해당 교과의 교원자격을 갖춘 인재들이 매년 졸업시즌마다 엄청나게 배출된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반대로 가고 있다. 출산율만큼 학생수도 급감하면서 통폐합하는 학교들도 나온다. 게다가 교사의 정년은 62세로 늘어났고 앞으로 시간을 두고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한다는 이야기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필요한 교원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기간제 교사의 자리도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고, 기간제 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률도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들이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공간에는 매년 겨울이면 '60번째 지원서를 넣고 있습니다. 서류전형 통과도 이렇게 힘든 것인가요?'와 유사한 제목의 글들이 수없이 올라온다. 댓글을 읽어보면 '저는 200통까지 넣었었어요.', '제 과목은 공고가 잘 올라오지 않아서 구인공고가 뜨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에 다 넣었습니다.'와 같이 무서운 현실을 알려주는 경험담들도 이어진다. 국어와 영어 교과의 경우 1명을 구하는 공고에 100명 이상이 지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간제 교사 채용 과정의 필기시험은 합격과 불합격의 운명을 가르는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되었다.
시험이 응시자의 지식을 유의미하게 측정하지 못하고 당락을 가르는 도구로만 존재하는 것이 낯선 풍경은 아니다. 기간제 교사 채용 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둘러보면 어디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한국 사람이 토익 평균 점수가 세계 17위, 아시아권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에도 항상 '그러나 영어 실력은?'과 같은 질문이 뒤따르거나 토익 평균 점수는 세계 17위지만 아이엘츠(IELTS) 점수는 세계 40개국 중에서 38위를 차지했다는 모순점을 꼬집은 기사도 있다. 전국 국어 선생님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물리학자들까지 논쟁에 참여시킨 2019 수학능력시험 국어 31번 문제뿐만 아니라 공무원 시험 문제도 매년 논란을 불러온다. 모두 시험이 한 사람의 실질적인 실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는 논쟁을 가져왔다. 점수와 결과만 중요한 '시험을 위한 시험'이 되는 것이다.
필기시험이 단지 '시험을 위한 시험'으로 전락하는 것은 학교 현장에서도 흔한 일이다. 학교 내신 성적을 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중간·기말고사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많은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교사 입장에서 필기시험을 출제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학생들이 내신 등급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고등학교 내신등급 산출기준에 따르면 1등급은 전체 학생 중에서 4%의 학생만 받을 수 있는데, 만약 동점자가 발생해서 4%에 해당하는 학생수를 넘어가면 모두 2등급으로 처리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한 학년이 300명인 학교에서 100점을 받은 학생이 13명이 나오면 13명의 학생들은 모두 2등급을 받게 된다. 물론 필기시험만으로 내신 성적이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수행평가에서 감점당하는 일도 드물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상위권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는 내신 성적에서 동점자가 나오지 않도록 필기시험을 출제하는 것이 더욱 특별히 강조된다.
모두가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교육과정을 이수하였는데도 필기시험에서 동점자가 나오지 않도록 출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경우 기간제 교사 생활을 통해 터득한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아주 지엽적인 것까지 출제한다. 둘째, 지문은 길게, 문제수는 많이 낸다. 셋째, 새로운 지문에 배운 내용을 적용하게 한다. 마음 같아서는 세 번째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싶지만 수업 시간에 접하지 않은 새로운 지문을 시험에 등장시킬 경우 여러 가지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사전 경험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유리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지문의 난이도가 기존 고등학생 수준에 맞는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앞선 두 가지 방법이 가장 손쉽게 사용되는데 문제는 기계적인 암기가 바탕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원에서 내신 대비 특강이라고 일컬어지는 수업들이 수많은 반복을 통해 내용을 암기하도록 만든다.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등수에 의해서 성적이 나뉘고, 0.1점 차이로도 등급이 갈릴 수 있는 세계에서 학생들은 수년간 정신을 갈고닦아 등급형 인간이 된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1년만 지나도 학생들은 이것을 완벽하게 체득한다. 특목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재직하던 중 시험기간이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다가 힘든 나머지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선생님~ 너무 어려워요~ 양도 이렇게 많은데 인간적으로 어떻게 이걸 우리가 다 봐요"라면서 귀엽게 울상을 지었다. 열심히 고군분투하면서 모여서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내가 학생일 때보다도 더 치열해진 경쟁이 안타깝기도 해서 애처로운 눈길로 잠시 쳐다보다가 '그래도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들이니까-'라고 말하려던 찰나, 그전에 학생들이 먼저 "그래도 해야겠죠, ", "선생님도 어쩔 수 없죠."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이미 등급형 인간으로 취급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회 논리임을 알고 있다.
많은 경우, 필기시험은 결과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기간제 교사로 지내면서 학생들을 평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서 시험을 출제하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서 시험을 받아야 했다. 학생들이 시험에 길들여지는 것을 보면서, 아니, 학생들을 시험에 길들이면서 나는 나의 시험에 길들여졌다. 기간제 교사나 사립학교 정규교원 채용을 위한 필기시험이 얼마나 '깜깜이 시험'으로 치러지는지, 출제 분야와 기준이 얼마나 중구난방인지 답답하지만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학생들이 최대한 그런 답답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생활을 우수하게 잘 해낸 학생일수록 더욱 우수한 등급형 인간이 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공부를 더 잘하기를 강요하는 문화는 '등급형 인간이 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남기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학교 밖으로 나와 그곳을 돌아보며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너의 등급이 너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외부에서 너를 평가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아. 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만들어가길 바라.
* 공립교원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임용시험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전국 단위로 진행하는 만큼, 사립학교 채용시험과 비교하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몇 달 간의 합숙을 통해 이미 시중에 나와있는 문제들과 겹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쓰며 출제와 검토를 반복한다. 시험이 끝난 후 문제가 공개되고 많은 이들이 각자의 해설을 만들 기회가 있다.
** 사립학교 정규교원 채용시험에서는 국어, 영어 교과의 경우 1명을 뽑는 공고가 나면 지원자수는 기본적으로 200명이 넘는다. 2017년 영어 교사 2명을 뽑는다고 공고를 낸 경우 1차 필기시험을 380명이 넘는 인원이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