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회에서 일요일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파트타임 선생님이 사전예고 없이 일요일 아침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주 그런다는 담당 슈퍼바이저의 전언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자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중이었다. 그런데 회계 담당자가 얼굴이 굳어지며 자신의 사무실에서 그녀가 제출한 시간표를 가져왔다. 그녀가 나타나지 않은 날짜에 5시간을 일을 했다고 적은 표를 제출한 것이다. 그렇게 표를 제출하면 일한 만큼의 시간을 정산받는 형태이니, 그녀는 아르바이트비를 받겠다고 신청한 것이다. 자신이 나타나지도 않은 그날에. 아니 대체 일하러 오지 않은 그녀가 그 표는 언제 어떻게 제출한 것인지도 미지수였다.
내가 담당 슈퍼바이저가 아니기에 사실 시간당 그녀가 얼마를 받는지도 모른다. 시카고의 시간당 최저임금이 15불이므로 그것보다야 많이 받겠지만 그래봤자 그렇게 많은 금액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멤버이기도 한 그녀가 (미국 교회는 멤버제도로 운영되는 교단이 많다), 자신의 교회를 상대로 적은 금액이지만 횡령(?)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그녀의 시간표를 마주한 우리는 모두 얼굴이 굳어버렸다. 백 불이 채 되지 않은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나는 곧바로 HR 담당자를 이메일에 함께 받는 사람에 넣은 채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 주일에 널 본 사람이 없는데 왔었느냐고. 그녀로부터 곧장 답장이 왔다. 사정이 생겨 오지 못했노라고, 2주 후에 가겠노라고. 그러나 자신이 제출한 시간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나는 결국 회계담당자가 보여준 그녀의 시간표를 사진으로 찍어서 다시 이메일에 보내면서 회계담당자를 추가로 이메일에 넣은 채, 그렇다면 이 타임시트는 무엇인지 설명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2주가 지난 지금까지 답장이 없다.
지난 일요일에 교회에 나타난 그녀는 평소보다 더욱 내 눈에 많이 띄었다.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나는 상황을 보려고 했으나, 그녀는 교묘하게 내 눈에는 보이되 나를 피했다. 평소보다 부쩍 바빴던 일정으로 인해 나 또한 굳이 그녀를 잡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터라, 그리고 마음에 있는 혼란도 아직 불길이 잡히지 않았기에, 그저 그렇게 지나가도록 버려두었다.
다른 스태프들은 교회 멤버가 아니었다면 당장 해고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신뢰와 성실함의 문제이므로, 그 선을 넘은 이상 더는 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두 주 동안 이 문제를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대롱거리며, 이리저리 살갗을 긁히는 채로 내버려 두고 있다. 어떻게 뽑아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일까.
어릴 때 읽은 장발장의 신부는 내게 신처럼 느껴졌다. 교회를 다닌 적이 없던 나는 예수를 알지 못했지만, 장발장의 신부를 통해 예수라는 사람이 참으로 멋진 사람일 것 같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삶에 치이고 밀려 절벽 끝까지 내몰린 장발장은 교회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난다. 행려병자 같은 행색으로 값비싼 은식기를 품고 있는 그를 경찰은 단번에 알아보고, 확인차 신부의 집으로 데려간다. 신부가 자신에게 준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장발장.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꾸짖음을 기다리는 그에게, 신부는 그 은식기는 내가 준 것이 맞으며 오히려 장발장이 까먹고 촛대는 두고 갔다고 이야기하며 경찰이 보는 앞에서 촛대까지 그의 품에 안겨준다. 그렇게 신부는 문을 닫고, 경찰은 그를 보내준다. 은식기와 촛대를 안고서. 그렇게 장발장의 삶은 바뀐다. 어린 내가 읽은 장발장의 신부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혹은 예수믿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알려준 표지였다.
교회의 그녀가 나의, 우리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인가.
그녀는 오래전 헝가리에서 이민을 왔다. 이곳에서 대학을 나오고, 오랫동안 대형 회사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다고 했다. 교회에 오면 늘 예배당 앞자리 기도대에서 한참을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가짜 타임시트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녀가 오랫동안 일자리를 잃고 다시 찾으려 애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생계가 빠듯하다 보니 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밖에서는 베이비시터를 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간다는 것도. 그녀의 얼굴에서 장발장을 보는 내가 지나친 것일까.
이번 일요일에 그녀를 만나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작정이다. HR에 보고가 되었고, 파일에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사랑이 정의의 얼굴을 하는 것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렇게 글을 쓰는 나는, 결국 장발장의 신부를 흉내 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이 일이 그녀에게 자라는 기회가 되기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다는 것이, 기도대에서 남들이 보는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자리에서도 진심을 다하는 것임을 깨닫기를. 그리고 나 또한 그 마음을 늘 품기를.
뒷맛이 씁쓸하기에, 오늘은 그녀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기도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