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봄이 살짝 왔다. 4월에도 눈이 오는 곳이라 아마 아직은 몇번의 겨울을 좀 더 지나야 할 테지만, 오늘의 시카고는 따스함을 품은 바람이 하루종일 스치듯 불었다. 7시가 넘은, 어스름하게 저녁이 짙어지는 이 시간에도 이렇게 파티오에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시간을 가진 게 참 오랜만이다.
마흔이 됐을 때만해도 마흔이라는 내가 참 좋더니, 어느새 마흔여섯이 된 나는 나이듬이 주는 힘을 실감한다. 늙으면 서럽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내가 그런 넋두리를 친구에게 늘어놓는 나이가 되었다.오래전에 읽은 어느 소설에서 여든의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몸의 새로운 곳에서 통증을 느끼며 깬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 말의 뜻을 언뜻 이해하게 되었다. 서른 언저리의 나는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며 '아, 그녀의 말이 이런 뜻이었던가.'하게 된다. 어제는 아프지 않았던 손가락이 시리다던지, 선잠에서 깨어남과 함께 어렴풋한 통증을 느끼는 것은 낯선 경험이다. 그렇게 시간은 멈추지 않고, 무엇을 놓치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종종 지나고나서야 깨닫는다. 지나고나서야, 그래, 그런 것이로구나, 한다.
살아온날보다 살아갈 날이 길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은 이상한 경험,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하는 정말 이상한 경험이다. 내면에서 무엇가 삐걱거리며 충돌하는 듯한 불협화음을 내며, 삶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삶의 중반기, 이맘때에, 무언가를 위한 추구를 시작하게 되나보다.
생각은 돌고돌아, 결국은 현실을 최선을 다해 살기로, 충만한, 감사한 오늘을 살기로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