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한국분들과 함께하는 리트릿에 참석하고 돌아가기 위해 공항 대기실에 앉아있다.
다른 분들보다 조금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한 탓에 조용히 혼자 빠져나와 캐리어를 밀며 우버를 탔다.
공항으로 달리는 우버 안에서 마음이 깊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토록 좋았노라고, 모인 분들에게 마지막 소회를 밝히고 길을 나서자마자 내 마음은 그토록 좋았음의 뒤켠 그림자를 마주하며 한없이 코를 길게 뺀다. 명암이 이토록 확실한 모임이라니, 모인 분들과 모임이 너무 좋았던 탓이고, 그 '좋음'이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슬픔이었겠다.
미국에서 사는 이민자는 끊임없이 언어의 충돌을 겪는 듯하다. 적어도 나는 겪는다. 나의 심결을 샅샅이 훑을 수 없는 언어로 매일을 살아내야 하고, 마음을 알알이 표현할 수 있는(적어도 외국어보다는 더욱 가까운 언어인) 모국어는 점차로 삶의 공기 중에서 옅어진다.
성인이 된 후 외국어를 배운 이들은 그들이 모국어를 사용할 때 쓰는 뇌의 부분을 함께 사용한다고 한다. 반면 열네살 이전에 두개, 혹은 두개 이상의 언어를 배운 이들의 뇌는 자연스레 뇌의 다른 부분을 각각의 언어에 할당하여 해당 부분에 그 언어에 대한 기억이 저장된다고 하고.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영어로 살기를 선택한 나의 뇌는 뇌의 작은 한 부분을 한국어와 영어에 함께 할당을 했다. 그 작은 부분에서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 일어나는 밀당을, 그 끊임없는 긴장을 나는 매일의 언어의 세계에서 경험한다.
미국에서 살기로 결정한 이상, 미국에서 말로 어떠한 세상을 표현해야 하는 목사로 살고 있는 이상, 영어를 더욱 잘 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생존의 결로이다. 그렇게 영어로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꿈을 꾼다. 영어로 꿈을 꾸면 이민생활의 달인이 된 것이라고 누가 말해주었었는데, 나는 그런 이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영어의 결은 어째서인지 내 마음의 깊은 곳에 닿질 않는다. 내가 혀로 표현해내는 영어는 미국인의 그것과는 질적, 양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고, 발화하는 순간 초라해지는 그 언어의 한심함에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내고 싶었던 나의 내면은 발화와 동시에 기겁을 하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영어와 씨름을 하는 동안 내 뇌의 언어를 담당하는 작은 부분은 점차 영어에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나는 한국어로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한참을 생각해야 찾아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뇌의 주름 어딘가에 숨어있는 '고급' 한국 단어를 마음을 집중해 찾아내어야 한다.
그렇게 나는 급작스럽게 한국어를, 잃어가는 내 모국어를,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았던 나만의 우물을 응급실에 실려간 이가 통증을 다스릴 약을 찾듯 그리워하고, 내 뇌에게 그 언어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그래도 네가 너를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이것밖에 없다고, 애원하듯 상기시켜준다.
이번 모임은 그런 애원의 한 결이었다. 한국, 모국, 한국어, 모국어, 한국인, 모국인...한식, 내 영혼.
한국어로 조근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다른 한국 목사님들의 낮은 웅성거림은 갈증 후 마시는 달디 단 생수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의 얼굴에서도 그 달달함이 느껴진다.
이 달고 단 사람들, 이 달고 단 언어들, 이 달고 단 한국.
나를 상처입힌 것도 한국/어이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것도 한국/어이다.
이 아이러니.
아이러니를 마음에 깊이 꾹꾹 담으며, 나는 슬프게 워싱턴디씨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