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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Nov 04. 2021

바흐는 자유의 아이콘이야!

바흐가 딱딱하다고?

https://youtu.be/Dw4ZW6AYxeI

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주 샤오 메이, 피아노


<바흐는 자유와 동의어입니다>

한때 바흐를 어렵고 딱딱하게 여길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음악 스트리밍 앱의 최근 기록을 보면 바흐를 압도적으로 많이 듣고 있다는 데이터가 나온다. 이렇게 바흐에 경도된 개인적인 배경은 풀어서 얘기하면 밤을 새야 할 정도로 많으니 생략하고, 간단히 말해 나의 바흐는 "자유"와 동의어의 의미로 가슴속에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내겐 라이브로 본 바흐 마태수난곡이 나의 진로를 통째로 바꿔버린 영적이고 드라마틱한 체험이 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바흐에 대한 경외감(두려움이 약간 포함된)은 남아있었다. 그런데 대학원 생활 도중 만난 절친 덕에 바흐에 눈을 떴고, 그 사람을 바흐의 주무대 라이프치히에서 여행중 만나 산책을 하며 바흐를 가슴으로 받아들였으며, 바흐의 고향 아이제나흐를 홀로 거닐며 소름돋는 감동을 느꼈다. 이후로 피아노를 연습할 때 평균율 프렐류드라도 한 곡 치지 않으면 뭔가 허전했다. 결국 나는 손풀기용으로 바흐를 항상 치곤 하는 습관을 들여놨다. 백날 하농만 치는 것보다야 훨씬 꿀잼이었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기악곡들을 열심히 들었으며, 선곡하기 귀찮으면 칸타타를 랜덤으로 틀어 놓았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의외로 극단적인 개성을 표출해서 성공한 명반들이 많았으며, 연주자의 개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분야도 바흐였다. 그런데도 작품들이 연주자들 고유의 쪼를 넉넉하게 다 받아주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사실 엽기적일 정도로 굴드의 개성이 강하게 표출된 연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작품 자체가 굴드의 개성을 온전히 품어주고 있었다. 심지어 굴드는 젊은 시절과 만년의 연주가 다른 사람이 연주했나 싶을 정도로 확연히 다른데, 젊은 시절의 연주는 그것대로, 만년의 연주는 만년의 연주대로 모두 강력한 감동을 남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수많은 예시 중 하나일 뿐이고, 다른 작품들도 똑같다. 바흐를 듣고자 할 때 연주자 선택은 다른 기준이 필요없다. 본인이 좋아하는 연주자가 연주한 것이 있으면 그 연주자만 따라가면 된다. 연주 스타일이 작품에 맞니 안 맞니 할 필요가 없다. 작품들이 이미 연주자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 주는데 해석을 굳이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바흐가 엄격하다는 건 문자 그대로 선입견이고 편견이다. 싸구려 악보 말고 원전판 악보를 아무 곡이라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악보가 증명해준다. 다이내믹 기호, 아티큘레이션 기호 따위가 거의 적혀 있지 않다. 심지어 템포 지시도 해놓지 않은 작품도 많으며, 연주할 악기도 따로 지시해놓지 않은 작품도 있다(예:푸가의 기법).이런 곡이야말로 모든 악기에 호환되는 곡들이다. 바흐가 게을러서 이런 지시들을 빼놓은 것이 결코 아니다. 연주자의 재량에 상당부분 맡겨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주자는 바흐가 비워놓은 공간 안에 채워놓을 것이 많다. 그렇게 한 곡을 연주할 때, 듣는 이는 인간군상의 모든 희노애락은 물론이고 영적인 체험까지 충분히 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바흐표 자유가 완성되는 것이다. 큰 틀은 엄격하되 그 틀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거룩할 것만 같은 모테트 따위의 찐 종교곡에서도 바흐가 구사한 자유로움을 발견하면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온다. 때때로 완전히 나사를 풀어버린 진짜 인간 바흐를 만날 때도 있다. 커피 칸타타 같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찐 인간미가 그런 류의 감흥이다.


 나는 빡빡한 규칙 아래 있는 것을 누구보다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엄격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바흐를 멀리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음악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바흐를 좋아한다. 누구는 음악의 아버지라 하고, 누구는 우주라 하며 누구는 수학적이라 한다. 그러나 내게 있어 바흐의 의미는 자유의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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