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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Nov 26. 2021

모차르트의 스피릿 넘버

영혼의 300번대 작품들

 피아니스트 윤아인은 본인의 스승인 비르살리제의 가르침을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서 풀어놓은 적이 있다.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모차르트를 대함에 있어 기본적인 자세는 "항상 새롭게" 라는 간단한 형용사가 사용된다. 과연 핵심을 명쾌하게 찌른 표현이다. 이것은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들을 적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떄문이다. 분명히 단순하고 명쾌하게 들리는데, 한 번 들을 때 다르고 두 번 들을 때 다르며 열 번 들을 때가 다르다. 그만큼 모차르트는 다채롭다. 객관적인 기록으로 봐도 그럴 만 하다. 어렸을 때부터 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스펀지처럼 흡수한 온갖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양식들이 모차르트의 작품 속에 조화롭게 녹아 있다. 아마 모차르트는 서양음악사상 전무후무한 육각형 음악가일 것이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지만 성악의 기능을 모차르트처럼 최대한으로 뽑아먹지는 못했으며(본인의 음악적 소신상 할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안 했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베토벤도 기악에서의 눈부신 성과에 비해 성악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게 재미를 못 봤는데, 모차르트는 기악이고 성악이고 가리지 않고 모두 최고 수준의 아웃풋을 뽑아먹었으니 말이다. 

https://youtu.be/G5tHqdB6LdQ

모차르트 :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b장조 K.364

정경화,바이올린

막심 리자노프, 비올라

평창대관령음악제 앙상블



 그런데 방금 언급한 그것을 완전히 파악한 다음에도, 모차르트에서는 또 하나의 포인트를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쾨헬번호 300번대 작품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차르트의 작품번호 300번대 작품들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여기에 200번대 후반의 작품들도 포함된다). 이 작품들이야말로 모차르트의 스피릿 넘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0번대 작품들은 모차르트가 20대 초중반 시절, 잘츠부르크에 발이 묶여 있다가 악착같이 탈출해서 빈에 자리를 막 잡아가던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 중간의 파리 시절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시절의 모차르트는 인생의 흑역사 기간이었다. 전 유럽이 천재의 강림을 반기던 그 열광적인 분위기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냉정한 현실만이 모차르트 앞에 가로막혀 있었다. 이 와중에 어머니도 잃었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최악이었으며 시골도시 잘츠부르크의 닫힌 사회는 모차르트의 그릇을 품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다.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쏟아내는 작품들이 품고 있는 스피릿이야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바다. 말년 작품들의 원숙미가 넘치는 느낌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 원숙미의 자리를 광기 넘치는 의지의 스피릿이 채우는 것이다. 나는 모차르트의 300번대 작품들에서 강력한 힘을 느낄 때가 많다.  이것은 포르티시모를 남발하면서 빵빵 때리는 그런 파워풀한 느낌의 힘이 아니다. 지나가면서 흘리듯이 대충 한두 마디 던졌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포스 혹은 아우라에 기가 죽어 얼어버리는 그런 힘에 더 가깝다. 이런 블랙홀같은 힘을 느끼며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에 묵직하게 훅 들어오는 뭔가가 반드시 있다.  그것은 모차르트 자신이 어린 시절 군중들에게 천재소년으로 소비되고 마는 가벼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다. 


 영화 <아마데우스>도 브금에 모차르트의 300번대 작품, 그랑 파르티타를 깔면서 이러한 느낌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흘러나오는 음악 "그랑 파르티타"를 우연히 접하고 음악판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는 살리에리가 멘붕에 빠져버리는 장면 말이다. 이런 음악은 작곡 기법에만 통달해 있다 하여 절대 만들 수 없는 음악이다. 모차르트는 20대 초중반에 이르는 이 기간 본인의 천재성을 처절하게 증명한다. 그래서 이 기간의 300번대 작품들은 유난히 규모가 큰 곡이 많고, 구성적으로도 매우 탄탄하며 멜로디 라인도 남다르다. 300번대 작품들이라고 칭하면 이미 그 번호대에만 100곡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중요하거나 반드시 들을 만한 작품10곡만 추려 소개한다. 모차르트와 빨리 친해지고 싶다면 300번대 작품들과 먼저 친해지는 것이 무조건 좋다.


교향곡 33번 Bb장조 K.319 

플룻 협주곡 1번 G장조 K.313

2대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Eb 장조 K.365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b 장조 K.364

피아노 소나타 8번 a단조 K.310

피아노 소나타 13번 Bb장조 K.333

디베르티멘토 D장조 K.334

그랑 파르티타 Bb장조 K.361

대관식 미사 C장조 K.317

오페라 <후궁탈출> K.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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