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에 열쇠가 있다!
지금 코로나 시국 떄문에 괴롭다. 누구든 그러하다. 특히 내가 사는 곳 대구는 사실상 도시의 기능이 올스톱 상태고, 밖에 1분이라도 나가는 것도 두려울 정도다. 그런데 이러한 엄중한 상황보다 더 나를 힘들고 화나게 하는 상황은 따로 있다. 신천지 탓이니, 정부 탓이니, 중국인들 탓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며 서로 편가르기에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가 하면,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왜곡된 가짜뉴스가 휴대폰의 화면을 가득 매우기가 다반사다. 이런 상황 가운데 의견이 부딪히게 되면 서로 얼굴을 붉히고 관계를 손절하니 마니 할 때도 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어차피 이렇게 엉망이 된 상황, 누구 탓을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샤워 한 번 더 하고, 손 소독 한 번 더 하고, 입은 옷은 철저하게 빨래를 하고, 외출시에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개인 위생에 각자가 신경을 쓰는 것이 정답이다.
이 지루하고 또 두려움을 안겨주는 시국에, 슈베르트가 가슴으로 들어온다. 슈베르트의 인생과 그의 음악들이 이런 시국을 헤쳐나가는 지혜의 힌트를 주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인생은 한 마디로 그냥 앞으로 꾸준히 끝까지 걸어가는 인생이다. 다만 절도 있는 걸음걸이는 아니다. 빨리 갔다가 천천히 갔다가 길거리에서 야생동물이나 개, 고양이를 만나면 일부러 대화를 걸어보기도 하면서, 길가에 핀 꽃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걸어가는 움직임이다. 슈베르트의 음악들, 특히 기악곡의 경우는 의외로 길이가 무식하게 긴 곡들이 많은데(심지어 가곡들도 심하게 긴 곡들이 심심찮게 있다), 이런 곡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를 간단히 줄여 설명하면 “절망 속의 희망”이다. 가슴이 아려올 정도로 구슬프게 가고 있는 음악 가운데, 마치 브레이크를 걸듯이 희망이 섞인 화성들을 보물찾기처럼 곳곳에 숨겨놓는다. 그래서 나 한정으로 슈베르트라는 작곡가를 고속도로의 몇km짜리 장대터널에 비유하곤 한다. 터널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 끝은 있기 때문이다. 터널의 끝을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이 중간중간 나타나는 희망적인 화성에서 보이는 것이다.
슈베르트 : 피아노 소나타 Bb장조 D.960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피아노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는 이러한 슈베르트표 플롯의 “끝판왕”이다. 어떻게 보면 평온하고, 어떻게 보면 불안하고, 어떻게 보면 심연의 슬픔이 녹아 있는, 음형적으로는 간단하지만 다중적인 의미를 품고 있는 주제가 무려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제시부 반복을 지킬 때 기준) 약간은 중구난방으로 전개되는 1악장, c#단조의 탄식의 정서를 담고 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주제를 가지면서 그것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장조로 바뀌면서 희망을 강하게 노래하며 마무리되는 2악장,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좀 알아챌 만하면 훅 끝나버리는 3악장, 그리고 희망적이지만 중간중간에 자꾸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 분위기를 잔뜩 연출한 뒤 급하게 밝은 결론을 내고 끝내버리는 4악장. 그런데 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심상을 한 줄기로 꿰어보면 또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온다. 다 듣고 나서 느껴지는 결론은 엉뚱하게도 “강인한 의지력”이다. 중간에 무슨 짓을 했든간에 꿋꿋이 포기하지 않고 이 긴 시간의 걸음을 완주해낸 느낌인 것이다. 여기서 코로나 시국을 대하는 지혜의 힌트를 뽑아낼 수 있다! 언뜻 들으면 귀 얇게 이리저리 허둥대고 있는 것 같지만, 어쩄든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간 끝에 결론을 내고 있으니까. 때로는 신파조스럽다 싶은 멜로디는 비록 좀 징징대기는 하지만 누군가를 공격적으로 욕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고, 꿋꿋이 자기 일을 하며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정서만 남아 있다. 이 시국이 어떤 형태로든지 힘들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는가? 특히 피날레의 코다 29마디는 강렬한 결론을 내준다. 이 코다 직전까지 음악의 흐름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하며 참으로 우유부단하게 돌아간다. 그런데 뜬금없이 단호한 포르테가 프레스토의 템포를 취하고 당당하게 확 들어오면서 코다가 시작된다. 해석하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겠으나, 내가 느끼는 바는 방황 끝에 외치는 “유레카!”라는 느낌이다. 코로나 시국을 대하는 자세는 이 곡에서 다 나오는 것이다. 비록 힘들더라도 이 고약한 전염병의 끝은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 꼭 신을 믿는다는 개념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이 고난의 끝은 반드시 온다는 믿음만 건져올 수 있다면 족하다.
내가 느낀 바를 연주의 해석에 적용해 본다면, 슈베르트는 멘탈이 건강했다고 가정해야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틀린 해석이 결코 아니다. 슈베르트는 멘탈이 건강한 인물이라는 가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희망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 불건강한 사람일 리는 없지 않은가? 물론 슈베르트의 31세라는 짧은 인생과 사인을 보면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멘탈은 누구보다 강인하고 건강한 인물이었음이 확실하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정신력은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 이 엄중한 시국에, 슈베르트가 가진 그 정신력을 무기 삼아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