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안녕

월간 유랑 - 24년 10월

by 유랑

2023년 12월 28일, 특별한 목요일 밤이었다. 새해에 앞서 몸과 마음을 정돈하겠다며 연차를 내고, 이어질 4일의 휴가를 기대하고 있었더랬다. 무얼 하면 신나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 들떠하던 그 때,


‘♩♪♩♬’


익숙한 전화 알림음이 울렸다. 발신인은 할머니. 평소 밤 10시만 되어도 잠에 드시던 할머니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전화를? 당시 썸 타던 이와 신나게 카톡을 주고받으며 핸드폰을 쥐고 있던 나는, 직전까지의 설렘이 왠지 모를 불안으로 삽시간에 바뀜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고XX 할머님 손녀분 맞으신가요? 저는 XX지구대 XXX순경입니다.”


낯선,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심장이 미친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전화기 너머 주변은 소란스러워 보였고, 작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다음 이어진 말을 듣고 나는 마치 이마를 한 대 세게 맞은 듯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XX 할아버님이 댁에서 돌아가셨어요. 저희는 할머님 연락을 받고 왔고요. 할머님께서 어머님께 먼저 전화드리셨다는데 안 받으셨다고 하시네요. 혹시 댁에 같이 계신가요?”


사실 나는 몇 년 전 두 분이 많이 아프시기 시작한 후로 늘 이 순간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조금이라도 늦은 시간 전화기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름이 뜨면 별 일 아닐 거라 가슴을 다독이며 전화를 받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안도와 함께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내내 회피해왔던 일이 이제 현실이 되었구나. 예상했다고 해서 충격이 덜한 건 절대 아니구나.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안방의 엄마에게 달려갔다. 핸드폰을 멀리 둔 채 다큐를 시청하고 있던 엄마는 전화를 건네 받았고, 우리는 함께 상황 설명을 들은 뒤 곧바로 나갈 채비를 마치고 은평구의 할머니댁으로 향했다.


엄마는 그 날 점심, 할아버지가 배가 아프다고 하셔서 병원에 모시고 다녀왔다고 했다.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지병 때문인지라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자 엄마는 대학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으나 할아버지가 한사코 거절하셨다고 한다.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고, 고작 며칠 누워 있으면서 그 돈을 내기 싫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고집이 센 분이었다. 엄마는 이기지 못했고, 할머니댁으로 가는 동안 그걸 자책했다.


고집, 그래 우리 할아버지는 고집이 참말로 센 분이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지고 계셨고, 자존심도 강하셔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것도 싫어하셨다. 늘 뭐든 당신이 옳다며 우기시곤 했는데, 놀랍게도 대부분 그가 옳았다. 병원에 한참 입원해 있다가도 당신의 몸은 당신이 제일 잘 안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원하셨는데 그 후 놀랍게도 호전된 모습을 보이실 정도였으니.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할아버지가 이번엔 틀리셨다. 그리고 그 한 번의 틀림은 그를 가족들과 미처 인사할 시간도 없이 떠나게 만들었다.


익숙한 집, 도착해 보니 경찰차가 서 있었다. 우리를 맞아준 건 경찰 두 분이었고, 할머니는 안방 바닥에 허망하게 앉아 계셨다. 할아버지는 거실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은 채 누워 계셨다. 구급대가 먼저 와서 침대에 있는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이송하려 옮기던 와중 이미 숨을 거둔 상태라는 걸 알아챘고,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해 거실에 내려둔 거였다.


엄마와 함께 병원에 다녀오신 뒤에도 할아버지는 내내 복통을 호소하셨다고 한다. 점점 심해지는 복통에 119를 불러달라고 하셨으나 할머니는 그저 참으라고 하셨단다. 저번에도 그러지 않았냐며,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 할아버지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져만 갔고, 핸드폰 조작법이 익숙하지 않던 할머니는 한참을 헤매다 외삼촌에게 연락해 구급대를 불러달라 하셨다고 한다.


집에 도착해 확인한 할머니는 온 정신이 다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눈물도 흘리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바닥에 앉아 계셨다. 손을 떠셨고, 이 상황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참으라고 한 당신의 말을 후회하며 자책하고, 자책하고, 거듭 자책했다. 아파하는 할아버지 곁에서 한참을 홀로 발 동동 구르셨을 할머니를 상상하며 가슴이 미어짐을 느꼈다. 가뜩이나 작은 할머니가 스스로를 계속 쪼그라들게 해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두려웠다.


곧이어 가족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가 어떤 순서로 도착했는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들 한껏 당황해 집안에 들어선 뒤, 이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 바빴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장례 절차는 순조롭지 않았다. 집에서 돌아가셨을 때 어떤 식으로 장례를 치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혹여나 사건 가능성을 확인하는 경찰에 답하셔야 했고, 외숙모는 아는 상조회사에 전화를 거셨으며, 나는 주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지금 상을 치를 수 있는지 물었다. 지독한 슬픔 속에서도 우리는 현실에 발 붙인 채 그를 잘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하여간 2023년의 연말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사실 이튿날이었던 29일은 오랜만에 사촌 모임을 하기로 했던 날이었다. 한 살 터울인 5명의 사촌들이 다같이 모여 재미난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며 약속을 잡아두었더랬다. 짧은 저녁 시간을 기대했던 나는 이렇게 온 가족이 3일 내내 함께 붙어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할아버지가 우리끼리만 만나는 걸 질투하셨나 봐. 이렇게 다같이 모이게 하신 걸 보니. 정말 오랜만에 긴 시간 함께 있으니 또 좋네.”


뭐든 긍정적으로 풀어내 주위 사람들까지 동화시키는 작은 사촌 언니가 말했다. 그래 맞아, 한참 어렸을 땐 툭하면 다같이 모여 자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다 크고 나선 그런 일이 거의 없었지. 마치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우리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준 것 같았다. 못해드린 것만 생각하며, 홀로 남게 된 할머니를 걱정하며 두 분을 어엿비 여기고만 있던 나를 웃게 만든 말이었다. 한 번 웃고 나니 긍정적인 생각이 살금살금 차올랐다. 내가 다 모를 그의 인생을 멋대로 안타깝게 여기지 말고, 아름답게 추모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상을 치르는 3일 동안 우리 가족은 실컷 울고 또 실컷 웃었다. 인사도 못하고 황급히 떠난 할아버지를 그리고 슬퍼하는 한편, 그래도 사고를 당하거나 많이 아프다 돌아가신 게 아니니 한결 낫다며 마음을 다스렸다.


각자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와의 추억들을 나누기도 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고스톱을 함께 치며 놀았던 것, 늘 서랍에 있던 유가 사탕의 달콤함, 겨울이면 혹여나 식을까 외투 안에 꽁꽁 싸매 사다주시던 붕어빵과 호떡, 할아버지가 태워주시는 자전거 뒷자리에 타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던 기억, 가만히 놀고 있으면 괜히 지나가다 발로 꼬집던 짓궂음, 온라인 고스톱에 몇 조가 있으니 부자라고 말씀하시던 장난기, 자주 찾아뵙지 않으면 전화로 절교라며 핀잔 주시던 목소리… 각자가 그리는 할아버지에 공감하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며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그를 기억했다.


“장례식장에서 손녀 손자들까지 이렇게 슬퍼하며 자리지키는 잘 못 봤는데, 할아버지가 정말 사랑꾼이셨나봐.”


장례식에 찾아와주신 분들은 우리를 신기해했다. 동시에 이런 가족을 가진 할아버지를 부러워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참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사는 동안 대단히 돈을 잘 벌거나 이름을 날리신 건 아니지만, 결국 죽음 뒤에 그것이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 중, 이렇게 선하고 따뜻한 가족보다 더 아름답고 유의미한 게 있을까? 3일간의 많은 대화로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 모두를 사랑으로 키웠음을 여실히 느꼈고, 그 점이 참 감사했다. 나도 꼭 이런 가족을 꾸리겠노라 다짐도 했다.


어느덧 할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난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몸이 많이 안 좋아지시고 난 후부터 할아버지는 가족 모임에서도 방에 누워 계시는 경우가 많았다. 여전히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다가도 ‘방에 할아버지 자고 계실 것 같다, 그치?’ 하며 얘기를 나눈다. ‘뭐 먹을쳐?’, ‘복날인디 삼계탕 먹으러 와라!’, ‘코오맙다’ 하는 작은 사촌 언니의 익살스러운 성대모사 하나에 깔깔 웃다가 살짝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이젠 기억 속에만 있는 할아버지를 자꾸자꾸 꺼내며 우리 곁에 두려 한다. 그게 남은 가족들이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글을 쓰며 참 많이 울었다. 그립다. 사무치게 그립다. 그럼에도, 웃으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