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월간 유랑 - 24년 11월

by 유랑

“넌 나중에 애 낳을 거야?”


아주 어릴적,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이 질문을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너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냐는 질문. 그 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 같았다.


“아니, 절대”


이유는 항상 바뀌었다.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 자신이 없어서, 좋은 남자를 못 만날 것 같아서, 이런 끔찍한 세상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진짜 속마음을 내비친 적은 없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같은 애 낳기 싫어서.


나는 우리 집안의 유우명한 금쪽이었다. 반골 기질이 강해서 어른들에게 대들기 일쑤였고, 누가 모순된 말을 하기라도 하면 끝까지 지적해 상대의 불쾌감을 자아내곤 했다. 엄마한테도 참 많이 못되게 굴었다. 무시하고, 따르지 않고, 상처주는 말들을 뱉으며, 그렇게 자랐다. 일단 기분이 나쁘니 반항을 하면서도 스스로 참 악마같다 생각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내가 싫었다.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다짐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게 싫었다. 오로지 기질 탓이라 생각했고, 바뀔 수 없다 믿었다.


자격지심도 꽤 있는 편이었다. 자신감이 부족했고, 주변 눈치를 많이 봤다. 아주 어릴 적엔 자신감이 너무 넘쳐 문제였던 것 같은데, 커가며 깨지고 깨지고 깨지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늘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보며 살았다.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비교 속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열등감에 매몰되어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내가 점점 더 싫어졌다.


한편, 열등감은 동력이 되기도 했다. 부족하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끝없이 채찍질하게 만들었다. 주변에서 그 정도면 됐다고 할 때도 나는 늘 더, 더 갈망하며 살았다. 반에서 1등을 하면 전교 1등을 하지 못한 것을 힘들어했고, 전교 1등을 하면 전국에서는 먹히지 않을 거라며 두려워했다. 나는 못났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수준 이상은 올라갈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면서도, 늘 나보다 높이 있는 사람들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살았다.


동기가 뭐였든 노력은 내게 큰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목표했던 것보다 높은 수준의 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전산 오류 아닌가 생각할 만큼 기대도 안 했던 결과였다. 일단 기뻤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쓸만한 건가?’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방심은 금물이랬던가. 막상 대학에 가니 열등감은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폭발했다. 특정 몇몇 친구들만 부러움의 대상으로 뒀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엔 집단 전체가 나보다 잘난 사람들로만 꾸려진 것처럼 보였다. 열등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쓸어가버렸다. 나는 그저 허우적대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튜브 하나가 떠내려온 날이 있다. 유독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 온 세상이 캄캄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나와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덜컹, 덜컹,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끔찍하게 녹초가 되어 있었다. 멍하니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하루를 복기해 보았다. 강의엔 하나도 집중하지 못했다. ‘나같은 건 들어봤자 이해할 수 없을 거야’ 하며 회피했다. 동기들과의 관계에서는 못난 모습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아이가 보였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고, 자아가 없는 양 굴고, 보기 좋게 꾸며내는 행동을 잔뜩 해댔다.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었다. 밖은 어두웠고,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은 안쓰럽기만 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우산을 안 가져왔다고 말하니 웬일로 엄마가 정류장으로 데리러 왔다. 평소 같았으면 독립심을 강조하며 ‘스스로 잘 알아보고 챙기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뛰어와라’ 했을텐데 별일이지 싶었다. 각자 우산을 쓰고 나란히 집으로 걸어가는 길,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렸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요즘 표정이 계속 안 좋네.”

“별 일 없어.”

“근데 왜 그렇게 죽상이야?”

“아니야…”

“누가 괴롭히기라도 해?”

“…”


걱정되어 나왔구나. 그 무심한 엄마가 보기에도 요즘의 나는 심히 버거워 보였구나.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어’, 한 번 눈물이 나니 겉잡을 수 없었다. 빗소리에 내가 우는 소리가 묻히길 바라며 엉엉 울었다. 그럴리가. 둘은 전혀 다른 소리를 가진다. 당연히 엄마는 나의 울음을 눈치챘고,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나는 지독한 열등감을 고백했다. 내 주변에 나보다 못난 애가 없는 것 같다 말했다. 나의 꼴 보기 싫은 점들을 하나하나 꼬집었다.


“그런데 유랑아, 꼭 남보다 잘나야 하는 걸까? 좀 별로면 어때,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할 줄 알면 되는 거야.”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엄마는 말했다. 너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고. 네가 누구보다 잘나길 바라면 평생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왜냐면 어떤 면에서든 세상엔 늘 너보다 잘난 사람이 있을테니까. 그러니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남이 아닌 어제보다 나은 나에 집중하며,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어느덧 집 앞이었다. 우리는 우산을 접고 탁탁 턴 뒤 빛이 환한 집에 들어섰다.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머리를 띵 맞은 듯- 깨달음이 찾아오진 않았다. 나도 다 아는 얘기였거든. 머리론 아는데 마음으론 안 되는 걸 어떡하냐고 반문했다. 엄마는 계속 노력하면 될 거라고 했다. 정말 가능할까, 무력감이 찾아왔지만 누구보다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조언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엉엉 울고나니 속이 시원해진 덕도 있었겠다. 이미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마음을 다잡을 힘 정도는 생겼음을 느꼈다.


엄마의 조언은 열등감의 바다에서 나를 완전히 꺼내줄 구명선의 역할은 해주지 못했지만 조금 더 잘 허우적댈 수 있게 하는 튜브의 역할은 해줬다. 그 위에 올라탄 나는 스스로 헤엄치기 위해 분투했다. 우선 매일 일기를 쓰며 내 마음을 살폈다. 오늘 왜 그런 부끄러운 행동을 했을까,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구나, 다음엔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적었다. 글 말미에는 그래도 사랑한다 꼭꼭 적어넣었다. 매일 그렇게 스스로를 보듬었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멋있게 느껴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을 멋있다고 느끼나?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취미가 있는 사람,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을 찾았다. 그 기준에서 내가 그동안 이뤄낸 것들을 충분히 칭찬했고, 더더욱 이뤄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성취의 경험을 나에게 선물하며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아 갔다.


비 내리던 그 날 밤으로부터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너무 많이 발견하곤 한다. 횡설수설 말하는 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 상대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 감정을 온몸으로 티 내고 싶어 하는 나, 깊이 사고하지 못하는 나, 회피하는 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나, 질투하는 나,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나, 미움받고 싶어 하지 않는 나,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나...


한편, 마음에 드는 내 모습 또한 너무 많이 발견한다. 계속 반성하는 나, 노력하는 나, 그렇게 발전하는 나, 스스로를 잘 돌보는 나,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 쉽게 감동하는 나, 하고 싶은 일을 찾은 나, 즐겁게 일하는 나, 성취의 즐거움을 아는 나, 쉽게 감명받는 나, 좋은 글을 써내는 나, 책임감 있게 임하는 나, 뭐가 옳고 그른지 아는 나, 욕구를 절제할 줄 아는 나, 긍정의 힘을 믿는 나!


사랑하면, 사랑하기로 결정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6년 전 마음가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절대 자각하지 못했을 나의 모습들이다. 이제 나는 자기혐오에 빠지는 시간이 매우 드물어졌다. 감기처럼 찾아올 때는 빠르게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실천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넌 나중에 애 낳을 거야?”


답은 변했다.


나는 이제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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