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유랑 - 25년 7월
무슨 글이든 써야 한다- 생각하며 누워서 핸드폰 게임만 한 지 5시간 째, 문득 나의 중독 역사에 대해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소설, 게임, SNS, 유튜브, 드라마, 만화… 중독자로서의 나를 풀어보자.
내가 중독에 취약하다 깨닫게 된 건 아주 어렸을 때였다. 뭔가 한 번 재미가 들리면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곤 했으니까. 무언가를 하며 밤을 꼴딱 샌 적도 여러 번이고,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중독 대상에 빠져있기 일쑤였다.
명확히 언제부터 그렇게 중독자 기질을 보였냐고 묻는다면, 중학생이 되며, 내 방과 핸드폰을 가지게 된 시점이라고 답하겠다. 그 전에도 DVD, 인터넷 게임, 만화책 등 다양하게 좋아하긴 했지만, 엄마의 통제에 의해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했다. TV와 컴퓨터는 모두 엄마 방에 있었고, 만화책은 가지고 있는 게 한정적이었으니, ‘그만해’, ‘안 돼’ 하면 툴툴 대면서도 멈출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통제되는 삶을 살던 중, 중학생이 되었다는 이유로 나는 해방되었다. 나만의 공간과 물건, 끝없는 콘텐츠의 향연을 누리게 되어 버린 거다. ‘아, 드디어 나를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존중해주는구나.’ 당장 당시 유행이었던 인터넷 소설들을 몽땅 다운 받아서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미처 생각지 못한 게 있었다. 나의 신분은 학생, 고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 학교와 학원에 가고, 친구들과 놀고, 숙제를 하면 어느덧 잘 시간이었다. 흠, 어쩔 수 없지. 자는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침대에 누워서 인터넷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진짜 이 화면에 보이는 글까지만 읽고 꺼야지 생각해도, 엄지는 슬쩍슬쩍 움직였고, 스크롤은 자꾸자꾸 내려갔다. 중간에 깨서 화장실에 가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이불 속에 숨어 소설을 읽어 나갔다.
웬만한 인터넷 소설을 섭렵하고 나서는 드라마로 중독 대상을 넓혀 나갔다. 이번 편까지만 보고 꺼야지- 아무리 다짐해도 다음 편을 너무나도 궁금하게 만드는 엔딩에 속절없이 다음 편 보기를 클릭하곤 했다. 미디어의 노예라고 봐도 무방한 시절이었다. 그나마 평일에는 피곤하니까 신체적 한계로 금세 잠들었지만, 주말에는 해가 뜨고 나서 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떤가. 여기까지 읽고 나서 혹시 그만의 취미를 가진 평범한 아이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아니, 만약 그랬다면 나는 이걸 ‘중독’이라 명명하지 않았을 거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실은 그렇게 밤새 미디어를 탐닉하고 나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즐거움이 아닌 현타였다는 것이다. 물론 볼 때는 너무 재밌고 좋았지만, 통제력이 없는 스스로가 못마땅했다. 중독에 빠져 할 일들을 미루다가 허겁지겁 해내는 것도 꼴 보기 싫었다.
결국 내가 취미를 취미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할 일들’에 있었다. 엄마는 늘 나에게 스스로 밥 벌어 먹고 살 줄 아는 어른으로 커야 한다고 가르쳤고, 나는 누워서 취미 생활을 하면서도 이러다가 밥 벌어 먹지 못하게 될 거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에게 ‘할 일’을 다양하게 부여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친구도 많이 만나야 하고, 운동도 꾸준히, 견문도 많이 쌓아야 하는 거다. 이렇게 할 게 많은데 누워서 티비만 보다니, 앉아서 게임만 하다니, 말도 안 되는 거지.
이상과 다르게 내 안에 있는 본능과 욕구는 계속해서 나를 무너뜨렸다. 나는 기본적으로 도파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고, 대학생에서 직장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수시로 중독에 빠졌다. 때마다 대상은 달랐다. 인터넷 소설, 드라마로 시작해서 핸드폰 게임, 컴퓨터 게임, SNS, 유튜브 등 다양한 것들이 내 시간을 녹이려 들었다.
중독과 싸우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시험 기간에는 핸드폰을 집에 두고 다닌다거나, 일찍 잠들기 위해 스크린 타임을 설정해놓는다거나, 앱을 지운다거나, 계정을 삭제한다거나. 그러나 이런 무자비한 통제는 여지없이 핵폭탄같은 중독을 이끌어냈다. 잘 절제하다가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파민만 찾게 되는 것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전체 총량으로서의 도파민 찾기는 늘 내 삶의 일정 부분을 차지했다. 이것에서 탈출하면 저것에 중독되었고, 저것에서 탈출하면 또 다른 것에 중독되었다.
가장 최근에 중독된 것은 스타듀밸리라는 농장 게임이었다. 늘 그랬듯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밤을 꼴딱 새고 출근 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낮에는 회사 일을 하고, 밤에는 농장 일을 하며 사서 고생하는 스스로가 의문이었다. 주말에 제천으로 가족끼리 놀러 간 날에는, 노트북을 챙겨가서 주변에 정말 좋은 계곡과 산을 두고 게임 속에서 낚시를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취미를 취미로 즐기지 않고 나쁜 것으로 인식하니까, ‘왕창 해버리고 다시는 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는 거다. ‘오늘까지만 하고 내일부터 갓생 사는 거야’라는 생각이 나를 중독으로 이끌었다. 결국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고, 취미 생활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도파민을 일정 부분 넣어줘야 중독으로까지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이제 나는 내가 어떤 것에 빠져있든 얼마나 오래 빠져 있든 너무 과하게 통제하지는 않으려 한다. 언젠가의 내가 정신 차릴 것이 분명하고, 또 얼마간 드럽게 스트레스 많이 받았거나 부담감이 과해서 터졌나 보다 싶어서 그렇다. 지금의 나를 막더라도 언젠가의 내가 터질 게 분명하니 그냥 내버려둔다.
자 이제 스크롤을 올려 첫 문장을 다시 읽어보자.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 에세이를 쓰는 것이 최근 내게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당분간 핸드폰 게임을 쳐다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