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잠수 탈까?

월간 유랑 - 25년 6월

by 유랑

‘♩♪♩♬♪’


알람이 울린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는다.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5시 45분. 으악.


“그냥 다시 잘까…”

“우움… 아니 안 되지… 약속했잖아…”


“우리 둘만 가기로 한 거였으면 안 갔을 거 같애…”

“우움… 맞아…”


그래, 가야지… 어른은 약속을 지켜야지… 아주 조금만 더 눈을 감고 있다가 미적미적 몸을 일으킨다. 아주 조금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다시 보니 벌써 6시가 넘었다. 그새 쪽잠을 잤다고? 침대에서는 시간이 늘 이상하게 흐른다.


오늘은 (가능하면) 매주 목요일에 만나 함께 뛰는 사람들과 산행을 가는 날. 혹자는 그런 모임을 ‘러닝크루’라고 부르던데, 왠지 거창하게 느껴져 구구절절 풀어 써본다. 사실 그렇다기엔 크루명도 있다. ‘뜀뛰미 크루’, 별 뜻은 없고 그냥 어감이 귀여워서 정해졌다. 크루원은 총 7명. 애인과 나, 애인의 친구 3명과 친구들의 여자친구, 아내까지 함께하고 있다. 사실 러닝크루라고는 하지만 각자의 페이스가 너무나도 달라 같이 뛰지는 않는다. 그저 각자 뛰고 모여서 저녁을 먹는 정도?


이 7명 중 요주의 인물들이 있는데, 그건 바로 대학원생과 약사 커플이다. 이들은 내가 보기엔 미친 운동광이다. 운동을 운동으로 안 치고, 놀이로 치는 그런 사람들… 데이트로 러닝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테니스를 즐기며, 계절에 맞게 가기 좋은 산을 아는 사람들. 운동 얘기를 하며 설레고 가슴 뛰어하는… 그런 사람들…


이번 산행도 이들이 추진했더랬다. 어느 한 날, 러닝을 마치고 저녁을 먹던 중 ‘너무 더워지기 전에 등산 한 번 가자’는 얘기를 슬 꺼내더니, 나머지가 대충 동의하는 눈치이자 이때다 하며 바로 일정을 잡고,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하며 코스까지 정했다. 그렇게 정해진 코스는 인왕산 - 북악산 - 청와대. 내게는 각각으로도 충분한 콘텐츠가 되는데, 이 사람들은 세 군데 정도는 함께 돌아야 땀이 좀 날 것 같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맞이한 주말 아침. 나도 모르는 쪽잠을 잔 터라 시간이 빠듯하다. 일단 물을 맞아야 잠이 깨니 후다닥 화장실로 향한다. 최소한의 외출 준비를 마치고 6시 20분쯤 집을 나선다. 여기는 몽촌토성역, 목적지는 무악재역.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새벽 7시 30분에 만나기로 했으니 딱 맞게 도착할 듯 싶다.


그래도 막상 나오니 기분이 들뜨며 마구 신이 난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애인과 사진을 몇 장 찍어본다. 지하철이 들어온다. 사람이 얼마 없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 달리, 앉을 자리가 거의 없다. 평소의 내가 자고 있을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구나 실감한다. 하지만 오늘은 우리도 부지런하게 나왔다구- 뿌듯함을 느낀다.


‘아침 먹고 오나?’

‘맥모닝 드실?’


그때 울리는 카톡. 약간의 현타가 찾아온다. 우리는 간신히 일어나서 겨우 제 시간에 도착할 예정인데 맥모닝을 사올 시간까지 있다니. 심지어 의정부에 살면서… 뭐 하여튼 땡큐지, 무려 아침을 사다주겠다는데. 부지런한 친구들을 두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생각하며 재빨리 메뉴를 골라 보낸다.


‘베이컨 에그 맥머핀 - 해쉬브라운 - 아아’

‘베이컨 에그 맥머핀 - 코울슬로 - 아아(디카페인)’


7시 30분에 거의 맞춰 무악재역에 도착했다. 역시나 이 커플은 이미 의자에 자리 잡고 맥모닝을 먹고 있다. 우리도 늦지 않았음을 어필하며 옆에 앉아 맥모닝을 먹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일이 있다고 했으니, 오늘 산행의 멤버는 우리 넷이 전부다.


각자의 맥모닝을 맛있게 먹고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선다. 무악재역 2번 출구로 나가 아파트 내에 있는 등산로로 향한다. 인왕산을 몇 번이나 와봤지만 이렇게 가보는 건 또 처음이다. 역시나 이 커플이 알아온 길이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주위 풍경을 감상한다. 내가 다니던 길보다 훨씬 아름답다. 전날 밤 내린 비가 풀마다 살짝씩 맺혀 있어 잘 가꿔진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눈에 초록을 가득 담는다. 풀내음을 가득 들이마셔본다. 아- 너무 좋다. 자연의 생명력을 만끽한다.


흙을 밟고 나무 계단을 오르고, 돌을 건너고, 비탈길을 오르니 금새 인왕산 정상이다. 338m 고도의 산을 오르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린듯 하다. 왜 산 하나로는 아쉽다고 했는지 살짝 이해가 되기도 한다.


정상에 앉아 우리가 출발하며 사온 오렌지와 초콜렛을 자랑스레 내민다. 아뿔싸- 본인들도 오렌지를 가져왔단다- 심지어 먹기 좋게 잘라왔단다- 하지만 그건 이따 먹고 지금은 이 오렌지를 먹겠단다- 흥… 잘났어 정말. 미친 준비력에 질투를 느끼며 오렌지를 까 입에 넣는다. 달콤상큼한 과즙이 입안을 감돈다.


기분 좋게 내려와서 이번엔 북악산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있는 인왕산 숲속 쉼터에 가보려 했는데, 영업 시간이 10시부터라서 입장을 못 했다. 10시는 커녕 아직 9시도 안 됐으니 택도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더 걷다 보니 청운문학도서관이 나온다. 다행히 여기는 9시부터 영업을 한다. 주위를 둘러보며 잠깐 기다리니 문이 열린다. 살다살다 도서관 오픈런을 다 해보네-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구경한다. 숲속에 자리 잡은 도서관과 한옥으로 지어진 열람실이 참 예쁘다. 직원 분이 인공 폭포를 트는(?) 것도 구경한다. 따사로운 햇살, 쏟아지는 물, 새소리까지 어우러져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실컷 잘 쉬었으니 이번엔 북악산에 오를 차례다. 오기 전에 인왕산과 북악산 둘 중 하나는 ‘지옥의 계단’이었는데… 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북악산이었다. 인왕산을 오를 때는 주위 풍경을 보며, 풀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가지며 오르던 커플이 북악산 지옥의 계단을 맞이하고는 갑자기 훈련 모드로 돌변한다. 멈추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우다다다 올라가는 그들의 뒷꽁무니를 쫓아 부지런히 오른다. 물론 나는 중간중간 멈춰가며…


아 진짜 너무 힘들다- 꼴딱꼴딱 넘어갈 것 같은 숨을 몰아내쉬고 다시 오르기를 네다섯 차례쯤 반복했을 때, 얼라리? 벌써 정상이란다. 원래 북악산 코스가 이렇게 짧았나- 아니면 그간 이 사람들과 함께 한 덕분에 나도 모르게 성장한 건가. 갑자기 찾아온 끝에 어안이 벙벙하다. 다시 오렌지를 까먹고, 인증사진을 찍는다. ‘아~ 너무 쉽다~’ 하고 괜히 허세를 떨어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직 코스가 안 끝났다는 사실. 북악산을 내려오며 청와대로 연결되는 길을 찾아 걷는다. 슬슬 발이 아파온다. 어찌저찌 청와대에 들어선 시점에서 이미 나는 너덜너덜 지쳐있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또 왜 이리 넓은지, 이 사람들은 또 왜 이리 안 지치는지. 끌려다니는대로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니 또 좋다. 정원이 정말 지금까지 본 어떤 정원보다 잘 가꿔진 느낌이 나서 볼 맛이 있다.


아니… 그것도 잠시 이제 진짜 체력에 한계가 찾아온다. 의자에 앉아서 좀 쉬다가 제발 이만 가자고 호소한다. 아직 못 본 곳들을 대충 스윽 훑고 청와대를 나선다. 경복궁역 근처에서 뜨끈한 삼계탕을 한 그릇 먹고 헤어지기로 한다. 국물이 어찌나 깊던지… 곁들인 인삼주와 막걸리가 이렇게 달 수 없다.


“다 먹고 배부르니까 산책 겸 근처에 등산화 아울렛 매장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네? 아뇨… 저는 이미 방전입니다만? 얼른 삼계탕과 남은 술을 해치운 뒤 혹시라도 붙잡힐까 뒤도 안 돌아보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집에 와서 기절의 낮잠 자기. 깨어나니 어느새 저녁이다. 종아리가 미친듯 땡겨온다. 이 종아리 땡김이 이후로 거의 5일을 갔다.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부들부들 떨며 지난 날의 과욕을 후회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웃기게도 땡김이 좀 덜해질 때쯤에는 자꾸만 그 날을 곱씹게 됐다. 함께함으로써 새롭게 경험하고 즐긴 것들이 참 좋았다. 혼자라면, 혹은 애인과 함께라면 몰라서 못 했거나, 알아도 안 했거나, 미루고 미루다 1년이 넘어갈 일들이었다. 힘듦은 미화되고 아름다운 풍경들만 생각이 났다. 가끔은 반강제로 움직이는 것도 좋다- 싶었다.


어느덧 괜히 또… 다음 러닝 날짜를 기다리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 때, 지켜보기라도 한 듯 마침 카톡이 울린다.


‘이번 주 인터벌 러닝 제안’

‘800m 5:00/km - 400m 조깅(약 7:00/km) >> 1200m*5해서 6키로 어떠세여’

‘장소는 양재시민의 숲 :D’


내 러닝 페이스인 7:00/km가 이 사람들에게는 조깅 페이스구나…

아… 잠수 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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