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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호 Jun 19. 2020

대가족 시대의 마지막 초상

양승욱 작가, [Home, Bittersweet Home]

타인의 조부모의 마지막이 왜 이렇게 내 조부모의 마지막과 닮아있을까? 왜 이렇게 내 조부모의 죽음이 상기되는 걸까? 죽음은 나에게 관련 없을 때는 너무나 이성적이지만 조금이라도 그림자가 스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게 죽음이다. 90이 넘은 조부모는 평생을 사실거 처럼 곁에 있다가 일순간 가버리셨고, 70이 넘은 자식들은 아직도 기일이 돌아오면 울기만 한다. 나이가 들어도 죽음 앞에서는 이성적일 수 없다.

휴가를 나왔을 때 할머니의 얼굴에 PX에서 파는 크림을 발라드린 적이 있다. 그 때의 할머니는 이미 누군가의 주말을 뺏는 의무와 짐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알고 계신 듯 했다. 나는 쇼파에 기운이 없이 누워있다가 친척형이 틀어 놓은 격투기를 멍하게 보던 할머니의 눈빛을 기억한다. 계속 거부하시다가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는 나를 보며 마지막으로 웃으시던게 기억이 난다. 군대에 있던 나에게 아무도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 그 전에 나는 이미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었다. 엄마에게 추궁하듯이 들었던 위독하다는 소식에 패닉이 와서 생활관에서 울어버렸고(...) 급하게 나간 휴가에 중환자실 면회를 기다리다가 나를 제외한 친척들은 이미 할머니가 위독해서 모여있었지만 휴대폰이 없던 나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우습게도 할머니는 면회시간을 15분 남기고 돌아가셨고 연락이 계속 되지 않는 부모님께 전화하던 나는 문득 전화를 받은 누군가에게 소식을 듣고 바로 아랫층 공중전화를 집어던지고 뛰어올라가야만 했다. 할머니가 평생을 전화하라고 했던거 같은데 매번 지키지 않던 나는 할머니가 위독해지기 시작했을때 부터야 전화를 걸었고 이미 할머니는 몸이 아파 받지 못하신다는 도우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끊어야 했다.

작가의 사진은 카메라의 렌즈에 비춰진 모습으로 철저히 이성을 유지한다. 할머니에게 장난감을 건네줬을 때 기뻐하던 사진을 비롯해서 할아버지가 우울증이 와 울고 계신 사진 까지 철저하게 렌즈에서 비춰진 상 만을 추출해냈다. 생일케이크에 꽂힌 초를 부는 할아버지 옆에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향이 꽂힌 향로가 같은 페이지에 덤덤하게 있다. 5년이 넘는 시간을 기록한 작가는 조부모가 돌아가시고 수년동안 사진을 열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죽음의 단계를 이성적임을 유지하며 병렬시킨다. 당연한 사실이고 단계이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목에 숨이 턱 하고 막혀 내려가지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을 비롯하여,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지킬 때에도 들었던 생각이 있다. '내 노년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병원비를 내주지도, 장례식장이 북적이지도 않겠구나.' 장지에서 작가의 친척,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복을 입고 찍은 단체사진이 1인 가구가 많아지고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의견이 많아지는 지금, 어쩌면 마지막 세대의 기록일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에게 들었던 전시 할때의 해프닝이 중년의 관객들이 사진집을 보면서 자기도 곧 이렇게 될 거라면서 우셨다고 한다. 그 부분에서는 공감이 가진 않는다. 내 노년은 이 기록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해서.




5년이 넘는 시간을 80여장의 사진으로 압축한 ‘홈, 비터스위트 홈’ 속에는 병으로 점점 몸이 쇠해가는 조부모의 일상, 일평생의 마지막 시간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흑백 결혼사진이 담긴 액자들과 병원의 물품 같은 사물들이 정지해있듯, 어린이처럼 장난감에 마음을 빼앗겨 웃거나 생일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힘차게 불어 끄는 순간들이 정지된 채 담겨있다.

...

“나는 이 일을 반드시 기억하고 싶지도, 잊고 싶지도 않다. 다만 기억의 방법과 방향이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가족의 고된 시간을 감동적으로 기록해두고 싶지도 않다. 나는 어쩌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일단 카메라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

그는 기억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는 “기억하고 싶지도 잊고 싶지도 기록해두고 싶지도 않았다”지만 기억을 믿지 못하는 사진가가 가족의 죽음이라는 소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카메라를 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

마음을 굳게 먹고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작가는 수년 동안 사진을 다시 열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치 기억을 봉인한 듯 선명한 그 기록들을 한 권의 사진집으로 묶어 출간한다.


2018 [Home, Bittersweet Home], 200X250mm, 164pages. 양승욱 작가.


더 많은 작가 정보는 아래 주소에서 확인하세요.

yangseungw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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