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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호 Oct 12. 2023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2020 공공미술프로젝트 우리동네미술 <빙그레이스토리> 작가 후기

박추행 어르신, 70, 안양8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동물의 왕국>. 좋아하는 꽃은 국화. 심성이 고우셔서 예전에 돈 없는 청년에게 자신의 금팔찌를 기꺼이 풀어주기도 하셨다. 자신에게 뭔가 충분할 정도로 남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게 습관이 되셨다. 그런데 그게 오지랖이 될까 봐 오히려 걱정을 하신다. 예전에 일본에 거주하셔서 생선을 좋아하신다고 한다. 아버지가 배를 타셨는데 집에 올 때마다 생선을 한가득 가지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싫어하는 음식은 없지만 돼지고기를 즐겨 먹지는 않는 편이시라고 한다. 감정이 풍부하시고 호불호도 뚜렷하셔서 의사 표현도 확실하게 하신다. 웃는 모습이 반짝반짝 아름다우신 분이다.     

허호

본명도 허호이고 활동명도 허호다. 호걸 호자를 쓴다. 산중호걸 같은 인물로 살라고 지어준 거 같은데 그렇게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주로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젊음 이후의 성소수자·퀴어의 삶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아무것도 한순간에 늙지 않았다. 나이 들어가는 신체, 공동체 및 사람들이 살았던 건물을 관찰하고 그 시간에 주목하려 한다. 주로 그림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허호,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Always Thinking about you!, 2021, 캔버스 위에 유성 색연필과 유화, 53.0×40.9cm


만남

 

연결- 방문과 전화통화     

내가 만나게 된 박추행 어르신은 핸드폰으로 통화만 가능하셨다. 넘어진 뒤부터 어지럼증이 심해지셨고 그래서 대부분 집에 누워계시는 경우가 많았다. 어르신과 어떤 활동을 하며 친해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처음엔 손편지를 주고받으면 어떨까 해서 손편지를 써드렸다. 코로나19와 연이은 폭설에 어르신은 많이 우울하신 상태였다. 어르신은 자신이 총기를 잃어가는 게 느껴진다며 무기력하게 말씀하셨고 프로젝트를 위해 뭔가를 더 요구하며 부담을 드리고 싶진 않았다. 어르신과 통화를 해도 그렇게 순조롭게 대화가 이어지진 않았다. 아직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걸면 어르신은 보통 어지럼증 때문에 누워 계시거나 자다가 받으시는 경우도 많았다. 아니면 조카분이 대신 받아 어르신이 주무신다고 말해주셨다. 코로나19 때문에 찾아뵙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처음 어르신을 뵈었을 때, 구청에서 주는 시금치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아 차라리 생시금치를 주면 좋겠다고 하셨던 걸 기억했다. 먹는 것으로 친해지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시금치와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생선 등등 여러 가지를 싸들고 찾아뵈었다.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어르신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많이 우울하신 걸 느낄 수 있었다. 원래 당신은 내복을 서너 벌 사두고 돌려 입는데 당신이 이제 죽을 때가 된 거 같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르신 이렇게 해보세요, 저렇게 해보세요 라는 말이 다 소용이 없는 거 같았다. 그래서 밥이라도 잘 챙겨 드시길 바랐다. 후에도 이런저런 찬들을 사서 다시 찾아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찾아뵈려고 문을 두드렸을 때 어르신은 배가 아파 응급실에 가신 상태였다. 다행히 조카분이랑 계셔서 통증이 생기자마자 곧장 병원에 가실 수 있었다. 후에 어르신은 담석 제거 수술을 받았다. 퇴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걸 때마다 조카분이 대신 받아 어르신이 약을 드시고 쉬고 계신다고 하셨다. 어르신이 잘 회복하시길 바라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코로나19와 폭설에 혼자 계신 어르신들이 더 많을 텐데 생각했다. 나 또한 집에 오래 있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졸리기만 했고, 답답함이 우울함으로 변하는 걸 느끼며 힘들었다. 어르신은 항상 집에 누워 계시면서 눈길이 미끄러워 또 넘어지실까 봐 산책도 맘대로 못 나가실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 집 근처에서 장을 보면서도, 이걸 어떻게 집까지 들고 오시나 싶었다. 집 앞길은 얼어서 아주 미끄러웠다. 어르신이 반찬을 가지러 구청까지 가기 힘들어서 가지고 와주면 안 되냐고 문의하셨다고 했는데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어르신들의 거동이나 기상악화를 고려해서 찾아뵙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는 안녕을 묻기에도 죄책감을 심어주는 게 최악이다. 혹시 나 때문에 어르신이 편찮으시면 어떡하나라는 생각. 비대면으로 친구들의 안녕을 묻는 일도, 온갖 활동도 다 온라인으로 하고 있지만, 온라인에 접속할 수 없는,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도움을 청하는 일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가 없으면 도움을 청할 생각도 못 하게 된다. 지독하게 혼자라고 느낄 때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 힘들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스스로 구조요청을 외치는 걸 기다릴 게 아니라, 주변을 잘 살펴서 그 사람이 위험에 빠졌는지 알아채야 한다. 특히 어르신들의 경우에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죽을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건 어르신들의 입버릇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다. 사람이 죽을 때가 어디 있는가? 사회의 구조 안에서 누군가 쉽게 소외되고 소외됨이 정당화된다. 그렇게 사람을 잃는 일에 무감각해지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어르신을 만나는 기간 중에 어지럼증과 수술로 몸이 좋지 않으셔서 정말 찾아뵙기가 어려웠다. 그럼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방에 화분 하나 들여놓아 드리고 싶어서 선인장류인 꽃기린을 구입해 갔다. 어르신은 이전에도 화분을 많이 기르셨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몇 개만 가지고 계신다. 아주 좋아해 주셨다. 그리고 내 작품을 보여드렸는데, 좋아하시는 듯했지만, 화분만 하진 않은 것 같았다. 어르신을 생각하며 어르신을 위해 그렸지만, 상대방에게 전달했을 때 왠지 애물단지가 될 거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남아서 내 그림은 누구를 위한 그림일까 싶어졌다. 어르신과 모두의 안위를 걱정하는 불꽃놀이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내 화폭 안에서만 차가운 불꽃이 남아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삶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건강하다. 나의 친할머니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도 안 되어 돌아가셨다. 누구보다 삶의 열망이 강한 분이었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어렴풋이 할머니가 스스로를 놓아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고모랑 이야기를 나누니 고모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자주 뵙지 못했지만, 박추행 어르신의 안위가 정말로 걱정이 되고, 뵙고 싶었다. 박추행 어르신의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울컥하게 되었는데, 내 작품을 보며 은은하게 웃고 계신 사진이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르신이 내 작업에 대해 관심이 없으신 느낌이 들었지만, 좋아 해주시는 거 같은 표정을 보니 한시름 놓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그 웃음은 누군가 자신을 생각하며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내 작업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었을 때 천년만년 온전히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 그림이 어르신께 전달된다면 안 그래도 물건을 정리 중이신데 애물단지가 되지 않을까,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버려지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르신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 같았다. 그저 어르신이 그림을 보며 기운을 조금이나마 얻고 사람들이 어르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언젠가 내 그림이 버려져도 그 역할을 다 하지 않았을까?

어르신이 좋아할 만한 그림, 그리고 내가 울컥했던 어르신의 표정을 아주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아주아주 오래 들여다보고 어르신을 오래 떠올렸다. 건강하셨으면, 삶의 열망을 놓지 않으셨으면, 언젠가 다시 만나서 어르신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내 그림이 버려져도 기쁠 것이다.


‘누군가 당신을 아주 오래도록 생각하고 있어요, 그걸 잊지 말아 주세요.’

    

돌아보며     

1.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 빈집에 앉아 있으며 명절 외에 사람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었다. 평생을 할머니가 전화하라고 하셨지만 내가 전화를 걸 즈음엔 할머니는 아파서 전화를 받지 못했었다. 할머니는 평생 할아버지를 욕했고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급격하게 우울해지시고 상태가 안 좋아져 1년 후에 돌아가셨다.

우리는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키워드는 나이가 지날수록 소중해진다. 그러나 키워드를 기억할 수 있는 세대, 주위 사람들이 부재하게 된다면 나는 누구와 공감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알던 사람들과도 더욱 연락하기 힘들어진 때에 어르신들은 어떻게 삶을 지탱할 에너지를 얻을까? 세대를 관통하는 어떤 유머와 해학이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서 어르신과 공유할 수 있는 키워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르신도 나도, 또한 이것을 향유하는 사람들 간의 공통된 기억이 새로 생길거라 생각한다. 어르신의 유머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퍼졌으면 좋겠다.


2.

인간관계는 어느 날 시작되어 어느 날 끝난다. 누군가 죽지 않았는데도, 명확한 이유가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인연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누군가는 납득하지 못했어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이 있는 만큼, 그 관계를 대체할 관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희망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관계를 대체할 수 있을 가능성이 줄어드는 순간이 생긴다. 그리고 대체할 수 없는 관계가 생긴다. 그 대체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공허는 그 사람의 평생을 낚아채 간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자기 회복력이 낮은 나는 나이가 드는 게 무섭다. 시간이 덮쳐와 내 모든 걸 무너뜨릴 것만 같은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기때문에 시니어 분들과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고 그 안의 유머를 찾고 나눠보고 싶었다. 어떤 시간을 살아오셨는지, 어떤 개인의 역사를 지니고 계신지 궁금했다. 많은 시간을 지나온 사람은 누구나 존경스럽다. 그 시간 동안 삶을 지탱해준 유머와 해학을 기록하고 공유해보고 싶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내가 꽤나 무신경하구나 체감했다. 생각해보면 할머니 생전에도 전화도 뜨문뜨문 걸었고, 명절에만 찾아뵙던 내가 이번엔 어르신과 친해지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어려웠다. 심지어 어르신께 편지를 쓰는 것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뒤 작성했다. 그렇게 각 잡고 어르신께 편지를 쓰는 것도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래도 서투르게 전화를 걸 때마다 항상 반가운 목소리로 맞아주시고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에 감사했다. 어르신이 살아온 시간의 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어르신들에겐 끝도 없는 결이 있고 그 결은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깊어서 경이롭다고 느낀다. 박추행 어르신은 처음 만난,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나를 단둘이 대화할 때도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해주시는 게 좋았다. 일상 속에서 의식하지 않고 드러나는 태도가 결국 사람이 살아온 환경을 결정하고, 나는 그 태도에서 적대감을 느끼면 거리를 두는데 그렇지 않은 분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의 깊이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르신이 삶에서 뭘 중요 시 여기시는지, 어떤 태도로 살아오셨는지 그 분의 선이 한 번에 그은 획처럼 단단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르신을 알게 되어,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좋았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계속 전화를 드리고 찾아뵈려고 한다. 사회복지는 촘촘하지 않고, 그 사이의 무수한 구멍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르신이 받아 오시는 시금치 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을 때 내가 생시금치를 사다 드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2020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 동네 미술 <빙그레이스토리>

안양 어르신과 청년 예술가 15팀이 일대일 비대면 및 대면 방식으로 연결돼 재난위기의 사회적 우울의 시기에 <예술과 유머>라는 주제로 만난 기록형 프로젝트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b_greystory/    

https://youtu.be/tZVKW4QjizY?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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