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동맹의 도시, 뭉크의 도시, 그리그의 도시
Alta 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르겐(Bergen)에 도착했다.
베르겐은 중세부터 대구 어업/무역의 중심지이자, 한자동맹의 도시중 하나였으며 최근엔 겨울왕국의 배경 항구가 되었다고 하여 관광지로도 유명한 도시이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오슬로-베르겐 사이 피요르드의 출발/도착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피요르드 출발/도착지로만 기억되기엔 아까운,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이다.
베르겐 공항에서는 40여분 버스를 타면 브뤼겐 항구에 도착한다. (40분 소요되는 공항버스가 1.5만원인거에 별로 놀라지 않은 베테랑 북유럽 여행자...가 아닌 북유럽 호갱이 다 되었다.)
베르겐에 도착했더니, 북극지방에선 오지 않던 비가 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태양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음. 그리고, 북극권에서만 있다 보니 반나절 있던 트롬쇠를 빼면, 도시 인구가 5000명이 넘는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10만명이 넘는 도시에 왔구나, 건물이 높아! 라며 도시 온 시골쥐 느낌을 낼 수 있었다(...)
그래도 이번 베르겐에선, 나름 저가(...라고 해봤자 1박10만원) 정도의 가격에 브뤼겐 항구 바로 앞의 호텔에 묶었다. 사실 싸지 않은 가격인데, 그래도 이곳에 묶은 이유는, 저녁과 아침 식사를 준다는 것. 유스호스텔도 5만원 수준 + 햄버거 세트도 1.5만원이니 어차피 별 차이 없겠구나 싶어서 호텔을 묶었다. 북유럽 호텔은 로비에서 커피도 무한으로 뽑아먹을 수 있고, 심지어 비오면 쓰고 나가라고 호텔 우산도 출구에 놓고 있어서 호텔 값어치는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호텔에 4시쯤 도착해, 짐을 놓고 바로 앞의 베르겐 어시장을 걸어간 후 관광 안내소에 도착했다.
관광안내소가 정말 깔끔하고 여러가지 설명도 잘 되어있고... 이런게 관광 안내소가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었다. 노르웨이의 관광 안내소는 도시 여행을 하기 위해선 꼭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베르겐 카드를 산 후, 바로 앞에 있는 베르겐 어시장을 구경했다. 사실 어시장이라기 보다는 그냥 상점가에 가깝다. 그래도 싼 가격에 군것질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알타에서 베르겐 오는길에 환승한 오슬로 공항에서 간단한 맥주와 빵 먹은 것 빼고는 하루종일 굶은 상태여서, 우선 요깃거리로 어시장에서 어묵과 과일을 사 먹었다. 어묵은 작은 것이 15 NOK (2100원), 큰 것이 25 NOK (3500원) 수준이었는데 작은 것은 정말 맛만 볼 수 있는 정도였다만, 비싼 물가에 시달리던 사람에게는 이정도면 일용할 군것질 거리...
그 외에 미국친구들에게 줄 대구 스프레드를 여기서 사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대구 스프레드는 아직 튜브채로 남아있을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그리고 베르겐 국립 박물관 앞에 있는 호수도 한번 둘러봤다. 비와서 그런지 사람도 적어서, 더 호젓하게 둘러 볼 수 있었다. 바닷가 아니랄까봐 사내 공원에도 갈매기들이 엄청 많았음. 그리그의 도시여서 그런지, 이 비오는 날씨에서도 관현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호텔에 숙박한 이유인 저녁 식사를 먹기 위해 호텔에 돌아왔다. 저녁 뷔페는 생각보다는 조촐한, 빵과 과일과 수프와 음료수, 그리고 약간의 군것질 거리 정도가 있었지만 뭐 노르웨이에서 이정도를 사먹으려면 엄청 비싸겠지 하며 감사하게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오랜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하고,호텔 바로 옆에 있는 베르겐후스(Bergenhus Festning) 요새를 구경했다. 요새는 1200년대 노르웨이 왕실이기도 했지만, 1400년대에 오슬로로 옮겨가고 그 후에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일부가 되어서 많이 소박하지만, 로젠크란츠 타워에서 바라보는 베르겐 항구 풍경만은 멋있었다.
그리고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으로서 현재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목조건물이자, 한자동맹이 노르웨이 까지 진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자박물관으로 갔다. 10:30의 영어 가이드 투어가 있었는데, 이것저것 많은 정보를 설명해 줘서 들을 가치가 있었다. 물론 150 NOK (2.1만원 정도...)라는 비싼 가격이 있지만, 설명의 퀄리티를 생각하면 가볼 만 함. 한자 동맹(상인연합)의 지부라고 해서 이것저것 호화로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좁고 음침하고 힘든 곳이었다. 수습생들의 생활환경은 매우 열악하고, 지부장정도 되야 그나마 독방이 있고, 모든 것은 목조로 지어졌기에 불을 멀리하고, 난방대신에 침대에 여닫이 문을 달아 바람을 막는등, 살기 힘든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 어업 및 무역, 염장도구 등의 다양한 물건을 볼 수 있었고 중세 한자동맹과 대구 어업/무역의 영향력을 볼 수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2019년 현재는 복원공사때문에 닫혀있다고 한다. 가격이 비쌌지만 그때 가길 잘한 듯)
그 뒤엔 바로 옆에 있는 브뤼겐 박물관을 갔는데, 브뤼겐역사가 중세 한자동맹 지부 시절 이후론 그렇게 주목 받던 곳이 아니어서, 그냥 한자박물관 가는게 나을듯.
그 후에 뭉크의 작품이 전시된 베르겐 국립미술관 가는 길에 Pingvinen 식당에서 대구 스테이크를 먹는 사치를 부렸고! (4만원...) 브라운에일과 대구의 조화는 만족스러웠다!
베르겐 국립미술관 (KODE)에서 뭉크의 작품들을 봤다. 절규의 다른 버젼도 보고 뭉크의 초기 작품들도 봤는데음... 나란 사람은 미술관 체질이 아니구나 하는 정도만 느꼈다. 그래도 절규는 직접 보니 더 신기했다.
그 다음 그리그가 여름을 보냈던 집이 있는 트롤하우겐으로 갔다. 베르겐 시내에서 상당히 외곽에 있는 곳으로, 트램 타고 20분 넘게 간 후 다시 20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곳이다.
그리그 참 좋은 곳에살았네.. 풍경도 예쁘고 정원도 예쁘고. 좀 멀긴 하지만, 시간이 남는다면 충분히 들러볼 만한 곳이다. 날씨가 좀만 더 좋았으면 더 멋진 풍경이 펼쳐졌을텐데. 비내음과 함께 하는 산책길에선 음악이 들리는 듯한 공감각적 심상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서야 해가 밝았다. 브뤼겐 항구의 밝을때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Søstrene Hagelin 이라는, 나름 유명한 어묵가게에서 수프와 어묵을 take out 해서 호텔에서 먹었다. 어묵 수프는 많이 짰는데, 그만큼 깊은 생선 맛이 났었다. 해장으로 좋았을 것 같은 느낌.
다시 호텔에서 식샤를 하고, 해가 밝은 오후 7시반에 천천히 다시 길을 나왔다. 커피가 맛있다는 Det lille Kaffekompaniet 에서 커피를 take out 해서 플뢰옌 산을 올라가기 위해서.
하지만 커피가게는 내가 도착한 8시에 딱.. 문을 닫았다. 1잔정도 뽑아줄 수 도 있었을거 같지만 북유럽에선 폐점시간은 철저하다.
플뢰옌 산을 올라가려면 등반열차를 타면 된다. (물론 걸어가도 된다만...) 자그마한 열차를 타고 올라가면, 우선 산 쪽으로 좀 들어가서 하이킹을 할 수 도 있다. 산 속엔 호수도 있고, 호젓한 산책길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내가 올라온 목표는 다른 것. 베르겐 항구와 시내를 굽이볼 수 있는 전망대. 밤 10시임에도 햇살은 환했으나,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하나 만은 놓치지 않아야 할 풍경이다.
전망대쪽엔 산양들이 방목되고 있는 것도 나름의 볼거리이다.
내려와서, 정말 아쉬워서 노천 카페에서 맥주를 한잔 마셨다. 밤 11시 반임에도 불구하고 밝은 태양을 마주하고 한자동맹이 주름잡던 베르겐 항구의 Hansa 맥주를 마시며 베르겐에 대한 추억을 마무리하는 것은 좋은 끝맺음이었다고 생각 하고 싶었으나, 100NOK를 주고 마신 Hansa 맥주가 별로였던 것은 아쉬웠다.
갔던 곳 설명을 하다보니 좀 길어졌는데, 베르겐은 단순히 피요르드 관광의 출/도착지로만 소비되기엔 아름다운 도시였다. 1.5일 정도만 투자하면 베르겐의 여러 아름다운 풍경을 속속들이 잘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니, 1박정도는 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깔끔하고 잘 정돈된 북유럽 도시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북극권에서 와서 그런지 베르겐 물가가 싸진 않지만, 이정도 물가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