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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inq Jul 21. 2019

당신 인생의 이야기

결정론적 세계의 법칙을 찾아가는 사람득



[신학자와 과학자는 결정론적 세상에서 살아가며, 신의 법칙/과학 법칙의 세계속에 있는 신학자/과학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원리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하지만 신학자와 과학자가 세상의 법칙을 발견한 순간 그 깨달은 자는, 그리고 그 깨달은 자를 보는 일반인은 어떻게 될까? ]


라는 동일한 다양한 소재를 변주하여 들려주는 책: 당신의 이야기


이책은 신학/철학적이다. 바벨탑 이야기는 너무 노골적이고, 천사와 지옥/천국 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욥의 이야기도 보인다. 하지만, 그 세계를 과학적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내었다. 바벨탑을 올라가는 풍경과 그 세계를 묘사하는 방법, 유전자와 흡사한 이름 새기기등의 과학적 세계관은 독창적이다.철학적 이야기를 하기위해 과학적 사실이 쓰인 것이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 위에 철학을 쌓아올렸다는 점때문에 이 책이 SF의 최고봉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선 서로 다른 소재를 가지고 비슷한 세계관을 만들어 낸다. 대부분의 단편에서 주인공은 세계의 핵심 원리를 깨닫는다. 그런데 과연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1) 다른게 같고, 무효한 것도 유효한 것도 없게 되는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2) 미래는 결정되어 있고, 결정된 미래는 현재에 쓰여있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때

3) 신의 모든 섭리를 깨달은 순간 신이 부재한 공간에 떨어질때

4) 곧 세대가 멸망하는 것이 인간에 쓰여진 것을 알았을때


나는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떤 태도를 취할까, 예전에 본 한 책의 구절이 생각난다.


“별을 보는 눈을 가졌으면서도 나뭇가지 끝에도 닿지 않는 팔을 가졌다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요?”
“별은 보이지 않습니까.”

별을 보는 눈을 가졌으면서도 팔이 닿지 않는 다는 것에 좌절하고 무너질지 [영으로 나누면]

별은 보이는 것에 만족할지[당신 인생의 이야기][지옥은 신의 부재]

혹은 나뭇가지에는 닿는 팔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바꿔볼지 [일흔두 글자]


[영으로 나누면] 형식이 주제를 이야기 해 주는 이야기.

b: 1=1이고 2=2이지만, 1=/=2 라고 생각하는 일반인

a: 1=2 라는, 자신이 딛고 있던 토대의 근간을 흔들어버린 발견을 해버린 수학자


챕터 분류에서부터 계속 따로 있었던 a와 b가 어느순간 등호로 연결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a와 b는 분열을 확신한다. 같아졌기 때문에 헤어졌는가 헤어지기 때문에 같아질 수 있는 것인가. 1인칭은 1인칭이고 2인칭은 2인칭이니 1인칭 '나'와 2인칭 '너'는 같아 질 수 없는 것인가.

(나=1, 너=2 라면 1=2이고 1+2=1 가 될수 있는 세상에서) 나는 너고, 나와 너가 합해지면 우리인데도 불구하고 왜 결국 나는 나고 너는 너여야만 하는가.


[지옥은 신의 부재] 

"다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해봐야 보답이 오지 않는 상대를 다만 사랑하겠다시는군요.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다만 걸어갈 수 있을까요?”
“다만 살아가기는 하잖습니까? 다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보다 더 멀리 가지는 못합니다. 저는 이 정도까지 다다른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다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다만 믿고, 다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인간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은 짝사랑이요, 가장 무서운 병은 상사병입니다.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짝사랑을 하면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면 될 문제인데 , 상대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슬퍼하고 아파해야 합니다. 상대가 날 바라봐 주길 바라다가 그러지 못하니까 고장이 나버리는 거지요."


사람은 인과론적 세계에서 살아간다. 나의 행위가 무언가에 영향을 주고, 내가 겪는 현실은 무언가의 결과라고 생각해야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영으로 나누면]의 주인공은 그 믿음이 없어져 자신이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단편에선 세계가 고정되었고, 현재의 행위가 미래 결과에 원인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그 정해진 미래를 걸어간다. 이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기품있는 항복인가.


혹은 본 미래가 고정되는 것은 맞지만, 현재부터 그 미래의 시점까지가 모두 고정된 건 아니다. 즉,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도착지는 똑같다. 뒤집어보면 도착지는 같지만 여정과 중간과정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행위는 다른 중간과정을 얻기 위한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치열한 투쟁인가.






[일흔두 글자]


유전자 공학 얘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정해진 이름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사회 구조 경제 구조 인간 존재에 대해 여러모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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