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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lust Aug 15. 2017

서른 한 살, 여자, 호주, 영주권

내 인생은 이대로 괜찮을까.

한국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가 어렵고, 끊임 없이 미국과 영국의 유명한 학교들과 디자인 에이전시를 동경하던 나는 원래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었다.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영국은 Youth Mobility Scheme 하에 2년의 시간이 주어지고 일, 공부, 여행 등을 제약 없이 할 수 있다. 미국은 워킹홀리데이 제도가 없으므로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 있게 된다면 1년 동안 구직활동을 한다해도 적어도 1년의 경력은 쌓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영국 YMS를 신청할 시기만 기다렸다가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졸업 후에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통화했던 친오빠와 같은 선배한테 절망적이라고 울면서 얘기하다가 선배의 여자친구가 호주에서 살고 있는 누나 집에서 워홀로 지낼 예정이니 나도 호주로 가라고, 누나한테 얘기해주겠다고 했다. 호주에 대해서는 '시드니'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심지어 '시드니'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호주의 수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캔버라'가 호주의 수도라는 사실을 서른 가까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다음 영국 YMS를 지원하기 전까지 호주에서 생활비도 모으고 영어도 늘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도착했다. 또 다른 하나는 디자인 회사에서 단 1달이라도, 무급이라도 좋으니 일을 해보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구글에 검색했을 때 내 분야의 디자인 회사는 단 하나였고, 오자마자 선배와 시티로 나와서 디자인 회사를 찾아가 먼발치에서 구경하며 지원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이력서를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며 수정하고 두 번이나 직접 제출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 뒤로도 디자인 회사의 디자이너를 검색해서 메일을 보내고, 구직광고를 보고 또 지원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게 나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것. 


한인식당 1개월, 카페 5개월, 리테일 브랜드 캐주얼 2개월 하다가 호주 공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기적처럼. 

정말 재밌게 일했는데, 드디어 공학도에서 디자이너 타이틀을 달았는데 워홀비자는 만료가 되었고, 나는 한국으로 귀국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다시 호주에 올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그 과정 중에 기계공학 학사로 독립기술이민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호주에 있을 때도 여러 법무사들을 찾아갔으나, 엔지니어 경력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다.) 외국인 법무사를 만나서 통역시험준비학원 (NAATI 호주 국가 통번역 자격증)에 등록해서 호주로 왔다. 시험은 떨어졌고, 학생비자가 만료되어서 다른 비즈니스 스쿨을 등록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며, 나는 왜 무기력한 것일까 계속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현실도피라고 할 수도, 게으름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냥 무기력해지면 침대에 누워서 계속 생각한다. 그러다가 뭔가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 기운차리고 일어난다. 아직 뭔가 해봐야겠다고 한 건 없는데... 브런치에서 '서른 여자' '호주' '일상' 등을 검색하다가 내가 그냥 평범한(사실, 다들 새로운 프로젝트 하나씩 하면서, 여행하면서 특별하게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고 싶고, 소소한 일상 가운데 적은 생각과 느낌들을 읽으며 공감하고 있다는 생각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많지 않고, 있어도 끝맺음이 되어 있지 않다. 서른 넘어서 호주 워홀을 온 그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하고, 구글에서 검색하다가 들어간 블로그는 15년 이후로 글이 끊겼다. 영국으로 석사를 다녀온 그 분은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데... 


그래서 내가 기록하기로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루저이자 현실도피자일 수도 있는 내 삶이, 영주권을 향해 하루 하루 버티고 있지만, 생존하기 위해 일을 하고 저축한 돈은 모두 학생비자를 받는 데 써버려서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이라고는 백 달러 남짓한 현 상태에서 영주권과 관련된 준비(기술심사 및 영어)는 하나도 진행되지 않고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내 삶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적어도 나의 이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나에게 남는 것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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