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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Sep 29. 2020

도리도리와 끄덕끄덕 사이

해프닝에서 시작된 인연

 독일에서 유럽 지역학을 전공해 한국과 유럽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원대한 꿈으로 공부를 시작한 지 일 년 남짓 지났을 때의 일이다. 전공과는 상관없지만 필수로 지정된 경제학 수업을 들어야 했고, 그 수업은 임의로 나눠진 그룹들이 돌아가며 과제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수업이 아니었지만, 내가 그룹장이 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나는 이 수업에 내 예상보다 큰 노력과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는 매주 그룹별 모임에서 새로운 분량의 과제를 나눠서 담당을 정하고, 각자 준비해온 이전 주의 과제를 통합해서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전공도 학년도 달랐지만, 서로를 잘 이해했고 우리의 그룹 과제는 이렇게 별 탈 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과제 중 서로 맡을 부분을 알려주면 말 한마디 없이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기만 하는 한 남학생이었다. 언제나 도리도리. 처음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지만, 그다음 주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같이 해야 하는 과제인데 싫다고 하는 이놈은 뭐지?’ 당황스럽고 짜증도 났다. 하지만 이 수업은 그룹 과제로만 평가가 이루어져 있기에 모두가 같은 성적을 받는다는 사실을 상기한 나는 가능하다면 그룹 내 마찰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자니 내 말을 대놓고 거부하는 그 남학생이 해야 할 과제도 내가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그가 과제를 안 해오면 전체 과제가 진행이 안 될 테니까. 나는 나름의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니까, 과제가 끝날 때까지 내가 그 남학생 몫까지 미리 준비해서 과제를 완성할 셈이었다.


 모두를 위해 그렇게 마음먹고, 나는 그의 몫까지 과제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다음 주에 모이면 그는 어김없이 자신이 맡은 부분을 준비해와서 나를 더 당황하게 했다.

‘혹시…. 저 아이가 바로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주의자인 걸까?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내 말은 듣기 싫은 건가? 유럽 어딘가에도 남성 우월주의가 심한 문화권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 저 아이의 고향이 그쪽일까? 여자인 내가 이것저것 해오라고 시키는 게 영 듣기 싫은가?’


 수수께끼 같은 그의 행동 뒤에 숨겨진 의미를 궁금해하며 매주 2인분의 과제를 해가던 나는 한 달쯤 지나자 참을성과 체력이 모두 바닥나 버렸다. 그래서 결국 그와 결판을 내기로 작정했다. 그룹 모임을 마친 후 나는 그를 불러 세웠다. 그룹 모임 이외에는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그와 내가 그렇게 도서관 한쪽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느라 마음속에서 다시 화가 일어나려 할 때, 드디어 내가 말을 꺼냈다.


 “너, 내가 그룹장인 게 마음에 안 들어? 왜 내가 과제 나눠 줄 때마다 싫다고 해? 게다가 싫다고 했던 과제를 나중에 해오는 건 또 뭐고? 내가 우스워 보이니? 난 너의 아리송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으니 네 이야기를 좀 들어야겠어.”


 떨지 않으려고 전날 저녁 거울을 보며 수십 번 연습했던 말이 내 입을 떠나니,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날이 선 것 같은 내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놀랐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을 했으니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듯 나는 당당했다.

당황한 듯 보이던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열었다. 그가 말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했던 난 어눌한 그의 말투에 놀랐다. 정확하지 않은 영어로,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을 변호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동안 쌓인 나의 분노는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마땅치 않은 것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은 영어로 읽고 쓰기를 보통 정도는 하지만 듣고 말하는 것은 입학 영어 시험을 간신히 통과할 수준이란다. 영어로만 수업하는 국제경제학 전공이라 독일어도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임에서 다른 그룹원들의 말을 잘 따라잡기 위해 집중해서 듣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것도 벅차다나. 도리도리 하는 이유를 묻자 불가리아에선 도리도리가 ‘예스’란다. 아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현지인이 그렇다는데 아무 정보도 없이 내가 반박할 수는 없었기에 이날은 나 혼자만의 전투로 막을 내렸다. 그 후 도서관에 남아 불가리아의 바디랭귀지를 알아보니 놀랍게도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거의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 간단한 동작이 불가리아에서 의미가 반대인 이유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모두 오스만 제국이 불가리아를 정복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첫째로, 오스만 제국인들이 목에 칼을 대고 이슬람으로 개종을 강요하자, 동방정교도였던 불가리아인들이 개종을 거부하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칼날에 스스로 목을 바쳤다고 한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부정의 의미로 여겼다. 다른 설에 의하면 오스만 제국 군인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불가리아의 군인들이 먼저 긍정과 부정의 동작을 반대로 바꿨다고 한다. 어느 설이 진실이든 간에, 지금도 불가리아인들은 긍정할 때 도리도리 하듯 고개를 젓고 부정할 때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이 새로운 사실을 접하던 순간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내가 아는 세상이 실제로는 세상의 한 조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내가 배우고 자란 방식이 당연하고 정상적이라 여겼는데, 그와 정반대의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이 넓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문득, 그것을 모르던 나의 모습이 좁은 우물 안 개구리와 겹쳐 보였다.


 이렇게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비록 사소한 오해로 시작된 것이지만, 값진 배움의 기회를 준 그 친구가 무척 고마웠다. 그와의 결투-물론 나 혼자만의 결투였지만- 이후, 난 영어 듣기가 부족한 그를 위해 매주 모임의 내용을 요약해서 글로 적어 주었고, 그는 숫자에 약한 나의 수학 공부를 도와주며 우린 친구가 되었다.  

  

 어느새 시간이 십 년도 넘게 흘러 이제 나는 영국에 살고 그는 불가리아에 산다. 마침 3월에 출장차 런던에 온 친구가 내게 흰색과 빨간색 실로 엮은 팔찌를 묶어주었다. 이 실 팔찌를 묶어주는 것은 불가리아의 마르테니짜 풍습이다. 그곳 사람들은 매년 3월 1일 가족과 친구들에게 하얗고 빨간 실 팔찌를 묶어주는데, 그 전년도 겨울에 떠났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면 그 팔찌를 풀어 새롭게 봄꽃이 핀 나뭇가지에 묶는 것으로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그는 이제 나와 영어로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영어가 능숙해졌지만, 아직도 종종 ‘예스’를 말할 때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다시금 학부생 때의 일이 생각난다. 도리도리와 끄덕끄덕 사이에서 만난 우리. 이 소중한 인연을 거울삼아, 우물 밖으로 나가는 개구리가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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