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맘보다 한 단계 진화한 몬스터맘들이 넘치는 곳, 홍콩.
"우리 아이는 해피스쿨에 보내서 자유롭게 놀게 하고 싶어요!"라고 많은 엄마들이 말하지만 홍콩의 해피스쿨에서 내주는 숙제가 그다지 적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엄청난 숙제와 압박에 시달리는 로컬 학교들보다 좀 나을 뿐.
홍콩으로 가족 전체가 옮기기로 결정을 했을 때, 홍콩인이나 홍콩에서 살던 외국인 친구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던 것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원하는 학교에 대기자로 이름을 올려놔야 학교 갈 나이가 되었을 때에 바로 인터뷰를 볼 수 있으니 꼭 대기자로 이름 올리는 거였다. 우린 영국에서 태어난 첫째가 돌이 다 되어서야 홍콩으로 옮겼으니 이미 늦은 게 아닌가 싶어 좀 걱정이 됐었는데, 어쨌든 작년부터 홍콩의 시위 문제,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 등을 겪으며 외국인들이 많이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또 홍콩인들이 해외로 이민 간 경우도 많아서 이제 앞으로 당분간은 입학 전부터 피 터지는 경쟁을 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홍콩에서 의무교육은 아이가 만 6세가 되었을 때 프라이머리 스쿨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전에 만 3세 K1, 만 4세 K2, 만 5세 K3 이렇게 3년간 사립 유치원 교육이 있다. 그리고 만 2세, 프리너서리 PN이라 해서 유치원 이전의 교육 단계가 또 있다. 나는 유치원 K1부터 보내고 그전에는 동네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놀게 하고 싶었지만 첫째가 돌이 지나 15개월쯤 됐을 때, 동네에 낮에 함께 어울릴 또래가 없음을 알게 됐다. 다른 아기들이 다 이미 플레이 그룹이나 그 외 영아 교육기관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산책로에서, 공원에서, 놀이터에서 혼자 공을 가지고 앉아있는 첫째를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한창 또래 아기들과 어울려 놀아야 할 나이에, 같이 놀 아기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큰일이긴 한데, 대부분이 양육자 없이 아기 혼자 들어가는 클래스 포맷인 이곳에서 아직 어린 첫째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걱정과는 달리 아기는 다행히 잘 적응했고, 지금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노는 곳(?)에 다니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다니는 플레이 그룹은 두 돌이 되면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집 주변 프리너서리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추려서 방문했다. 선생님들과 면담하고 시설도 체크하고, 지원서를 넣고 마침내 인터뷰 일정을 받았다.
그 인터뷰가 바로 오늘 아침이었다. 시간은 20분 정도. 선생님과 부모 중 한 명, 아기, 그렇게 셋이 들어간다. 건물 안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이미 선생님은 아기에게 올라가는 계단의 숫자를 함께 세자고 한다. 그렇게 숫자를 세고, 빈 교실 하나에 들어가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블록 등을 가지고 노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질문을 하고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 - 손의 소근육 발달 정도 등 - 을 계속 관찰한다. 그리고 함께 한 부모에게도 질문을 많이 한다. 집에서 쓰는 언어는 무엇인지, 집에서 어떻게 놀아주는지, 하루의 스케줄이 대략 어떻게 되는지. 아기 인터뷰 겸 부모 인터뷰인 걸까?
프리너서리 인터뷰에서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끝난 후 점수와 함께 합격 여부를 바로 알려줬다. 내년 2월부터 시작인데, 이젠 자리가 확정이 되어서 한시름 덜었다.
아직 만 2살도 되지 않은 아기들을 데려다 놓고 20~30분간 인터뷰를 해봤자 우리 어른들이 그들의 잠재력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영국에선 너서리 들어갈 때 이런 식의 인터뷰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곳은 모든 것이 치열하다. 프리너서리 인터뷰의 존재만으로도 홍콩의 교육열과 그 압박이 와 닿는다. 초등학교 입학 인터뷰 훈련을 위해, 유치원에 들어가야 하고, 유치원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이렇게 인터뷰를 보고 프리너서리에 들어가야 한다니.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이들은 무한경쟁에 던져진다. 아이들이 안쓰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