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할 때
야외수영장이 문 닫았을 때
홍콩은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 여름보단 추워지긴 하지만 눈도 안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을 땐 긴팔 스웨터나 재킷 정도로 가볍게 다닐 수도 있는 곳이니까. 한국에서야 가을이 있어 뜨겁다가 선선해지고, 그 선선함이 코가 시린 차가움으로 변하는 겨울을 맞이하지만 여긴 그런 구분이 애매하다. 지금도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하느라 바쁜 내 손을 보면 겨울이란 단어는 떠오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파트 클럽 하우스에서 어느덧 겨울이 왔음을 실감했다. 요즘 첫째와 나이가 비슷한 다른 아기들이 수영장을 자주 다닌다 하기에, 아직 날씨가 더우니 우리 아파트 야외 수영장으로 와서 함께 놀자고 초대를 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야외 수영장에 손님 몇 명까지 데려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아저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야외 수영장에 손님은 세 명까지 데리고 와도 돼요. 그런데 이번 주 일요일부터 문 닫을 거예요."
"네? 문을 왜 닫아요? 언제 다시 열어요? 우리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나요?"
이젠 어느 시설이든 문 닫는다 하면 자동응답으로 나가는 질문,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발생 여부. 그걸 묻는 내가 아저씨는 너무 웃겼나 보다. 하하하 웃더니 겨울이라서 닫는단다. 겨울이 끝나고 내년에 다시 문을 연단다.
겨울? 무슨 겨울? 지금도 밖에는 27도인데?! 나는 민소매티를 입어도 땀이 나는데? 겨울? 추워서 문을 닫는다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홍콩은 이 정도를 겨울이라 하니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는 수밖에.
홍콩으로 이사 온 것이 작년 10월. 그러나 한국에 잠시 다녀왔기 때문에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이곳 생활을 제대로 시작했는데, 그때도 겨울이라서 야외 수영장은 닫혀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가고 나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체육 시설이 전부 문을 닫았고, 결국 여름에도 수영장 근처에도 못 가봤다. 이사 온 지 일 년이 지났는데도 한 번도 사용 못 해본 시설. 이번 주 일요일이 되기 전 기필코 써보겠다는 일념으로 토요일 아침 수영을 계획했다.
날씨는 그대로인데, 수영장을 닫는다 하니 정말 겨울이 왔구나 싶다. 5분 걸으면 땀에 푹 젖게 되는 이 날씨에서도 홍콩인들은 겨울의 기운을 느끼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서 내려다보는 창문 너머로 하나둘씩 얇은 패딩 조끼나 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꽁꽁 언 한국의 겨울을 알고 있는 나로선, 이런 게 정말 겨울로 느껴지진 않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야외 수영장 문을 닫는다 하니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휑하다. 수영할 줄도 모르는 주제에, 야외 수영장과 그 존재 자체에서 느껴지는 뜨끈뜨끈한 여름 느낌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동남아 휴양지 느낌 물씬 나는 홍콩의 여름, 이제 안녕. 몇 달 있다가 내년에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