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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Sep 15. 2022

외국인 엄마의 홍콩 로컬 유치원 첫인상

기대 반 걱정 반

우리는 홍콩의 이방인이다. 남편도 나도 중국과는 관계없는 사람이기에 홍콩의 애매한 경계를 살고있다. 외국인이 넘쳐나는 홍콩이지만, 외국인 버블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남편과 나는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다. (웃기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로컬 친구들과 주로 교류를 하느냐, 그것은 또 아니다.) 그 경계에서 고민만 많던 우린 결국 아이들을 로컬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첫째 아이였다. 오전 오후로 나눠 국제 유치원과 로컬 유치원을 보냈는데, 의외로 로컬 유치원에서 적응을 너무나 잘했고, 광둥어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로컬 시스템으로 마음이 기울자마자 남편의 회사 동료에게서 받은 정보로 로컬 사립학교 세 군데에 지원을 했고 한 곳은 탈락, 한 곳은 합격, 한 곳은 대기 합격이 되었다.


아이가 합격한 유치원에서 신입생 학부모를 모아놓고 학부모 설명회를 열었다. 나는 중국어 문맹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별 걱정 없이 학부모 설명회 장소로 향했다. 왜? 나는 영어를 잘하는 엄마의 옆에 앉을 것이고 그녀가 내게 통역을 해주기로 했으니까! 남편 회사 동료 중에 딸이 우리 아이와 같은 유치원에 입학했다는 사람이 있어서 남편이 그녀에게 부탁을 했었다. 홍콩에서 명문 사립 여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의 명문 대학에서 공부한 엄마라 영어를 아주 잘했고 난 그걸로 모든 문제는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선 이 설명회가 끝나면 어떤 한국음식을 만들어서 보낼지 계획하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아, 이 문맹 엄마의 김칫국이란!


안타깝게도 내 마음의 평화는 학부모 설명회가 열리는 강당에 도착하자마자 무너졌다. 안내문에는 신입생 전체가 같은 강당에서 한다고만 쓰여 있었는데 막상 강당에 도착하니 앉을자리가 3개 반으로 나뉘어있지 않은가! 아이의 이름과 "가장"이라 적힌 스티커를 받아 들고 내 아이의 반, 작은 희망반이라 적힌 곳에 가서 앉았다. 맨 뒷 줄. 오늘 내 생명줄로 찜해놨던 그녀의 아이는 작은 사랑반. 그녀가 내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곤 앞으로 가서 앉았다. 앞에서 세 번째 줄. 아아. 3시간이나 광둥어를 듣고 있어야 한다니. 망했다.


교장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교가를 들려주고, 아이들을 위해 가정과 학교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이 이어졌다. 그들의 교육 방침 같은 것들. 하지만 내가 알아들은 것은 "어린이", "부모", "학교", "좋은" 이것뿐이었다. 결국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프레젠테이션 화면 사진을 찍어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며 이런 이야기겠거니 짐작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어진 선생님 소개. 3개 학년이 있는 유치원이고 전체 선생님들과 학교 스태프들을 소개하는데 깜짝 놀랐다. 일단 남자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대부분이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치마를 입고 등장했다. 어째서 바지를 입은 여자 선생님을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인지? 수녀원 학교 떨어지고 여기로 온 것인데 이곳도 수녀원인 것인가! 로컬 학교들이 보수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 예상을 넘어서는 분위기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까지 느껴졌다.


강당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반별로 모여서 아이들의 교실에 가서 담임 선생님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홍콩인 담임 선생님이 두 명, 영어 원어민 선생님은 두 명이지만 요일별로 번갈아가며 한 명씩, 그리고 만다린 선생님 한 명. 선생님들은 각각 가르치는 언어로 설명을 했고 학부모들은 그걸 다 알아듣는 것으로 보였다. 나만 빼고. 그렇다. 나 혼자 외톨이다. 입학생 중에 이름이 알파벳으로 쓰인 사람은 우리 아이뿐이다. 엄마 아빠들이 다 중국계다. 대륙에서 왔든 홍콩 토박이든, 그들은 안내문을 읽을 수 있고 선생님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다.


선생님이 나눠준 안내문은 해독 불가능한 상형문자로 가득했고 눈치로 알아들은 바에 의하면 그 내용 중에 수정할 부분이 있었다. 선생님이 말하자 교실에 있는 엄마들 일제히 펜을 들어 따로 필기를 했다. 나는 옆 사람의 글씨를 보고 그림으로라도 베끼려고 했으나 또 절망했다. 그녀는 서예가인 걸까? 글씨를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내 눈에 그 글자들은 화가 난 사람이 미친 듯이 찍은 점의 집합체처럼 보였다. 잠시 무력감에 허우적거렸지만 괜찮다. 받아 적지 못한 그 부분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면 알게 될 터이니.


담임 선생님들은 참으로 친절했다. 마치 학부모들이 유치원생이라도 된 듯, 유치원 생활의 준비물(여분 옷, 물컵, 손수건 통 따위) 샘플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했기에 대략적으로 알아듣기는 했다. 이미 로컬로 너서리로 아이를 1년 보냈었으니까 겹치는 물품들을 알아본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감은 잡았다. 그렇게 설명을 하는 중간중간 선생님은 질문이 있는지 물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중적인 "모우 만타이(질문 없어요)."에 묻어갔다. 그렇게 학부모 설명회가 끝날 때까지, 영어 원어민 선생님들이 들어와서 영어 수업에 대해서 설명했던 10분간 말고는 영어가 쓰인 적은 없었다. 내 삶에서 가장 긴 시간 광둥어를 연속으로 듣고 있었던 시간 기록을 경신했다. 이전까지 내 기록은 비행 후 회사 동료들과 홍콩 극장에서 함께 봤던 "입만3" 영화의 러닝 타임, 105분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아이의 책가방을 받아 학교 계단을 터덜터덜 걷는데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좋은 선택일까?' 광둥어 기초반을 세 번째 반복 중이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광둥어의 벽을 실감했다. 이럴 땐 광둥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전의가 불타올라야 하건만, 나는 잠시 전의를 상실했다. 열심히 듣고도 소화 못한 내용을 곱씹어 보는 동안 불쑥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동남아 출신 엄마들이 아이를 한국의 학교에 보낼 때 이런 느낌일까. 쉬이 해소되지 않는 그런 막막함을 애써 무시하며 파란만장할 앞날을 상상해 본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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