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새통이다. 저녁 식사 때쯤의 제주 올레 시장 얘기다. 파도 같은 관광객들이 모래성 같은 가게 앞에서 넘실넘실 출렁인다.
젊은 남자 상인이 장갑에 기름을 묻히고 토치를 켠다. 호객이라 하기엔 예술적인 불쇼다. 질세라 옆 가게 여사장이 쨍쨍한 목청으로 소리를 내지른다. 골목이 아찔하게 흔들린다.
북적북적 소란스러운 시장이지만 관광객들의 재잘거림이 이를 중화해 준다. 자잘한 소리들이 알알이 모여 큰 소리는 차분히 가라앉히고, 낮은 소리엔 리듬을 만들어준다. 시장의 소리는 이렇게 균형을 이룬다.
숙소에서 먹을 요깃거리를 사서 돌아가고 있었다. 거리는 인산인해로 앞뒤가 꽉 막힌 교착상태였다. 그때 귀를 찢는 비명이 들렸다. 짐승의 울부짖음과 유사했으나 곧 사람의 소리임을 알아챘다. 이는 우리가 같은 종(種)이라는 증거였다.
다만 그의 비명에는 어떤 힌트도 없었다. 성별도, 나이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연신 터지는 날카로운 비명에도 그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대열을 따라 걸음을 옮길수록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비명을 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 순 없겠지만 적의는 없어 보였다. 적의는 대상을 필요로 하므로, 싸움처럼 누군가와 대치하는 상황은 아닌 듯했다. 비명이 점점 선명히 들렸을 때, 왠지 모를 두려움이 전해졌다. 그는 분명 겁에 질려 있었다.
시장의 초입 부근으로 거의 빠져나왔을 때였다. 수백의 사람들이 관객처럼 멀찍이 거리를 둔 채,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쪽에서 비명이 일 때, 누구는 고개를 돌리며 떠났고, 누구는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관객들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자, 유난히 밝게 빛나는 주황빛 가로등이 눈에 띄었다. 그 아래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엄마와 아들이었다. 이질적인 따듯한 주황색 조명이 무대처럼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연극이 끝났다. 계속된 비명에 참다못한 몇몇 상인들이 가게에서 나와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했다. 호기심에 찬 몇몇 손님들도 담배를 태우며 구경하다 돌아갔다. 주변을 오가던 다른 사람들도 얼마간 머물다 다들 흩어졌다.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채웠다가 다시 사라졌다.
엄마와 아들만 그대로 남았다. 가로등 아래 둘은 사투를 벌였다. 사실은 엄마 쪽만 사투였다. 아들의 키가 거의 190은 돼 보였다. 몸집은 말할 것도 없었다. 거대한 아들의 몸뚱이는 가냘픈 엄마의 체구보다 서너 배는 족히 돼 보였다. 엄마가 아들의 등을 때리며 “이런 데서 소리 지르면 안 된다고 했지!” 윽박지를 때, 아들은 대답 대신 알 수 없는 괴성만 지르며 팔을 휘저었다.
강인한 엄마가 아들을 겨우 진정시켰다. 엄마는 아들의 배를 다독이며 “천천히 걸어보자. 괜찮아.”하고 말했다. 벽에 등을 대고 있던 아들은 불안한 듯 고개를 좌우로 살피고 있었다. 자기 앞을 지나치는, 혹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훑는 듯했다. 전조 증상처럼 아들의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곧바로 다시 비명이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자신을 둘러싼 수천 개의 눈알을 그는 보았을 것이다. 두려웠을 것이다.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모두가 자신과 다르게 생겼으니 말이다. 아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이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아들이 휘두르는 팔을 엄마는 끝까지 놓지 않았다. 주황 불빛 아래서 아들의 팔을 붙잡은 엄마는 마치 춤추듯 흔들렸다. 엄마의 머리칼은 산발이 된 지 오래였다. 자홍색 뿔테 안경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가로등 아래 둘의 몸짓은 굿판을 연상케 했다.
엄마는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넋이 나간 엄마는 절규하기 시작했다. 힘깨나 쓰는 남자 상인들과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제야 나타났다. 엄마는 그들에게 택시를 잡아달라고 애원했는데, 바로 옆에 손님을 내린 택시가 있어 다행히 엄마는 아들과 그 택시를 탔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택시 기사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시장은 다시 균형을 찾았다.
수많은 인파가 그들을 비껴 지나쳤다. 아들과 엄마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아가지 못했고, 돌아가지도 못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로등은, 불을 밝히는 조명에 불과하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로등은 재앙이다. 땀방울에 무너지는 화장과 좌절한 표정이 조명 때문에 부각된다. 그들은 배우가 되기 싫어도 언제나 배우가 된다.
빛의 경계 너머, 그늘을 밟고 있는 관객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오직 소리만 들려온다. 소리들은 서로 부딪히다 뒤섞이고, 끝내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얄궂은 조명만이 훤히 모든 걸 드러낸다.
사람들은 여전히 재잘거렸다. 아마 시장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엄마와 아들은, 그 둘의 소리는 순간 커다란 균열을 일으켰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 소리는 누가 덮어주지도, 어울려주지도, 다독여주지도 않았다. 그저 으레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아니 원래 없었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시장에 있던 우리는 모두 같은 종이었다. 하지만 누구는 품위 있는 관람객이었고, 누구는 관람당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모자(母子)는 서로 대화조차 불가했다.
어쩌면 경계는 견고해야 좋은 것일까. 증발하듯 종적을 감춘 모자와 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다시 재잘거림 속으로 섞여, 사람들 틈으로 숨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