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ngane Oct 31. 2021

인문학적 반도체_4.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2)

1장.반도체란 무엇인가?


◆  인문학적 반도체 _ 역사와 땔나무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를 살펴봤는데 그럼 ‘역사란 무엇인가?' 요.

이는 마치 백수인 저에게 초등학생 아들이 “ 아빠는 왜 돈 안 벌어?”라는 질문처럼 사람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대전입니다.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발합니다. 1차 세계 대전 때 독가스, 기관총, 철조망 등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개발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자동차가 널리 사용된 이유도 1차 대전 때문입니다.

1차 대전 사망자 수는 약 1000만 명 정도 추산되는데 그 당시 운송수단으로 활용되던 말도 무려 900만 마리가 죽었다고 합니다. 1차 대전 전후로 말이 없어져버려 어쩔 수 없이 말의 빈자리를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채워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1865년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 규제법인 ‘적기 조례(赤旗條例)’ 를 만들었습니다.

 "자동차에는 기수 한 명이 반드시 타야 하며 기수는 붉은 깃발을 흔들며 자동차를 선도해야 한다"라는 규정 때문에 ‘적기 조례’라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이 법은 자동차의 상용화에 반발하는 마부들을 달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적기 조례가 제정될 당시까지는 빅토리아 여왕의 지지를 등에 업은 마차 업자들이 승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차는 자동차에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9세기 초반에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어트’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 발명된 방직기의 등장으로 사람이 했던 노동을 기계가 빠르게 처리하게 되는데 위기감을 느낀 노동자들이 단합하여 대규모 기계 파괴 운동을 벌인 ‘러다이어트 운동’도 기계로 인한 생산성은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직물 공장은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아무리 저항해도 역사는 다가오는 미래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는지 모릅니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은 해군 전투기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전쟁터에서 귀환한 전투기 기체 어느 부위가 적탄을 많이 맞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항공기 동체의 평균 피탄 갯수 ]


군 장성들은 비행기 동체 어느 부분에 적탄이 많이 맞았는지 조사하여 그 부분에 철갑을 둘러 안전성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철갑을 너무 많이 두르면 비행기의 성능이 나빠지니 취약 부분에만 둘러야 합니다.

당연히 군 장성들은 위 그림에서 붉은 점이 많이 분포된 동체 부분이나 연료계 부분이 취약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컬럼비아대 통계학 교수였던 아브라함 발드(Abraham Wald)는 가장 총알을 덜 맞은 엔진 부근에 철갑을 둘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왜냐하면 피탄 분포를 조사한 전투기들은 피탄 되고도 살아남아 귀환한 비행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피탄이 집중된 부위는 곧 그쪽은 총알에 맞아도 무사히 귀환할 수 있는 부위라는 의미였습니다.


통계학에서는 이 오류를 ‘생존 편향(Surviviorship bias)’이라고 합니다. 모집단에서 표본을 추출할 때 편향해서 한 것이지요.

표본 추출은 모집단, 즉 특성을 알고자 하는 어떤 대상의 일부분을 선택하는 것인데 생존 편향은 살아남은 것만 주목하고 실패한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왜곡된 표본에서는 생존 가능성을 잘못 판단하게 되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배민이나 마켓 컬리 등 생존하여 성공한 벤처들만 보고 스타트업만 창업하면 대박이 나겠다는 생각으로 덜컥 창업의 길로 뛰어든 저나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유튜브에 올려 어린 나이에 떼돈을 번 몇몇 유튜버를 보고 미래의 직업이 유튜버라는 저희 아들이 대표적인 '생존 편향' 오류의 사례입니다.


만약 아프라 함 발드라는 명철한 통계학자가 없었다면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여신은 히틀러의 손을 들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다는 말에 안도가 되긴 합니다.


1988년은 봄꽃처럼 부푼 꿈을 안고 제가 대학교에 입학한 해입니다.

88학번을 흔히 꿈나무 학번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88년도에 서울에서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선배와의 술자리가 있던 어느 봄날, 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배는 “ 넌 꿈나무가 아닌 땔나무”라는 송곳 같은 팩폭(팩트 폭격) 멘트로 저의 흑역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은 미국, 일본, 유럽 반도체 회사들이 4Mb DRAM 개발 경쟁이 불꽃을 튀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4Mb DRAM부터는 평면구조로는 불가능하여 입체기술을 적용하여 집적도를 높여야 했습니다.

전 세계 반도체 업체가 이 입체 구조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효면적을 증가시키는 입체 구조는 크게 트렌치(trench) 방식과 스택(stack) 방식이 제안되었습니다.

웨이퍼 표면을 파내 아래쪽에 새로운 층을 만드는 트렌치 공정은 안전하지만 밑으로 파낼수록 회로가 보이지 않아 공정이 까다롭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대지에 고층 건물을 올리는 것처럼 위로 쌓는 스택 공정은 작업이 쉽고 경쟁성이 있지만 품질 확보가 어려웠습니다.


삼성 내에서도 둘 중 어떤 방식이 좋은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건희 회장이 “어떤 방식이 쉽게 분석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진대제, 권오현 박사가 “트렌치는 하자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이지만 스택은 아파트처럼 위로 쌓기 때문에 그 속을 볼 수 있어 검증이 가능합니다.”라고 보고합니다. 이 회장은 스택 방식으로 갈 것을 지시합니다.

그 후 시장에서 트렌치 방식을 채택한 진영은 몰락하고 스택 방식을 채택한 회사들만 살아남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 있는 결정이 삼성전자를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서게 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역사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승자의 역사만을 기억합니다.


대학교 때 이후로 흑역사만 써온 제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