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라는 이름의 숙제
처음 시내에서 강릉 사천의 주택으로 이사 왔을 때, 시스템화된 아파트와 달리 나에게 놓인 문제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쓰레기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쓰레기를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던 첫 주말, 나와 가족은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들고 서로 눈치만 보았다.
"이거... 어디다 버려?"
월요일이 되자마자 답을 찾아 면사무소로 향했다. 민원 접수도 아닌, 그저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하느냐는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어떻게 버리면 되나요?”
그때의 직원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보통은 땅에 묻으시는데,, 농사는 않지으시죠?.”
‘……!’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이동한 줄 알았다.
종이와 박스는요?라고 묻자
“그거야 뭐, 태우죠. 집에 화목 보일러 없으세요?”
‘공기 좋은 청정지역 사천’이라는 말이 마냥 푸르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청정하다는 건 쓰레기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쓰레기를 감당할 시스템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나?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남편과 쓰레기에 대해 토론을 이어갔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마을엔 쓰레기 수거차도 오지 않았고, 마을 공동 쓰레기장도 따로 없었다.
분리배출? 그런 건 말해봐야 ‘나만의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면사무소에 몇 차례 건의하고, 시청에도 메일을 보내며, ‘분리수거 실천가’로서의 최선을 다했다. 사실 남편의 무언의 압박이 더 컸던 거 같다.
그나마 분리배출을 시도한 나의 작은 노력이 시간낭비가 되자 않는 방법은 일주일간 모은 플라스틱과 캔, 종이상자를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면사무소 뒤편, 그나마 존재하는 마을 쓰레기장에 직접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 면사무소 가는 날엔 일부러 사무실에 들러 불편함을 꾸준히 호소하기도 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난 아직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긴 아이스 카페라테를 가장 좋아한다.
텀블러는 친환경일지 몰라도, 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얼음과 우유, 커피가 층을 이룬 그 투명한 아름다움 속의 고소함이 좋다. 마치 원단에 스며든 자연스러운 배색처럼, 그 흐릿한 경계선이 내 눈에는 예쁘게 보인다.
10초면 빨대로 휘휘 저어 사라져 버릴 찰나의 미학이지만,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도 난 자주 일회용 컵을 사용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분리배출이 그리 즐겁지 않다.
가끔은 플라스틱 라벨도 떼지 않고 버리기 일쑤고, 택배 박스의 테이프도 대충 떼고 그냥 내놓기도 한다.
비닐은 깨끗하게 씻어야 재활용이 된다고들 하지만, 귀찮은 날엔 대충 헹군 봉지를 통째로 비닐류로 분리해 넣기도 한다. 그렇게 어설픈 내가, 기후정의니 환경보호니 하는 말에 마음을 조금씩 내어준 건 순전히 아이들 덕분이었다.
사실, 내가 사는 세상보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걱정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엔 학교에서 환경과 기후 변화에 대한 교육을 한 번쯤은 접하게 된다. 그런데 지환이는 그 주제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환경과 관련된 수업 시간에는 눈이 반짝였고, 쓰레기통 앞에서도 한참을 고민하곤 했다.
하루는 학교 앞에서 지환이를 기다리다 너무 늦어져 교실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씩씩대며 쓰레기통 앞에 앉아 있었다. 그날 청소 당번이었던 지환이는, 친구들이 대충 던져놓은 우유 팩을 하나하나 정리하느라 집에 가는 시간이 늦어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운동장으로 뛰어나간 뒤였다. 울먹이며 혼자 쓸쓸하게 정리하고 있는 아이가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도와줄까 생각도 했지만 스스로 결정해서 하는 행동이라 묵묵히 기다려줬던 기억이 난다.
또 하루는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지환이가 교감 선생님께 대들다가 울음을 터뜨렸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엔 코로나로 인해 위생과 환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전교생이 모이는 ‘다모임’ 시간,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창문이 모두 열려 있었던 모양이다. 지환이는 전기 낭비라며 “문을 닫던가, 에어컨을 끄던가 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끄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고, 교감 선생님은 당시 정부 지침대로 50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기 때문에 환기를 위해 창문은 열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환이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자 결국 울부짖듯 소리를 질러버렸다. 너무 답답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지환이는 학교에서 ‘강릉의 툰베리’로 불리게 되었다. 교실에 있는 에어컨 조절기 옆에는 지환이의 사진이 붙었다. 에어컨을 켤 땐 “지환이 얼굴을 한 번 보고 결정하자”는 친구들의 작은 약속이었다.
학교 안팎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활동 속에서 지환이의 관심은 언제나 ‘환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릉에 위치한 청소년 자치학교 ‘날다’에서도 지환이는 주저 없이 환경 동아리에 들어갔다.
플로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고, 직접 텃밭을 가꾸고, 재활용의 원리를 배우며 지환이는 매 활동마다 자신의 생각과 몸을 함께 움직였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쌓아온 경험들이 응축된 듯,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어느 날 지환이가 쓴 글 한 편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른보다 더 단단하고, 또래보다 더 뜨겁게 환경을 지키고 싶은 지환이는 글 속에서 자기만의 언어로 지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전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운양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강지환입니다.
집이 강릉이다 보니 바닷가로 밤 산책을 많이 갑니다.
바닷가에서 발을 담그며 놀고 있으면 옆에선 괴상한 폭발음과 함께 여러 가지 색깔의 불꽃이 튀어요.
바로 폭죽이에요.
저도 어릴 때부터 한 번쯤은 폭죽놀이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폭죽이 예쁘고 멋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환경에 관심이 생기고 바닷가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면서 그 생각은 뒤 바뀌었습니다.
폭죽은 바다에 쏘는 무기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미사일 같았어요.
담배와 총알을 닮은 폭죽 쓰레기는 담배꽁초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맨발로 걷는 모래사장에서 주운 폭죽 탄피는 비닐봉지와 두 손을 꽉 채우는 양이 어마어마했어요.
그 후론 폭죽을 터트리는 사람들에게 “폭죽은 물고기들을 헤치고 많은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킵니다."
그리곤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물고기와 우리 모두의 생명에 위협을 받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용기가 안 났습니다.
여행온 사람들이 저한테 뭐라고 하거나 이상하게 볼 것 같았습니다.
이젠 바다에 놀러 가서 폭죽소리만 들어도 가슴에 구멍이 뚫릴 것 같습니다.
계속 주워도 끝이 없는 탄피를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심지어 바다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강릉시에서도 이런 것을 단속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바다에 총을 쏘지 말아 주세요. 바다는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동물과 식물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이죠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이니 우린 지구를 아끼고 지켜줘야 됩니다.
전 이 멋지고 예쁜 지구를 후 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밤중에도 30도를 넘나드는 열대야 속에서 잠을 설치는 요즘, 집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엔 해가 지면 폭죽 터지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리곤 한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여전히 분노와 무력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어른일 뿐이다.
탄피를 한가득 주워 오던 아이의 작은 손이 떠오를 때면 마음이 쓰리지만,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아이들의 생각과 작은 외침을 그저 ‘착한 마음’쯤으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아이들은 이미 많은 것을 보고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의 행동에 미소만 짓는 어른이기보다는, 함께 걷는 어른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