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살림을 시작한 춘천의 아파트는 3층이었지만 경사진 언덕에 위치해 5층 정도의 높이였다. 당시 신혼집주인은 스님이었는데 세탁기, 냉장고는 물론 소파까지 빌트인 되어 있는 아파트를 전세로 내어 줘 난 혼수로 침대와 티비 그리고, 나의 중고 재봉틀만 가지고 신접살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째가 태어나 연고도 없는 춘천에 살게 된 나는 만날 사람도 찾아갈 단골 카페도 없었다. 그나마 남편 회사 선배의 아내분이 운영하는 요가원에 가끔 들러 임산부 요가를 하거나 점심을 함께 하는 게 사회 활동의 전부였다. 남편이 출근하면 오전엔 사이버 대학 강의를 듣고 오후엔 주로 베이킹을 하고 태어날 아이의 용품들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인터넷만 뒤져도 쉽게 배냇저고리 만들기부터 땅콩 침대 만들기, 빕 스카프 만들기 등등 예비 엄마의 핸드메이드 욕구가 마구마구 샘 솓았다. 인스타도 없던 시절이라 나의 솜씨를 뽐낼 곳이라고는 퇴근해 들어오는 남편과 가끔 안부를 전하는 나의 옛 친구들이 전부였지만 나의 작품들을 사용해 줄 나의 VIP 고객이 뱃속에서 꿈틀거리고 발길질을 할 때마다 지치기는커녕 더욱 신이 났다. 오랫동안 서서 재단을 하고 있으면 다리가 저리기도 하고 한참을 앉아 재봉틀을 돌리면 산 만해진 배가 뭉쳐 뻐근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태교였다.
결혼 전부터 아파트보다는 주택살이에 관심이 있는 우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의 발령으로 강릉에 오게 되면서 관심을 실천으로 옮기기로 했다. 주택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나의 모습, 작은 작업실에서 드르륵드르륵 미싱을 돌리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주택에 살면 층간 소음을 걱정하며 재봉틀 소음 방지매트를 깔 필요도 없고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우리가 이사 오게 된 집은 정원이 넓어 아이들이 뛰어놀기엔 더없이 좋았지만 집 구조는 그렇지 못했다. 복층구조로 1층엔 거실과 주방뿐 방이 없었다. 내 작업실로 쓸만한 방이 없는 거다. 2층도 방 두 개뿐이라 우리 부부의 침실과 아이들 침실이 다였다. 기존 집주인이 사용하던 작업실 형식의 작은 공간이 1층에 붙어 있긴 했지만 이곳은 자타공인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낙점되었다. 주택이지만 넉넉한 방이나 공간이 없어 나의 재봉틀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함박눈이 내리던 12월 12일 이삿날, 나의 재봉틀은 눈치를 보며 결국 주방 베란다로 쫓겨나듯 겨우 자리를 잡았다. 폭이 겨우 1미터 남짓되는 베란다에서 의자를 두고 앉아 무슨 미싱을 돌린단 말이냐. 재단대도 없이 원단은 어디서 자르고 다림질은 어디서 하냐고. 등받이 의자는 들어가지도 않아 작은 스툴의자를 놓으니 겨우 앉을 수 있는 작고 긴 공간이었다.
둘째가 7개월 때 주택살이를 시작했으니 나의 취미생활은 고사하고,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재봉틀을 둔 베란다는 작업실이기 보다는 창고에 가까웠다.
아파트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의 넓은 집을 돌보며 아이를 따라다니다 보면, 하루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내가 바라던 ‘타샤 튜더의 정원' 같은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 장미 넝쿨 사이를 산책하고, 손님들을 초대해 티타임을 즐기는 여유로운 그림은 현실에선 도통 펼쳐지지 않았다.
현실의 나는, 틈만 나면 계단을 기어오르려는 겁 없는 려환이를 따라다니느라 숨이 찼고, 결국 근처 영농상회에 들러 사 온 못생긴 갈고리 잠금장치를 현관 중문과 계단문에 걸어 잠궜다. 2층에서 굴러 떨어질까 봐 댕댕이들을 위해 쓰던 안전문까지 설치했다.
정원 한편엔 아이들을 위해 작은 모래 놀이터를 만들어줬지만, 그곳에서 주운 돌멩이를 쏙— 입에 넣어 맛보는 걸 즐기는 녀석 때문에 자연에 풀어놓았을 때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으니 나는 또 하루 종일 단속 모드였다.
그뿐이더냐. 밤에 길고양이들이 놀다 간 자리를 살피느라 집 안 청소도 모자라 매일같이 모래까지 뒤져야 했다. 혹시라도 고양이 배변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봐.
그렇게 나는 어느새 ‘육아 전담 보육사’와 ‘주택 관리 집사’의 역할을 넘나드는, 우리 집의 ‘원더우먼’이 되어 있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나만의 시간이 간절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까지 무너지게 두고 싶진 않았다. 우울함이 스며들기 전에, 나를 위한 무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싶었다.
아이의 낮잠 시간이 오자, 조심스레 주방 베란다 문을 열고 재봉틀 스위치를 켰다.
어린이집에 간 첫째, 그리고 쎄근쎄근 자고 있는 둘째.
오늘은 환브로를 위해 옷을 만들어볼까?
재단할 공간이 없어 주방 식탁 아래에 조심스레 패턴과 원단을 펼쳤다.
재봉틀을 돌릴 땐 혹시 아이가 깰까 봐 문을 닫고,
좁은 베란다 한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조심조심 작업을 했다.
그래도 좋았다.
여전히 노동이고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과정이지만 완성된 옷을 손에 들고 바라볼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도파민이 솟아났다.
‘내가 잘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오후 4시.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고, 둘째가 낮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나는 신데렐라가 된 듯, 정신없이 주방을 정리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원단과 먼지들을 후다닥 치우고, 재봉 도구들도 제자리로 옮겨야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오후에 만든 환브로 커플 티셔츠를 꺼냈다.
"짜잔~~~ 어때? 귀엽지?"
"우와~~~ 예쁘다! 주문한 거야?"
"아니~ 엄마가 만들었어. 려환이 잘 때~~~~"
그렇게 오늘도, 옷도 만들어주는 ‘원더우먼 엄마’는 남편과 아이들의 호응에 힘을 얻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하루를 잘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