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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삶의 습관

by 왕드레킴

나에게 '문화생활'이라는 단어가 처음 다가온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어른의 인솔도 없이 친구 혜원이와 단둘이 대학로로 향했던 어느 날. 엄마의 허락을 받아 인형극을 보러 갔던 그 경험은 어쩌면 어린 나에게 ‘자유’와 ‘성장’을 처음으로 느낀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 거리를 걷고,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사이에 앉아 공연을 본다는 행위는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안겨주었고, 우리는 꽤 성숙하고 특별한 아이들이라며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귀엽고 조금은 우스운 기억이지만 그때 느꼈던 설렘을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또 다른 문화적 사건이 내 일상에 들어왔다. 친구 효숙이와 함께 예술의 전당 연간회원에 가입했던 일이다. 연회비는 아마 5,000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중학생 주머니 사정에는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말 오케스트라 송별음악회 공연 티켓 한 장과 팜플렛, 회원카드가 집으로 배달되었고, 마치 VIP 대우를 받은 듯 우리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회원카드를 들고 다녔다. 중학생다운 앳된 얼굴에 ‘문화 시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공연 날엔 단정한 옷차림에 마음까지 단속하며 예술의 전당 음악당 객석에 앉았던 나의 모습을 기억한다. 사실 오케스트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그 음악이 전부 이해되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분위기와 경험 자체가 우리를 한층 어른스럽게 만들어주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문화생활은 조금 더 개인적이고 깊어졌다. 나는 연극과 뮤지컬에 빠져 들었고, 하루는 배우 윤석화 님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겠다고 혼자 대학로 산울림 소극장을 찾기도 했다. 대학로 입구 꽃집에서 안개꽃 한아름을 사면서 밑동을 자르지 말고 길게 그대로 신문지에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디서 봤는지 신문지에 무심하게 쌓인 꽃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조용한 소극장, 배우의 목소리 하나, 숨소리까지도 울림처럼 가슴에 내려앉던 순간을 기억한다. 엄마와 딸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모노드라마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그 여운은 꽤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렀다.

공연이 끝난 직 후 대기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배우님은 내가 챙겨간 편지지에 빼곡히 편지를 써 주셨다.

나의 감동과 진심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공연 이후 나는 연극배우라는 꿈을 품게 되었고,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그 꿈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그 시절의 순수한 열정은 여전히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비록 나는 연극배우가 되지도, 고상한 문화 예술인이 되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문화생활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이다. 다행히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문화생활에 적극적인 남편을 만나, 우리는 가족이 함께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즐기며 지내고 있다. 클래식 공연은 물론이고, 뮤지컬, 재즈, 대중음악 콘서트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관람을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때로는 여행과 공연을 함께 계획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문화를 삶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함께 공연을 보며 감상을 나누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음악을 좋아하고, 공연장의 긴장과 공기를 즐길 줄 아는 감수성 있는 아이들로 자라고 있는 모습에 나는 자주 마음이 뿌듯해진다.


문화는 강요나 교육으로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삶의 습관이라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다시 한번 느낀다. 문화생활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삶의 질에 풍미를 더해주는 감각이라고.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문화적 경험을 쌓아간다는 것은, 인생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의 오래된 기억들과, 지금 가족과 함께 만들어가는 이 작은 문화 습관들이 언젠가 아이들의 삶 깊은 곳에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란다. 문화는 단지 취향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이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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