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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Nov 13. 2024

12. 아드리아해의 춤추는 석양

해안도시 자다르


플리트비체에서 시간을 더 보내게 된 우리는 다음 목적지 자다르까지 서둘러야만 했다.

다음날 크루즈를 타기 위해 기항지인 스플리트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크로아티아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동선에 위치한 해안마을 자다르의 노을이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바다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차에 탄 우리들은 허겁지겁 차에 있던 빵과 바나나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아이들은 여전히 출출한 상태였지만 식당에 들어가 여유 있게 점심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었는데 점심까지 배만 고프지 않게 달래 놓고 이동하는 우리들이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했다. "크루즈에 타면 하루 다섯 끼는 먹을 수 있으니까 오늘은 좀 덜 먹어도 되겠지?" 신랑이 우스갯소리를 한다.

일몰이 17시 10분이라 하니 4시 30분에는 도착해야 예쁜 노을을 만날 수 있다.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자다르까지는 '두 번 실는 없다'는 생각으로 바로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우리나라와 마친가지로 고속도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번 우리 여행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트레블 카드( 현금으로 환전하지 않고 카드에 환전한 액수를 넣어 놓고 현지에서 사용하는 직불카드)'를 사용했다. 결제 수수료가 면제라 아주 편리한데 고속도로 통행료도 이 트레블 카드로 결제했다. 열심히 달려 해안가로 들어오니 넘어가는 노을에 주변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을을 즐기러 광장에 모여들고 있었다. 큼직한 해드폰을 끼고 해안선을 달리는 남자,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띠었다. 마실 나온 동네 어린이들과 그 아이들을 단속하는 엄마들은 강릉에서 가끔 바닷가 마실을 나가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70세는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쌀쌀한 기온에 바다 수영을 하고 방금 나오셨다. 우리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강릉 바닷가에서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매일 아침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도 있고 서쪽으로 넘어가는 핑크빛 노을을 감상할 수도 있다. 살고 있는 주변이 모두 농사를 짓고 있는 논, 밭이라 크고 높은 건물들이 없어서 그야말로 아름다운 우주의 신비를 매일 관찰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매일 일상에 치어 지내다 보면 순간의 뜨는 해와 넘어가는 해를 만나지 못하기 십상이다.

매일을 만드는 일출과 일몰도 때로는 특별한 의미가 담기고 감탄하거나 또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오늘 만난 아드리아해의 노을은 동해에서 만나는 노을과는 또 다른 쉼의 위로와 평안을 안겨주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하루를 마감하고 있는 붉은 태양, 그리고 파도에 맞춰 춤을 추듯 연주 중인 바다 오르간에 려환이는 흔들리듯 움직인다. 그냥 몸이 살랑살랑 춤을 추게 만든다.

태양이 바다 아래까지 다 내려오자 다시 하늘은 파래지고 바다는 잉크가 퍼지듯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한참을 바다 멀리 숨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 꼭 안아주었다. 특별한 말도 없이~ 그냥.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일몰은 우리 가족에게 서로 안아주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바다오르간: 해안가의 거대한 악기는 계단 아래에 설치되어 바다의 파도에 의해 연주된다. 파도가 셀 때는 거칠고 웅장한 소리가 잔잔한 바다의 모습에서는 속삭이듯 아름답게 연주되는 게 특징이다.




해가 지고 나니 슬슬 피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6시간을 오르락내리락 걸었으니 연실 하품이 나고 피곤할 만도 하다. 내일이면 크루즈 여행의 시작이다. 5박 6일 동안 배에서 제공하는 양식을 주로 먹게 될 테니 숙소로 식당대신 가는 길에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자는 의견을 냈다. 모두들 좋다고 했다. 고기를 좀 사고 라면도 끓이고 코리아 스타일로 먹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비행기에서 가지고 온 고추장도 있으니 오이와 채소도 있으면 한상 차림이 되겠다.

그래, 이것이 짠내투어지. 유럽의 식당은 기본이 10~15유로 ( 한화로 2만 원이 훌쩍 넘는다)이니 돈도 아끼고 든든히 먹을 수 있으니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동을 하며 마트를 검색했는데 대부분 문을 닫았다. 분명 금요일이고 식당도 문을 열었는데 마트와 상점등은 모두 문이 닫혀있다. 주유소 편의점에 들러 물어보니 오늘이 '모든 성인 대축일'이란다. 거의 대부분의 유럽이 문을 닫는 날이다. 아뿔싸! 이건 또 무슨 장애물인지,,, 이미 라면과 고기등의 메뉴를 생각한 우리는 더 이상 레스토랑이 당기지도 않았다. 고민을 끝에 그냥 숙소에 가서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식량등으로 대충 때우고 일찍 자기로 했다. 뭐든 한국 음식을 먹는다니 아이들도 좋다고 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챙겨간 누룽지를 물에 팔팔 끓이고 육개장 블록에도 물을 부었다. 어제 사놓고 틈틈이 먹던 빵과 우유, 딱 두 개 챙겨 온 사발면까지 이상한 조합이었지만 꽤 든든하고 맛있는 저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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