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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 Jul 13. 2017

02. 정보 혁명을 이끈 인쇄술의 발명

1부 웹의 시작과 현재


"사실, '누가 트로이를 세웠는가?'라는 질문은 그야말로 전 학급의 비밀이 돼 버렸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스마라그도프를 읽어야만 했다. 하지만 스마라그도프는 콜랴를 제외하면 아무한테도 없는 책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인간은 기록을 통하여 위대해졌습니다.

인류는 본능처럼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선사시대 벽화를 통하여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의 사는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기록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전파되고 새롭게 탄생합니다. 과거의 기록을 통하여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고 때론 미래를 짐작하기도 합니다. 수학과 물리학, 공학과 천문학의 업적 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지식이 쌓이고 전해진 결과입니다. 뉴튼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거인은 바로 그간 쌓아온 인류 지식의 총체일 것입니다.


지식의 성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문자는 인류의 지식을 보다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쉽게 전파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지식은 나눌수록 더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기원전 30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이를 잘 증명합니다. 장서를 수집하기 위하여 국경을 넘어오는 모든 책을 압수하여 필사 후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반환보증금을 지급하고 아테네로부터 고대 비극들의 원본을 빌려온 후 보증금을 포기해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국가의 권력이 이 도서관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보유 장서의 수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으나 당대 최대 규모라는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습니다.


그림 1. 현대에 다시 지어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진정 빛나는 이유는 장서의 수뿐 아니라 이를 활용한 연구활동에 있습니다. 당대의 학자들을 초빙하여 강의와 연구를 지원하였는데, 전해저 오는 연구 결과를 보면 당시 이 도서관의 학풍이 얼마나 진보적이고 진지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라토스테니스는 지구의 크기를 정확히 계산하였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추론하였습니다. 히파르코스는 별의 등급과 위치를 기록한 도표를 만들었고 유클리드는 그 유명한 기하학 교과서를 집필하였습니다. 2천 년 전이라는 시간, 그리고 이후 중세 천년의 암흑기 동안 인류의 지식이 얼마나 역행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당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업적은 더 빛나 보입니다.


지식 독점의 시대


문제는 책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 모든 책은 필사에 의하여 전파되었습니다. 종이가 보급되기 전 까지는 양피지나 파피루스 등 대체품을 이용해야 했는데 가격도 비싸고 보존성도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책은 당연히 권력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소유가 권력이란 것은 즉 지식의 소유가 권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소수에 의하여 정보와 지식이 독점되는 시대입니다. 종교가 권력을 가지던 시대 책은 교회와 수도원에 있었고 학문의 연구도 여기서 이루어졌습니다. 성서의 교리와 어긋나던 지식은 탄압받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15세기,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지식의 독점은 계속되었습니다.



인쇄술이 세상을 바꾸다


15세기 유럽,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인쇄술을 발명합니다. 흔히 유럽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발명한 건 활자를 포함한 인쇄술 전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활자의 대량 생산과, 인쇄 기술, 새로운 잉크 등 책을 대량 생산하는 시대를 연 것이었습니다.


그림2. 마틴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인쇄기술의 도움으로 30만부를 출판하여 유럽 전역에 배포할 수 있었다.


인쇄술 발명 후 성서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더 이상 성직자만의 특별한 권위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이 출판되기 시작했고, 이후 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이것이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쓴 95개 조 반박문은 인쇄술의 힘을 빌어 대량으로 전파되었고 종교 개혁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지식의 대량 생산과 전파가 가져온 변화입니다.


그림 3. 인쇄술 발명 이후 유럽 출판량의 변화 15세기 까지의 누적 출판량 보다 16세기에 더 많은 책이 출판되었다. (그래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로축을 로그 그래프로 표시함)

구텐베르크 이후 유럽의 출판량은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책을 구하기 쉬워지고 가격도 떨어지게 됩니다. 수요의 증가는 다양한 책의 출판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가능하게 했습니다. 귀족이나 엄청난 부자가 아니더라도 점차 책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쇄술, 지식을 대량 생상하고 전파하는데 비용과 어려움이 적어진 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세상을 바꾼 웹

웹은 인쇄술의 진정한 계승자로 볼 수 있습니다. 필사의 시대에서 인쇄의 시대로 넘어간 지식의 저술은 웹을 통하여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더 쉽고 저렴한 비용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지식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검색엔진과 각종 네트워크는 정보들의 연결을 더 긴밀하게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정보는 때로 소란스러움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과장되거나 잘못된 정보, 고의적인 거짓 정보가 범람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물결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정보의 독점은 보다 더 약해지고, 세상은 과거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식의 대중화가 바꾼 세상


그간의 역사에서 살펴봤듯이 인류가 오늘날의 진보를 이루어 냈던 것에는 지식의 생산과 전파와 관련이 깊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누리고 공유하는 것이 쉬워질수록 세상은 빠르게 변해갑니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의 비용이 저렴해지고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인류의 지식도 함께 성장합니다. 정보의 공유는 보다 평등하고 진보된 사회를 만듭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70이 넘은 나이에 취임하였습니다. 그 당시 인터넷의 대중화나 그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김대통령이 인터넷을 잘 알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터넷, 정보화 시대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정보화 혁명은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어, 국민경제 시대로부터 세계경제 시대로의 전환을 이끌고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손쉽고 값싸게 정보를 얻고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말합니다. 이는 민주사회에만 가능합니다. -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중

소통과 개방, 평등과 자유는 웹 정신의 본질 그 자체이기도 하며, 지식의 역사에서 우리 인류가 끊임없이 추구해 온 바 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계속 바뀌어도, 누구나 쉽게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은 먼 훗날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현업에서 서비스를 만들고 꾸려가는 동료 기획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어디 이 일 뿐이겠습니까만,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길을 헤매야 하는 당황스러운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해 보여 좌절하고 방황할 때가 아마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의심과 두려움의 순간에, 우리는 지금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찾아온 길 바로 그 위에 서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용기와 위로를 얻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1971년 구텐베르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저작권이 만료된 과거의 책들을 전자 문서화하여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원봉사자들에 의하여 입력 및 운영되고 있으며 2015년 8월 기준 54,600권의 책을 디지털화하였다고 한다. 종이책을 밀어낸 전자문서 구축 프로젝트의 이름이 구텐베르크라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project gutenberg 웹사이트) 또한 한국에도 이 프로젝트에서 모티브를 얻은 직지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데는 책의 탄생 (뤼시앵 페브르, 앙리 장 마르탱)의 내용에서 도움을 받았다. 출판과 인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한 내용은 코스모스 (칼 세이건)에서 처음 접하였다. (이미 많이 유명한 책이라 대부분 아실 테지만) 웬만하면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정보화 기술은 지식의 희소성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꾸준히 향하고 있다. 이는 정보의 균형과 평등을 통하여 보다 민주화된 사회를 이끌기도 하나, 그 도전의 대상이 늘 절대권력만을 향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새로운 권력을 만들기도 한다. (소수 인터넷 기업의 정보 독점, 디지털화에 따른 뮤지션과 소비자 간의 갈등 등 다양한 예를 들 수 있겠다.) 이를 둘러싼 논쟁에 대하여는 보다 상세하기 들여다볼 가치가 있을 것 같아 나중에 따로 글을 써 볼 생각이다.


본 연재에서도 가급적 라이선스가 확인된 이미지만 사용하였다. 글에 사용된 그림의 출처는 아래와 같다.


표지 그림 :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 복제본, 알타미라 동굴 국립 박물관 소장. (출처)

그림 1 : 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bibliotheca alexandrina) 내부 전경 (Attribution: Carsten Whimster, 출처)

그림 2 : 마틴 루터 95개조 반박문 (출처)

그림 3 : 유럽 출판량 변화표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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