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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 Jul 08. 2017

01. 웹 이야기를 로마제국에서 시작하는 이유

1부 웹의 시작과 현재


나는 기다림 이전에 있고, 너는 기다림 너머에 있다.

기다림을 넘지 않으면 너에게 갈 수 없다. 

- 이광호,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기원전 312년, 로마의 감찰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오스는 로마에서 이탈리아 남부 브랜디시를 잇는 아피아 가도를 건설합니다. 삼니움 전쟁에서 겪었던 보급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도로가 군대와 물자의 수송에 매우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곧 밝혀지자 로마 전역에 도로가 건설되기 시작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로마 전역에 거미줄처럼 건설된 도로는 포장도로 50,000마일을 포함하여 250,000마일이 넘었습니다. 군사적 용도부터 상업적 용도까지, 온갖 물자와 소식들이 로마의 길을 타고 전달되었습니다.


사실 길은 로마시대 이전부터도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인프라로써 도로를 생각한 것은 로마인들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림1 (A)단단히 다진 지반 (B)주먹 크기의 돌, (C)깨진돌이나 콘크리트, (D)석회로 만든 시멘트로 기초 (E)보도블록을 덮었으며 둥근형태로 만들어 배수를 용이하게함


로마의 도로는 단단한 지반 위에 자갈과 모래, 오늘날 콘크리트와 같은 재료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납작한 돌로 튼튼하게 포장되었습니다. 배수가 용이하도록 가운데가 볼록하게 셜계되기도 하고 차마를 위한 도로와 인도가 따로 구분되기도 했습니다. 길가에는 가로수가 심어졌으며, 나무가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관리 가이드가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날의 도로 건설과 관리 시스템과 다르지 않습니다.


법과 표준화로 만든 도로


한 지점까지 길이 이어져 있고 이정표와 지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도로라고 부르긴 어렵습니다. 신나게 차로 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도로가 끊어지고 오솔길로 바뀐다면 난감해질 것입니다. 곳곳에 사유지가 있어서 이곳을 지나려면 돈을 내야 한다거나, 갑작스러운 땅 주인의 변덕으로 통행이 막힌다면 그 역시 믿을 수 있는 도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도로가 그 역할을 다 하려면 지도와 이정표가 정확한 것은 물론이며, 포장도로인지의 여부와 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인지도 중요합니다. 언제든 이 길을 지날 수 있다는 믿음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이하 위키피디아 인용 : https://en.wikipedia.org/wiki/Roman_roads )

로마의 도로는 세 가지 종류가 있었으며 개인이 건설한 도로일지라도 공공재의 역할을 강조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법을 편찬한 울피아누스는 로마의 도로에 대한 기록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Viae publicae, consulares, praetoriae or militares (공공도로)

고비용이 들어가는 주요 도로로 공공 비용으로 건설됨

공공 비용과 이웃 지주들의 기부금으로 유지됨.

Viae privatae, rusticae, glareae or agrariae (사설도로)

민간인이 사유지에 건설한 도로

공공 사용을 위하요 도로를 기부할 영광을 부여 (사실상 공공재로 인식)

Viae vicinales (지역 도로)

각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로 공공도로도 있고 사설도로도 있음

사설도로라 하더라도 시간이 흘러 설립자의 기억이 사라지면 공공도로로 전환됨.


한편, 로마법은 도로의 폭, 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직선도로는 최소 8 로마 피트, 곡선의 도로는 그 두배로 한다. (12 표법)

로마법은 역권(役權)으로 도로 사용권을 정의하였다. 도로를 걸을 권리 (ius eundi )로 사유지를 위를 지날 수 있음을, 수레나 마차를 이용하는 것을 운전할 권리(ius agendi)로 명시하여 보장하였다. (로마법)


로마의 도로는 표준화된 사회 인프라였으며, 변함없는 도로의 이용을 위한 법률적 근거와 사회적 약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도로망을 통하여 로마인들은 어느 지점까지 내가 마차를 타고 갈 수 있을지, 며칠이나 걸려서 도착할지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도와 이정표는 믿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길로 얼마큼 짐을 옮기려면 어떤 마차가 필요할지도 에측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도로와 다름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림 2. 오늘날 남은 로마 도로 중 일부, Remains of the Appian Way in Rome, near Casalrotondo


인터넷 거버넌스


저는 로마의 도로가 “누구나 영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과 신뢰, 그리고 표준화로 완성되었고” 훗날 팍스 로마나 시대의 기반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로마의 도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살펴보며, 저는 그 과정이 오늘날 웹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세계를 연결한 물리적 전화선은 웹과 인터넷을 설명하는 아주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ISP의 회선을 쓰던, 어떤 기기와 프로그램을 사용하던 우리는 웹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장애와 비장애, 온갖 정치적 탄압과 자유를 막론하고 웹은 항상 연결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또한 웹은 공공재입니다. 웹을 발명한 팀 버너스 리는 자신의 모든 특허를 포기했고 웹 표준과 중립성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IT기업들의 기술과 서비스 발전을 위한 노력뿐 아니라 수많은 오픈소스의 노력으로 웹이 유지되고 커 나가고 있습니다. 표준과 신뢰, 공공성이 로마의 도로를 완성했던 역사는 웹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영광과 성공의 역사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웹의 상업적 성공과 함께 이를 사유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고, 권력과 자본에 의한 도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간 짧은 역사 속에서 이러한 위협은 끊임없이 있었고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과거 우리는 웹의 사유화와 중립성 훼손의 시도가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렀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정 기업의 제품이, 특정한 권력이 웹을 점유하려 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 내고 때로는 힘겹게 싸워가고 있는지는 현업에 있는 기획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하는 주제라고 봅니다. 로마의 도로가 향했던 길은 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웹과 인터넷의 이야기를 기원전 로마의 도로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오늘날 웹은 여러 기관에서 관리한다. 이중 다수는 비영리 국제기관이다.  HTML과 CSS에 대한 표준을 만들고 관리하는 W3C, IP주소를 할당하고 관리하는 ICANN 등.. 그러나 로마법과는 달리 웹에 대한 여러 가이드는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일 경우가 많다. 이는 한 기업이 소유한 특정 생태계 (IOS, AOS 등)와 다른 웹의 특징이다. 웹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관리되고 주요한 의사결정이 되는지는 이후 연재를 할 계획은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하여 검색을 해보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 :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et_governance )


W3C의 권고 사항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나, 특정 제조사가 이를 거부하고 별도의 기능을 포함한다고 해도 막을 방법은 없다. 이 때문에 웹의 심각한 파편화가 발생하기도 하고, 특정 기업이 웹을 사유화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기도 한다.


한편 파편화가 웹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또 때로는 이것이 긍정적 작용을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일리가 있다고 본다. 모든 표준은 기술의 발달을 앞지르지 못한다. 표준을 정하더라도 이것은 머지않아 구식의 것이 되며,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게 된다. 웹의 발전은 표준이 기술을 따라가는 것으로 진행되어 왔다. 앞선 기술이 검증되고 보편화되면 이를 웹 표준이 수용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대한  보다 상세한 이야기들은 이후 연재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로마의 도로에 대한 자료는 주로 위키피디아를 참고했다. 도로에 대한 로마법과 제도에 대한 언급 대부분도 위키피디아가 출처이며, 해당 내용의 원 출처 역시 그곳에 명시되어 있어 모든 사항에 대한 별도 출처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로마의 도로 및 인프라에 대한 내용은 로마인 이야기 1권을 포함하여 곳곳에 언급되며, 10권은 로마의 건설 인프라에 대한 내용으로 한 권이 할애되어 있다. 로마인 이야기 자체가 역사적 사실로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으나,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참고 용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직접 발췌한 부분은 없으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 책을 읽었던 기억이 반영되어 있을 수 있다.


이 글에 들어간 사진은 wikimedia commons의 퍼블릭 라이선스 이미지들이다.

본 연재를 포함하여 향후 연재에서도 이미지들의 출처와 라이선스를 가능한 밝히고자 한다.

표지 사진 : 아피아가도 지도 (출처)
그림1 : 로마 간선도 단면 (출처)
그림2 : 오늘날 남아있는 아피아가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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