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서, 그리고 나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1편에 이어 적어본다.
1편을 요약해보면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나에게는 별거 아니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세상은 정말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라온 배경도,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삶의 가치관도 모두 다르니 같은 상황을 놓고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까지 살면서, 특히 미국에서의 삶을 경험하며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바로 '남의 시선보다 중요한 나의 가치관' 그리고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냥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지~ 그런가 보다' 하다 보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내가 정해놓은 틀이 절대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님을 알게 된다.
미국의 삶에서 느껴지는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에 대하여...
1. 아이비리그 vs 주립대, 둘 다 합격했다면 당신은 어느 학교를 선택하겠습니까?
2. 노브라, 레깅스, 크롭탑 등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패션 스타일
3. 연령의 잣대에서 자유로운 그들 - 10대와 80대가 함께 즐기는 카페 문화
까지 1편에서 이야기해보았다.
4. 스타벅스에서 20대와 함께 일하는 시니어층
미국에 와서 현지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때, 나이 드신 분들을 'Old People'이라고 말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삶이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니 주로 '(Senior) 시니어'라는 단어를 존중의 느낌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3번에서 얘기한 것처럼 연령의 잣대로 가는 장소가 구분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섞여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더욱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시니어층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고 연령층을 채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그 장소나 직무가 다소 한정적인데 반해 미국에서는 다양한 곳에서 고 연령층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소 느려도, 업무가 서툴러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기다려주고, 잘 듣지 못하면 크게 천천히 얘기해주고,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듯했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20대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함께 카운터에 서서 주문을 받는 모습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고객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냥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는 문화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가능한 그림이었다.
또한 미국의 마트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워낙 물건을 많이 사는 문화이다 보니 계산대에는 계산하는 캐셔와 고객이 산 물건을 봉투에 담아 카트에 넣어주는 사람이 별도로 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조금은 서툴고 어눌했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가지기는커녕 같이 대화를 나누고 기다려주었다.
물론 미국에도 많은 차별이 존재할 것이다. 나는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인종 차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많아도, 인종이 달라도, 장애가 있어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5. 마음의 여유가 주는 양보 문화
뉴욕은 서울 이상으로 복잡하고 정신이 없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 사이렌 소리가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가 사는 뉴저지는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길도 널찍널찍하다. 겁쟁이 나는 한국에서 운전을 포기한 운포자였다. 미국에 와서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 했다. 운전을 못하고는 아무 곳도 갈 수가 없었다. 너무나 다행히도 길은 다소 한산했고 넓었으며 주차장도 널찍널찍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운전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양보하는 문화였다. Rocal 도로는 속도제한이 25마일(좁은 주택가)~40마일 정도, 그러니까 40km~65km인데 처음엔 40마일 도로에서조차 20마일로 달리는 민폐를 끼쳤지만 웬만해서는 경적을 울리는 차가 없었다. 그저 옆 차선으로 가거나 심지어 한 차선밖에 없는 도로에서는 내 속도에 맞춰 따라와 주었다. 초보운전자에게 차선 변경은 엄청 겁나는 스킬이었는데 깜빡이를 넣으면 바로 속도를 줄이고 내가 끼어들 수 있도록 양보해주었다. 비보호 좌회전이 일상적인 뉴저지에서는 내가 먼저 좌회전할 수 있도록 신호가 바뀌어도 하이빔을 깜빡거리며 먼저 가라고 손짓을 보내주는 일도 많았다. 너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국은 만 17세에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학생 면허 취득 후에는 1년 동안 자동차 번호판에 빨간색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앞에 빨간 스티커를 붙이고 달리는 차가 있다면 아무리 그 차가 천천히 달려도, 조심 운전을 하느라 타이밍을 잘 못 맞춰도 위협을 하거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운전이 생활에 필수인 이곳에서는 걷기도 힘든 시니어층부터 10대까지, 장애인들까지 모두 편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차이를 인정하고 양보해주는 마음의 여유까지 가지고 있다. 내가 서울에 돌아가서 과연 운전을 할 수 있을지 나도 내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6. 차별의 온도
나는 미국에 살면서 아직까지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은 없다. 아니,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느껴본 적은 없다.
그것은 상대방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다른 것 같다.
한 번은 친구와 함께 쇼핑을 갔다. 들어갔을 때부터 점원이 그리 썩 친절하진 않았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들어 보고 걸쳐보다 맘에 드는 것이 딱히 없어 그냥 나오면서 '땡큐'하고 나왔다. 그런데 그 점원이 어떤 인사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뭐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한국은 '손님이 왕'이라는 문화가 있는 반면,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은 직원이 왕인 느낌이랄까, 손님이 들어와도 직원들끼리 수다를 계속 떨고 있거나 자기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아무튼 뭐 그러려니 하고 나왔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며 얘기했다. "쟤네가 우리가 동양 여자라고 무시하는 것 같다. 어떻게 인사도 안 할 수 있냐, 인종 차별당했다"라며 말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도 느낄 수 있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이것은 느끼는 온도의 차이일 뿐이다. 정확한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다 보면 상처 받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왕이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며 하루 종일 씩씩대는 거 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잊어버리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은 것 아닌가?
내가 경험한 미국의 삶과 문화는 극히 일부일 수 있다. 그냥 살다 보니 느껴지는 나만의 경험에서 기존의 삶과 견주어 '아~ 그러려니' 하고 사니 조금은 삶이 편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누군가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여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내보이지 못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이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나의 행동도 타인의 행동도 너그럽게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지~ 그런가 보다' 하며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엄격했던 잣대가 사라지고 서로를 인정하며 둥글둥글 살아지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