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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Oct 16. 2024

그 시작

예술의 전당 안의 어느 카페에서 찍은 첫 사진 (Pentax KX / Kodak ColorPlus 200 / 2022.07.13)




    아마 사진을 처음 접한 것은 2022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무척이나 덥고 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병장이 된 나는 누워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휴가 계획을 열심히 세우고 있었다. 계획 세우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휴가만은 예외다. 바깥세상을 한껏 누리고 와야 하기 때문에 계획은 필수다.

 

    나는 휴가를 나갈 때면 종종 전시회나 공연을 가곤 했다. 사진을 좋아하기 전에는 미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주로 미술 전시회를 갔었다. 이번에는 색다른 곳을 가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하 ‘브레송’)”이라는 사진작가의 70주년 사진전이었다. 사진에 대해서 단 하나도 몰랐던 나는, 사진을 전공한 내 후임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브레송과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의 대화>라는 책도 구했다.

 

    짬이 너무 차버려 쓸모가 없어진 병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독서와 낮잠밖에 없다. 그래서 다행히도 책을 읽을 시간은 많았다. 나는 천천히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의 대화: 1951-1998>라는 책을 읽어 나갔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사진에 대한 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었다.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셔터를 누른다는 행위. 이를 통해 세상을 포착하고, 더 나아가 삶을 포착하려는 그의 시도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도 여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그림을 그리다가 사진을 찍게 된 그의 인생 궤적도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브레송을 '추앙'하게 되었다.

 

    나는 휴가를 나가자마자 카메라를 구했다. 브레송이 필름 카메라를 썼기 때문에 필름 카메라를 구했다. 브레송이 썼던 Leica 사의 카메라를 구하기에는 당시 주식 잔고가 파란불 범벅이었기 때문에… 먼지 쌓인 Pentax 사의 KX라는 필름 카메라를 집 한구석에서 꺼냈다. 이 카메라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젊었을 적 사용하셨던 카메라였다. 할아버지의 손에서 떠나 그 수많은 세월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녹도 많이 쓸었고 뷰파인더가 뿌옇게 보였다. 혹독한 디지털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래된 카메라를 아직도 수리하고 계시는 분을 수소문해서 겨우 수리를 맡겼다.

 

    수리가 끝난 검은색의 카메라는 무척이나 멋있었다. 모든 것이 기계식이었기 때문에 손목이 뻐근하리만큼 묵직했다. 나는 이 카메라를 들고 브레송의 사진전으로 향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비가 무척이나 많이 오는 날이었다. 나는 카메라가 비에 젖을까 노심초사했다. 그곳에서 나는 내 인생 첫 셔터를 눌렀고, 그렇게 사진이라는 취미가 내 삶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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