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제품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다
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세탁기는 세탁을 잘해야하고, 오븐은 요리를 잘해야 하며, 냉장고는 음식물 보관을 잘해야 한다. 가전회사는 가전제품의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음성인식이 최신 트렌드가 되면서 모든 것을 휩쓸었다. 패밀리 '허브'가 아니면 눈여겨 보지 않고, 음성인식 스피커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무식해보이며, 인공지능으로 알아서 청소하지 않으면 청소기가 아닌 것처럼 됐다.
지난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 IFA를 다녀왔다. 세계 3대 IT 박람회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와 IFA가 꼽힌다.
올초에 열린 CES와 MWC를 볼때는 신기술에 혹했다. CES는 엔비디아 등 IT 업체들의 자율주행차 등을 향한 도전이 엿보였다. MWC에선 통신회사들이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의 주역이 되고자 했다. 주인공은 인공지능이었다. 신기술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기사를 썼다.
그런데 이번 초가을 방문한 베를린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유럽 가전회사들은 미국 시장 위주의 CES와 모바일 위주의 MWC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기술력을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장은 IFA가 거의 유일한 셈이다.
최신 기술이 선보이는 박람회 답지 않게 IFA 각 전시장에선 맛있는 냄새가 풍겨나왔다. 지글지글 고기가 구워지고, 맛있는 빵이 구워졌다. 한쪽에서는 믹서기로 간 칵테일을 맛보게 해줬다. 분명 CES나 MWC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각 업체들은 제각기 부엌을 꾸며놓고 얼마나 맛있는 요리를 만들수 있는지 제각기 경쟁을 펼쳤다. 사실 냉장고가 어떤 음식재료가 부족한 것을 자동으로 알고, 인공지능이 와이파이를 통해 자동으로 온라인쇼핑을 통해 주문을 하고, 냉장고가 요리법을 알려주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결국 혁신이든 인공지능이든 요리가 맛있어야 한다. 그것을 모든 업체들이 보여주려 애썼던 것은 아닐까.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유럽 프리미엄 가전 밀레의 전시장이었다.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오븐, 로봇청소기, 무선청소기 등 삼성과 LG 전시장에서 보던 상품구성과 비슷했다. 하지만 차이는 분명히 느껴졌다.
예를 들어, 밀레가 야심차게 내놓은 오븐 '다이얼로그'를 봐보자. 기존 오븐은 열의 대류를 이용해 음식을 익혔다면 다이얼로그는 전자기파를 이용해 음식을 익힌다. 전자렌지랑 같지 않냐고? 밀레는 주파수가 다른 전자기파를 쓴다고 설명한다. 이 오븐에 장착된 'M셰프' 기능은 또 종류가 다른 음식 재료를 각각의 조리온도에 맞게 익힌다고 설명한다. 밀레는 심지어 얼음 속에 생선을 넣어 오븐에 넣어 조리를 하면, 얼음은 거의 그대로인 상태에서 생선만 익힐 수도 있다고 했다. 전자기파가 음식에 도달해 다시 돌아오는 정도를 분석해 조절하는. 즉 음식과 대화를 하기 때문에 '다이얼로그'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신기술이다. 생각지 못한 기술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본질적인 것은 맛을 살린다는 것에 있다. 그건 사물인터넷도 필요하지 않고, 빅데이터가 필요하지도 않다. 오븐이 가진 능력에 더 충실하게 주목한 셈이다.
밀레 외에도 IFA에서만 볼 수 있는 유럽 브랜드들은 우린 아직 냉장고도 좋고, 오븐도 좋고, 커피머신도 좋아 라고 말하는 제품들이 많았다. 그들 역시 사물인터넷을 하고 음성인식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설명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여전히 소비자들은 전통을 찾고 브랜드를 찾고, 콧대높은 유럽시장의 벽이 높은지도 모르겠다.
물론 삼성과 LG전자가 기본이 부족한 제품을 가지고 유럽 시장을 두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한국 기업들은 기능을 넘어선 신기술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다시 돌아가서 제품의 본질은 뭘까. 그것을 꾸준히 연구하는게 브랜드다.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이나 신기술의 향연 속에서 이번 IFA는 가장 중요한게 뭘까 하는 물음을 던져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