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일기 29 문 대통령의 마지막 대담
오늘 하루 내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인터뷰를 손석희 <jtbc> 전 앵커와 하고 이 내용이 곧 방송이 된다는 소식에 속이 쓰라렸다...
문 대통령은 올해 1월말 새해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임기 마지막 기자회견 자리였지만 취소했다. 최근에 기자들과 만난 것은 국외에서 다른 나라 정상과 함께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제외하면, 지난해 5월, 무려 11개월 전 4주년 연설 뒤 질의응답이었다...
대통령이 특정 언론사와만 인터뷰 해서 속이 쓰라린 건 아니다. (그것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그것보다 여러 기자들과 만나는 것은 쉽게 취소할 수 있으면서,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지 않고 '쇼'는 챙긴다는 것.
우리는 뭐하러 매일 같이 대통령의 언설을 그대로 전달했을까...
'모노클'의 문 대통령 1주년 기사를 읽으며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워딩'을 가감없이 고대로 전달만 하면 그대로 '그 정도의 대우'밖에 결국 받지 못한다는 것.
기자도 언론사들도 깊이 생각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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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는 문 대통령
(Crowd pleaser / 英 Monocle 2.21)
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이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 외교적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와 함께 TV를 시청한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의 5년 임기는 파란만장하게 시작됐다. 취임 9개월 동안 북한 김정은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설전 수위를 높이며, 상대방의 결의를 시험하고 한반도를 핵전쟁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한국 대통령의 집무 공간인 서울 청와대라고 하면 직원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핵 벙커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몰려다니는 요새와 같은 곳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는 그와는 정반대다. 직원들은 다행스럽게도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대피소가 어딘지 별로 무관심한 것으로 보인다. 정신없이 몰려가는 상황과 가장 유사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침 8시30분 한 무리의 허기진 직원들이 직원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전부다. 문 대통령도 가끔 이들과 함께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뷰가 진행된 월요일, 문 대통령은 오전 9시에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혼자서 (집무실이 있는) 3층에 출근한 문 대통령은 작은 체구의 경호원 단 한명을 지나 − 언뜻 보기에 무장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친절한 여성 경호원 − 자신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그의 책상 바로 옆에 위치한 옷걸이에는 회색 카디건이 걸려있고, 그 아래에는 가죽 회색 슬리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반려묘 찡찡이에게 사료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뉴스를 본다”고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대통령은 말한다. 올해 65살인 문 대통령은 업무자료를 읽느라 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다음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에 나선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여유로운 모습의 한국 대통령은 차 한 잔과 함께 최측근 참모들과 대화를 나누며 공식 일과를 시작했다. 이날 ‘티타임’은 시종일관 미소 속에 진행됐지만, 미국과 북한 지도자 간 관계가 임계점에 도달하는 듯했던 2017년 하반기엔 훨씬 정신없는 상황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평온한 상황을 되살리는 데 문 대통령의 공은 지대하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남북대화 주도권을 넘겨받았다. 이것은 국제문제에서 문 대통령이 이뤄낸 첫 성과로 간주된다. 문 대통령은 당장 통일을 추구하지는 않되, “임기 중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굳건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현재 북한은 협상테이블로 복귀했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THAAD) 한국 배치 이후 (냉각된) 한중관계는 수습되었으며, 백악관과는 전화로 소통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가 “견고(rock-solid)"하며,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고 강력”하다면서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이 북한의 미사일 실험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대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하였으며, 나를 100% 지지한다고 말했다.”
물론 올림픽 이후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한반도와 역내는 계속해서 살얼음판을 밟을 것이다. 북한이 돌연 핵도발을 감행해,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를 지지한 문 대통령을 당혹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다음 단계, 즉 북한 비핵화를 의제로 하는 군사 회담 개최는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러나 당분간 문 대통령은 국내 문제에 주력하고 있으며, 개헌에서부터 적폐 청산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공약이 산적해 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이어진 시위의 물결 이후 지난해 대선에서 낙승을 거두고 취임했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부패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치 성향을 떠나 수십만의 일반 국민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제기된 의혹에 몸서리치며 대규모 촛불 시위에 참여했다. 문 대통령은 이 촛불집회의 정당한 계승자(rightful heir)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다. 촛불집회를 기념하는 거대한 그림이 청와대 내에 걸려있다. 문 대통령은 젊은 층의 표를 얻었고, 여러 긍정적 조치들을 취했다. 여기에는 청년 고용을 늘리는 중소기업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근로시간을 줄이며, 주택 구매 기회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젊은 층과 완전히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비트코인 거래 금지 계획, 그리고 유치원 및 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 수업 중단 계획에 대한 반발에 직면해 입장을 번복했다. 한편, 가톨릭 신자인 문 대통령이 대선 토론 때 동성 결혼에 반대하면서 일부 지지층과 소원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대선후보로서 그는 전임자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국민과 거리를 두지 않고 소통하며, 보수적이지 않고 진보적이며, 특권을 누린 전직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는 인물이다. 박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을 청와대에서 보냈으며 지도자로서 나선 적이 드물었다.
비주류 출신에 중국에서 K팝 스타에 버금가는 팬클럽까지 결성된 그의 잘생긴 외모 외에도, 그의 또 다른 매력은 그의 인생 스토리와 한국의 씁쓸하면서도 달콤한(bittersweet) 발전 과정과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전 당시 남한으로 탈출한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난 문 대통령은 뛰어난 법학도였다. 그러다 계엄령이 선포됐던 시기에 학생운동에 참여해 구속됐다. 그리고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인권 변호사가 됐다. 자신이 걸어온 이력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없었다고 말하면서 “내 인생 역정은 그저 한국의 현대사가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문 대통령은 언제나 그렇듯 겸손하게 말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전쟁과 가난을 겪었으며, 남북 분단과 실향으로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정치에 나섰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고, 공직 생활에서 문 대통령은 자녀들의 사생활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그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통령이 되는 것과 비서실장― 노무현 정권에서 비서실장을 지냈던 것처럼 ― 이 되는 것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할지 물었을 때, 그는 대통령도, 비서실장도 되기 이전에 누렸던 자유를 선택했다. 비서실장을 지낸 이후 문 대통령은 고향인 양산으로 돌아갔으며, 대선 후보 출마 제안을 거절했다. 양산은 부산 인근에 위치해 있다.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던 순간은 2009년이다. 그 해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가까운 친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두 분은 진보성향의 전직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이 2008년까지 집권했다. 이후 9년 가까이 보수정권이 연속으로 집권했다. “민주주의 발전, 인권 개선, 남북 관계 개선이 모두 후퇴했다”고 문 대통령은 말했다. 문 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개인의 죽음을 넘어서는 더 큰 국가적 중요성을 부여했다. “나는 위기감을 느꼈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고 문 대통령은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불과 3퍼센트 포인트의 표차로 석패를 했던 것이 그의 신념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문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참모들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그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했고, 라이벌 정치인들은 그의 대선팀이 훨씬 더 능란하고 수완을 갖추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는 결국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은 과거와의 결별을 강조하는데 공을 들인다. 문 대통령의 검소한 집무실에 값비싼 장식품이라곤 벽에 걸려있는 삼성의 대형 평면 TV 스크린 두 대와 옆에 놓인 LG 모니터뿐이었다. 모니터 하나는 최신 고용통계 수치를 보여주는 일자리 현황판이다. 다른 스크린의 선형 그래프는 평균 근무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고용을 진작하고, 길기로 악명 높은 한국의 근로일수를 줄이길 원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는 일자리이다. 과거 본인도 과로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문 대통령은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성공의 방정식인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혼자만이 아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연차휴가를 써왔으며, 청와대 참모들과 장관들에게도 연차휴가 사용을 독려해 왔다”고 문 대통령은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작년 연차를 모두 사용하지 못했음을 인정했고, 올해 다시 한 번 연차소진을 목표로 세웠다.
중국의 보이콧과 미국의 관세에 직면해서도, 한국 경제는 놀라울 정도의 견실함을 입증했다. 앞서 언급한 전자기기 대기업들의 기록적인 실적에 힘입은 바 크다. 올해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수준에 도달해 공식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한다. 문 대통령이 대학에 입학했던 1970년대 한국의 평균임금은 300달러에 불과했다. 이러한 획기적 성과를 거둔다면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기적에 또다른 장을 추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번영엔 대가가 따랐으며, 삶의 질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면서 정치적 의제가 되었다.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통과되어야만 하는 개혁법안과 다른 법안들이 산적해 있다”고 문 대통령은 말한다. 문 대통령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여야의 정치적 이해가 국가와 국민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시위를 벌인 촛불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았다고 믿고 있는 권한을 상기시키며 이같이 말했다. “야당도 민생을 위해선 초당적으로 협력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집권 1주년이 다가오면서, 문 대통령은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몇몇 상징적 제스처만으로 자신의 대통령 임기가 지나가 버리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현재 정부의 목표는 2022년이 되면 정치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적폐 청산 뿐 아니라 나아가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 대통령의 성공 혹은 실패를 가늠할 수 있는 강력한 징후는 6월에 드러날 것이다. 문 대통령은 6월에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를 약속한 바 있다. 정부 권력 분산, 지방 분권, 인권 증진이 1987년 한국이 민주화를 어렵게 쟁취한 이후 첫 개헌의 핵심 내용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3월까지 국회가 국민투표실시 발의안에 합의를 보지 못한다면,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한국은 정치가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문 대통령은 말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확인하였으며, 그러한 시민들의 역량을 정치권이 거스르지 못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