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끝났다
12월 25일.
지금 사는 곳이 원래도 조용한 동네지만, 오늘은 하루종일 창밖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한국에서 경험했던 크리스마스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시내의 번잡함이 생각났다면, 영국에서 경험한 크리스마스는 11월말부터 일찍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돌입해 12월 22일 정도면 마무리한다.
그리고, 24일부터는 일찍 퇴근해 26일 박싱데이까지 가족과 함께 '고요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 같다.
그전까지는 이 세상에 크리스마스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분위기였다.
리젠트 스트리트에 불이 밝혀지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백화점들은 크리스마스 대목을 위해 아름다운 장식을 내외부에 달았다.
코벤트 가든의 크리스마스 모습.
거리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기념품 뿐만 아니라 먹거리, 그리고 맥주까지 사람들을 모은다. 사우스뱅크센터 옆 크리스마스 마켓도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휩쓸려 다녀야해 사진 한장 찍지도 못했다.
자연사박물관의 명물, 티라노사우르스도 크리스마스 점퍼를 입고 관람객을 맞는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일정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캐롤 같이 부르기. 바비칸 센터에서 열린 음악회를 찾았는데, 공연 마지막에 합창단과 관객 모두 함께 캐롤을 불렀다. 이날 지휘를 맡은 젠킨스는 80년 인생 처음 크리스마스 공연이라고 했다. 여러 공연장에서 크리스마스 음악회가 열리는데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리는 캐롤 합창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흠뻑 젖게 만든다. 23일 바비칸 음악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우스뱅크센터 크리스마켓은 이제 문을 닫았는지, 그 많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적막했다.
그리고는 이제 기차가 멈춘다. 24일 이브엔 기차는 밤 10시가 막차. 25일 크리스마스 26일 공휴일, 기차 운행은 완전 중단. 27일과 28일은 워털루역 구간 공사로 인해 운행 중단. 파업때 멈출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크리스마스때도 매년 운행을 안한다고 한다.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서 운행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철도 노동자도 크리스마스때 쉬어야 하니 기차를 중단하는 게 양해되는 것일까.
그리고 25일 오후 3시에는 모든 방송에서 왕의 크리스마스 기념 연설(?)이 나온다. 올해는 찰스 3세의 연설 뒤 우크라이나 오페라 코러스의 캐롤이 있었다. 영국 왕의 연설 뒤 등장한 우크라이나 전통 복장. 러시아의 침략에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영국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짐작된다. 미국이 한발 빼려고 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영국을 포함한 유럽이 러시아에 밀릴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는 이 사회 곳곳에서 점차 강해지는 느낌이다.
크리스마스는 서구 사회에서 어떤 의미일까.
한국에서 경험했던 크리스마스와는 크게 다른 느낌이다. 종교적 행사이기도 하고, 종교를 빙자한 연말 연시 분위기 같았는데, 여기서 본 크리스마스는 이 사회의 정체와 맞닿아 있는 듯 했다. 카톨릭이든 기독교이든 사회 근간에 종교가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고, 이는 가족이 모두 결집하는 행사로서 다시 각인된다. 이러한 관습은 전체 사회의 일정표를 정하기도 하고, 문화로서 모두가 공유하는 밑바탕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보다 더 강력한 게 저변에 있는 듯도 하지만, 아직 영국을 좀더 경험해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럼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