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의 유럽 가족 여행 경험담
우리 집안의 내 역할 중 하나는 가족 휴가여행에 대한 모든 걸 계획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이 중책에서 그간 좀 해방됐는데 2023년 여름, 다시 Chief Vacation Officer의 역할은 컴백했다. 지금 나는 노르웨이 가족 여행 중, 그것도 크루즈 배 안, 4층 라운지에 앉아 지나가는 피요르드의 절경을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네덜란드로 살러 온 후로 우리는 거의 매년 유럽 여행을 해왔다. 2019년 여름, 남부 유럽의 무더위에 놀란 이후, 우리는 2020년에는 노르웨이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2019년 겨울에 대부분의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왔고, 2020 년 했어야 하는 여행을 2023년이 되어서야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유럽에 온 다음 해인 2014년, 이태리 여행을 시작으로, 독일 라인강에서 알프스지역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 여행이 2015년이었고,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매일 흥청망청 먹고 마시던 2016년, 2017년에는 런던 그리고는 작지만 아름다운 슬로베니아 두 곳을, 2018년의 그리스 아테네 및 크레타섬 여행, 그리고 프랑스/알프스/이태리의 2019년까지. 정말 부지런히 다녔다.
유럽에서 살기로 결정한 대에, 이곳의 수많은 여행지의 역할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파리와 런던을 지방도시 가듯 다닐 수 있고, 알프스의 스키장 및 프로방스 해변, 그리스의 유적지와 스칸디나비아의 오로라를 맘대로 골라 구경 다닐 수 있는 곳...이것이 유럽 와서 일하라는 제안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였다고 이제야 고백한다.
여행하는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 그 가족의 성향이 꽤 잘 보이지 않을까 예상된다. 우리 집의 경우, 여행사의 패키지를 안 쓴다는 점, 여행 3-6개월 전엔 모든 예약까지 마친다는 점, 한 번의 여행이 주로 2-3주의 기간이라는 점이 패턴인 듯하다. 이제 막바지인 노르웨이 여행을 다시 곱씹으며, 내년 여름의 계획을 나도 모르게 이미 생각하고 있는 나. 그간 유럽 여행 계획하며 배운 것들은 뭐가 있을까.
목적지 정하기 : 모두(?)의 버킷리스트를 포함하는 여행 루트
우리가 네덜란드에 살기 시작한 게 2013년 8월 중순부터였는데, 그 해 10월 말 가을 방학을 맞아 주말여행으로 파리에 갔었다. 남편은 그의 오랜 버킷리스트인 루브르 박물관을 조급하게 보고 싶어 했다. 사실 나한테 루브르는 이름만 거창했지, 실제로 좋아하는 작품이 많기론 오르세 미술관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있어, 남편의 그런 루브르 열망이 좀 신기했었다.
가족의 버킷리스트가 모두 다르기에, 여행의 목적지 결정은 쉽지 않다. 모두의 관심사와 열망하는 관광지들을 잘 섞어서 계획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겠다. 우리 집에서 지난 몇 년간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휴가지의 조건은 수영장이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던지 땡볕에서 물놀이만 할 수 있으면 다 좋았다. 해서 2019년의 여행을 파리-로와르 밸리-스위스 알프스-이태리 가르다 호수를 경유하는 로드트립으로 정했었는데, 수영장 있는 숙소 구하는데 방점을 찍었더랬다. 파리와 로와르밸리에서는 아예 풀이 있는 집을 빌렸었고, 다시 이태리로 와서 역시 수영장 있는 리조트에서 지내며, 오페라도 보고 주변 관광을 했다.
그러나 매번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4년 전의 예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노르웨이는 한여름에도 선선하고 때로는 추운 날씨를 보이기도 하는 휴가지인데, 이유야 어쨌건, 여름에 태양과 물놀이가 없는 휴가지를 왔다는 이유로 둘째 딸애의 빈축을 샀다. 입이 툭 튀어나온 딸 애는 휴가 기간의 절반을 방 안에 틀어 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가족 구성원들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들은 매년 달라진다. 아이들은 커가고, 우리 부부나 부모님의 컨디션도 늘 같지 않다. 가족 여행의 리더로서, 항상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다. 내년 휴가지로 아일랜드-스코틀랜드를 잠깐 생각했었다. 너무 멀지 않아면서 무더위를 피할 수 있고, 웅장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으며, 도시엔 풍부한 문화와 예술적 볼거리도 있는 곳이니 조건들이 제법 들어맞는다. 숙소 고를 때 수영장이 있는 곳을 적당이 포함한다면, 둘째 딸한테도 나쁘지 않은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교통수단 : 탈 것 정하는 문제는 탈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한 숙소에서 평균 3.5일 정도를 머문다. 그보다 짧으면 짐을 쌌다 풀었다 하며 이동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의 비중이 너무 높아지고, 그보다 길면 그 지점에서 볼 것을 이미 다 봐서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17일의 여행을 계획한다면 보통 5-6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한다. 이 때 루트를 정하면서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게 교통수단이다.
가족 단위로 움직인다면, 내 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 마이카 로드트립의 비용 절감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휘발유값만 있으면 4-5명의 교통비가 모두 소화되니 말이다. 그러나 운전하는데 들일 시간과 그로 인한 피로도, 특히 운전자의 스트레스를 감안해야 한다. 우리는 2015년의 독일, 2016년의 프로방스, 그리고 2019년의 파리-로와르 밸리-스위스 알프스-이태리 여행을 온전히 운전으로 해결했다. 하루에 500킬로 이상, 전체 여행에서는 3-4,000 킬로 이상을 이동하게 되니 차에서 지내는 시간이 여행의 1/3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이게 가능하려면 우선 운전자가 적어도 두 명이어야 한다. 그래야 피로도 나누고, 마음도 놓인다.
차를 대동하기로 결정했다면 숙소의 주차장이 무료인지 체크해 봐야 한다. 크고 유명한 관광도시의 휴가철 주차는 만만치 않기 때문에, 차가 있는 경우는 도시 외곽에 숙소를 정한다. (반대로, 차가 없으면 도심 속 숙소를 찾는다.) 2019년 파리에 갔을 때, 우린 파리에서 25분 떨어진 외곽의 작고 아담한 마을에 에어비앤비를 잡고, 차는 거기에 둔 채로 대중교통을 사용해 시내 관광을 나왔다. 그러다가 다음 도시인 로와르 밸리로 이동할 때는 다시 차가 그 활약을 하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경우, 처음엔 로드 트립으로 계획을 짰다가, 코로나 지나 다시 계획 보정을 하면서 차를 두고 가는 쪽으로 정했다. 일단 1) 오슬로까지는 암스테르담에서 비행기를 타고, 2) 베르겐으로 옮길 땐 경치로 유명한 기차 노선 Oslo-Bergen Line을 이용하고 3) 그다음 단계는 피요르드를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해주는 크루즈로 베르겐 - 로포텐 구간을 이동했다. 이동 자체가 관광의 일부가 되도록 짠 것이다. 노르웨이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로포텐 섬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운전으로 커버하기엔 노르웨이의 남-북 거리가 너무 멀었다. 지금 와서 보니 차 없이 하길 잘 했다.
이것저것 다 해본 지금의 결론은, 여행을 좀 더 쾌적하게 하려면,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나 편안함이 너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집에서부터 차를 가지고 가느냐, 아니면 비행기-기차-버스-렌터카를 적절히 섞느냐는, 여행 계획 초반에 해야 하는 중요한 결정 사항이고, 목적지, 동반 운전사 유무, 예산 등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아이들을 동반하고 게다가 한국에서 매년 오시는 부모님까지 감안하는 휴가 계획을 짜려면 실제로 여행을 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조사와 부킹, 그리고 각종 확인 하는데에 보내야 한다. 처음 몇년은 여느 장기 프로젝트 못지않게 힘들고 정신없었다. 하지만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희열과 배움이 있다. 심지어는 여행의 가장 설레고 행복한 순간은 그 여행을 상상하면서 계획하는 과정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다음엔 숙소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