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십 대의 딸들을 키우고 있는 요즘, 내가 정말 얼마나 형편 없는 엄마인지 종종 느끼고 있다. 그런데 엄마라는 잡이 또 얼마나 강한 멘탈을 요구하는지, 자신감이 줄어들수록 나의 중심은 흔들리고 그나마 간당간당한 엄마 스킬은 오히려 추락해 패착만 더 두게 되니, 이 악순환이 너무나 힘들다.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우리는 신사임당과 삼천지교의 맹모를 좋은 어머니의 표상으로 배우고 자랐다. 조금 나이가 들어서도 정트리오를 키워 낸 이원숙 여사와 가수 이적의 어머니인 박혜란 교수의 책을 사서 봤을 만큼 나 역시 전통적인 '훌륭한 어머니' 상, 즉 아이들을 명문학교에 주르르 집어넣거나 사회에서 인정하는 출중한 인문인 또는 예술인으로 키워낸 이들을 알게 모르게 동경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현재 12세 16세의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나의 현실은, 하루에 3시간의 유튜브 시청과 2시간의 틱톡질도 모자라다고 발악하며 대드는 애들과의 씨름의 나날들이다. 성적이 우수한 걸 바라긴 커녕, 그저 낙제하지 않으면 잘했다고 엉덩이 토닥해주는 그런 눈높이. 작년부터는 함께 휴가지에서 2주 이상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로 애들은 이제 많은 개인의 자유시간과 공간이 중요해지고, 나름의 우울감 등이 이슈로 떠올라 이젠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여행'이라는 경험도 막을 내려야 할 때인가, 생각 중이다.
아이들은 유튜버들로부터 세상사는 법을 배우고 케이팝 스타들의 성공에 열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듯하다. 넘쳐나는 스트리밍 콘텐츠는 하루에 6시간도 쏜살같이 날려 보낼 만큼 짜릿해서 어떤 자연의 절경 앞에서도 우세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 세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내가 배워 알고 있는 인생의 낡은 지혜들을 굳이 힘들여 알려줄 필요가 있는 걸까?
내가 자란 그 세계에서는 기본적인 독서양을 채워야 문서화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하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기에 공부를 못해도 적어도 독서는 하라고 했었다. 글을 많이 읽고 쓰고, 풍부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말을 구사하는 것은 부럽고 귀중한 인생의 기술이라 다들 믿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애들 보고 책 좀 읽으라 하면 나를 외계인 보듯 쳐다본다.
내가 자란 그 옛날 고리타분하던 시절엔 어른들의 이야기라면 그것이 옭건 그르건, 대꾸 없이 조용히 경청해야 했다. 모든 이야기가 똑같이 영양가 높지는 않았지만, 나한테 도움 되는 것만 쏙쏙 빼내 들으면, 비교적 쓸모 있는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러나 개인의 생각과 아이들의 목소리의 중요성이 재차 언급되는 요즘, 어떻게 애들과 민감한 사안에 대해 소통해야 하는 건지 난감하다. 충고와 조언이 인터넷에 그렇게 넘쳐날진대, 엄마가, 또는 할머니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들면 경청은 커녕 드러내고 거부하는 아이들에게.
아마도 나의 이런 걱정 뒤에는, 점점 더 화면(screen)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배우는 우리의 환경에 대한 탐탁지 않은 시선이 깔려 있으리라. 세상과 또 타인과 직접 부딪치면서 기존의 두려움을 하나씩 극복하고 나에 대해 배워 나가는 게 인생의 큰 진리라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 점점 더 많은 일들을 화면을 통해 해 내는 요즘의 추세는 특히 아이들에게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갈 작은 용기 나마 앗아가 버리는 빌런이란 생각을 난 지울 수가 없다. 화면 속 모든 자극들이 우리 인간의 회피 본능을 극대화시켜 결국 우리는 화면 뒤에 숨어서, 눈알만 바쁜 그 엔터테인먼트의 지옥에서 영영 나오지 못할 것 같다. 세상이 내가 걱정하는 시나리오 속으로 직진해 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아이들을 어떤 말과 행동으로 이끌어줘야 하는지 나는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빠른 변화들, 그것들을 나보다 더 빨리 흡수해 버리는 나의 아이들은 어떻게 서로서로, 또는 세상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를 하면서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Netflix, Tik Tok, Snapchat, Youtube, K-pop, AI의 홍수 속에서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과연 무얼까?
나는 내가 어려서 배웠던 것들과, 그것들의 어떤 부분이 내 인생에서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기억들이 모여 다른 해결책들을 제시해 주었고, 그걸 바탕으로 난 또 여러 가지 지혜를 얻었다. 그러나 그건 80년대에 십 대를 거친 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며, 아무리 최근에 깨달은 것들이라도 아이들에게 적용하기엔 너무 격차가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니, 나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준들, 과연 소용이 있을까? 내가 살아온 길은 하나이고, 이것 말고는 경험해 본 바가 없으니, 이거 말고는 줄 게 없는데, 만약 이걸 거부하면 어떻게 하나? 아이들은 이미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또다시 유튜브를 보며 인생의 무게에 대해 망각하길 희망하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우리 부모님들의 '내가 옳다'는 그 고집스러운 주장, 그 이면에는 엄마로서, 부모로서 흔들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내가 옳으냐 옳지 않냐를 가지고 하루에도 백번 자문하고 자책하게 되는 내 마음이 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엔 내가 옳다고 완강하게 믿고 견고하게 철칙을 지켜내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원칙이 아닐까. 종종 굳은 결심을 해보지만, 아이들의 강한 요구 앞에 쉽게 흔들리는 줏대 없는 엄마가 된 나를 보며 한숨 짓는다.
새삼 우리네 부모님들의 강인함이 부러워지는구나.
좋은 엄마이길 포기하고 '그냥 엄마'로 만족하고 지내야 할 것 같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