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닝의 인생 교훈

정원가꾸기를 위한 5년의 시도와 후회

by 워너비 아티스트

서울 토박이의 무모한 가드닝 야심


처음부터 정원 관리는 내가 혼자 하겠노라 호언장담을 하고 구한 집이어서 정원 가꾸기에 남편은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그나마 첫 5년은 잔디는 깎아줬는데, 그것도 너무 힘들어해서 내가 인계받은 지 오래다.


2015년 이사 와서부터 정원은 최소한의 관리만 했다. 잔디도 정말 정강이까지 올라오면 깎고, 집 앞의 담처럼 두른 나무도 옆집 앞집 비해 너무 지저분해져야 손을 댔다. 마당이 큰 집을 떡하니 사놓고 그리 손을 놓고 있으니 매년 쌓여가는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정원을 가꾸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내 자유시간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을 알았기에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회사 생활, 그리고 어린아이 둘이 있는 나의 일상은 가드닝을 위한 틈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정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져 가던 와중에 코로나가 온 거다. 집 밖 어디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니, 난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출퇴근에서 세이빙 되는 시간을 우선 정원에 썼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있다 보니 헛헛해진 정신줄에 산소를 공급해야 할 때는 30분간 잡초를 뽑았다. 북유럽 해가 밤 10시 반까지 떠 있는 여름엔 저녁식사 후의 시간을 왕창 정원에 썼다. 그렇게 어찌어찌 틈틈이 애를 써서 2020-2021년 사이, 정원의 기본 틀을 만들어냈다.


그 기본 틀이라는 게 뭐냐면 꽃을 심을 자리를 좀 만드는 거다. 당시 정원은 두터운 이끼층이 가득하고 크고 작은 나무들이 촘촘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어디에나 잡초가 아주 빽빽이 자라고 있었다. 뭐를 심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드는 것 까지가 엄청난 일이었다. 아예 나무를 베거나 뽑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 아니면 이끼와 잡초를 깨끗이 정리해야 했다. 이렇게 1 제곱미터씩 뭔가를 심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들면서 넓은 정원을 조금씩 정리해 나가는 일을 말한다.


나의 초보 가드닝, 뭘 잘못했나?


그런데 나의 가드닝 실력이, 또는 정원의 상태가 지난 5년간 출중하게 좋아졌다고 말을 못 하겠다. 들인 돈과 시간에 비해 너무 느린 발전 속도라고만 느껴진다. 뭘 잘했고 뭘 잘못했을까. 이 참에 한번 셀프 리뷰를 해보겠다.


1) 흙에 소홀했다.


흙을 제대로 관리한다는 것은 일단은 체력적으로 힘이 들고 - 엄청난 삽질이 필요함 - 두 번째는 돈이 든다. 이런 이유 말고도, 사실 흙이 척박하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잡초만 뽑고 나면 그 자리에 얼른 예쁜 무언가를 심고 싶다는 급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화분을, 아니면 씨에서 나온 모종을 옮겨심기에 급급했다. 결국 뭔가가 피기는 하는데, 꽃의 개수나 키가 부실했고, 그러다 보니 벌레 공격도 더 받고 해서 반타작 정도의 성공확률밖에 못 이뤘다.


모든 가드닝 책에서는 흙의 개선을 항상 첫 챕터로 둔다. 그만큼 기본인 거다. 몸매가 좋아야 옷의 맵시가 사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일의 생산성이 느는 것처럼. 그런데 나는 이것을 반신반의했달까, 아니 끝까지 요행을 바랐달까. 나만의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을지도 몰라, 하면서. 이 중 반만 살아도 괜찮아, 하면서 그냥 자리만 나면 심기 바빴다.


작년에 가드너의 적극 추천으로 한쪽 꽃밭을 업체를 써서 흙 업그레이드를 했다. 돈을 좀 써 본 셈이다. 결과는? 같은 꽃을 심어도 거기 꽃대는 크고 굵다. 꽃도 더 많이 핀다. 당연한 거다. 이렇게 내 눈으로 안 봐도 상식으로 다 아는 얘긴데, 막상 내 정원에서 목격하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그래, 내가 틀렸고, 요행은 없다.


그나마 내가 하던 흙관리는 정원 구석진 곳에 가을 낙엽과 깎은 잔디를 모아 거름을 만들어 봄마다 여기저기 뿌려 준 것이다. 조금씩 흙의 질이 좋아짐을 느끼기는 했는데, 기본적으로 이게 우리 정원 전체를 커버하긴 양이 부족하다. 안 한것 보단 낫지만 부족했다.


올핸 반성의 해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정원에 들이는 정성, 기본에 충실할 때 나오는 결과, 이런 걸 직접 봐왔다. 그래서 나도 가을 낙엽 정리하며 거름더미를 기존의 3-4배로 늘렸다. 부엌에서 나오는 야채 과일 커피 달걀 껍데기도 버리지 않고 땅에 묻고 발효시킨다. 처음으로 돈주고 소똥거름을 사서 투척하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진작할 것을, 옆에서 남편이 계속 똥냄새나면 어쩌냐는 말에 괜히 신경을 썼다.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말이지.


2) 민달팽이 소탕에 실패했다.


이 동네의 날씨는 비가 7-8월 빼고 일 년 내내 지속적으로 오는 편이고 전체적으로 차고 습한 날이 많아 달팽이들이 많다. 특히 올해는 그 피해가 막심했는데, 정원을 한 시간 돌면 민달팽이 200마리를 잡았다. 매일 잡아도 매일 이만큼 나왔다.


사실 2022-2023년은 달팽이 잡는데 너무나 지쳐, 포기를 했었다. 달팽이가 안 먹는 꽃을 키우면 달팽이 스트레스 덜 받고 살 수 있을 거야,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웬걸, 안 먹는 꽃이 거의 없었다. 특히 모종들을 옮겨 심고 나면, 며칠 만에 싹 다 없어지곤 해서, 과장 안 하고 홧병에 걸릴 뻔했다.


올봄 다시 힘을 내 달팽이와의 전쟁을 재개했는데, 올해 전 세계적 달팽이 폭주라더니 우리 정원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다. 이른 아침 또는 해가 질 무렵, 냉면사발만 한 용기를 들고 젓가락으로 담아내면 순식간에 달팽이로 꽉 찼다. 그래서 이번 여름, 처음으로 달팽이 약을 쳤다. 집에 고양이가 두 마리라 독성 있는 물질을 쓸 수가 없어 그동안은 손으로 잡아 죽이는 게 다였다. 근데 마침 동물한테 해가 없는 오가닉 버전이 나왔다 해서 한 통을 써봤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약을 쓴다는 건 대체적으로 기분이 찝찝해서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쓸 예정이지만, 적어도 올해 아마 이게 없었다면 나는 또다시 가드닝 포기를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는 언니에게 과일 효소 이야기를 들었다. 과일 껍질을 잘게 썰어 설탕과 물과 섞고 발효를 시켜 식초로 만든 뒤 희석해서 꽃에 뿌려주란다. 이게 아마 한국서 친구가 한다는 막걸리에 사카린 섞어 쓴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이걸 하면 달팽이 피해가 없단다. 그래서 지금 기대 만발이다. 우리 집 사과껍질은 죄다 식초화 되고 있다. 내년 봄, 나는 달팽이와의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다.


3) 작은 비닐하우스의 큰 역할


가드닝 초반부터 지금까지 매년 씨를 심어 기르는 꽃의 양이 꽤 된다. 이게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재미가 쏠쏠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텐데, 식물도 약하고 여릴 때 좀 더 세심하게 보호해 줘야 잘 자랄 수가 있다. 어린 그때 잘 케어해 주지 않으면 커서도 결국은 문제가 생긴다.


좋은 씨와 좋은 흙이 있다면 일단 준비는 되었고, 그다음은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줘야 한다. 씨는 보통 좀 추울때 시작을 하니, 뚜껑 있는 씨트레이 (seed tray)에 씨를 심고 실내에서 잘 관리해주면 싹을 보게 된다. 그렇게 한 5센티미터 정도 크고 나면, 그다음이 문제다. 네덜란드는 3,4월에 아직 해가 무척 약하고 바람이 불고 비도 꽤 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따뜻한 봄날씨가 거의 5월까지 드물기 때문에 이런 어린 모종들을 정원으로 옮겨 심어버리면 반타작 밖에 못한다. 그 사이 달팽이 식사가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5월까지 그 많은 모종들을 다 집안에서 키우기엔 놓을 자리도 없고 집도 엉망이 된다.


그래서 올해 처음, 작은 비닐하우스를 설치했다. 알루미늄 틀에 비닐 옷을 입힌 구조물인데, 바람과 비, 심한 온도차로부터 어린 식물들을 보호해 주어, 모종들이 훨씬 빨리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목격했다. 이 역시 꼭 필요한 투자인데 좀 늦게 시작한 감이 있다.


IMG_1411.jpg 가을에 구입한 미니 비닐하우스. 35유로 정도의 괜찮은 투자.


4) 결국 뭐든 대충 하면 결과도 대충이다.


내가 하던 광고일은 클라이언트한테 좋은 제안서를 쓰기 위해 한 달 정도는 미친 사람처럼 매달려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조금이라도 더 무게 있는 근거와, 대담한 설득력, 매력적인 아이디어로 채우기 위해 글자 한 자 한 자 완벽을 기해 만들어 내곤 했다. 그에 비해 가드닝. 그런 건 좀 대충 해도 될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취미이고 좋아서 하는 건데 뭘 그리 애를 써? 적당히 즐기며 하면 될 거야. 그렇게 접근했다. 그랬더니 결과도 적당했다.


나처럼 흙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온갖 꽃과 풀만 사다 심으면 그냥 일년짜리 식물이 잠깐 왔다 가는 겪이 되고 당연히 꽤 많은 비용을 그냥 흘려버리게 된다.


물론 회사 일이 폭풍처럼 몰아쳐 정원에 도통 몇 달째 못 나가 보는 상황도 있고 중요한 시간을 놓쳐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내 사정이 어쨌건 계절은 오고 또 간다.


이젠 좀 깨달을 때도 되었는데 난 지금도 삶의 구석구석에서 요행을 바란다는 걸 한숨 쉬며 인지 중이다. 남들이 다 해보고 입을 모아 전해주는 진리와 충고를 왜 안 듣고 내 식으로 먼저 해본다 깝죽거리는가. 나라는 사람의 이런 면을 이제라도 좀 짚고 가야겠다. 앞으로도 또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니, 이번 가드닝의 교훈을 잘 간직하리라.


가드닝 6년 차가 되는 내년의 기대


지금이라도 좀 더 혼을 다해 좋아해 주고 정성을 들일 생각이다. 가드너 플로리스트에겐 정원이라는 공간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 누가 뭐래도 여전히 가드닝은 세상 그 어떤 활동보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고상한 살아있는 예술 창작의 세계이다.


이런 좌충우돌 중에도 가드너 플로리스트라는 명함을 가능하게 한 우리 정원의 star player 꽃들을 다음 편에 소개하겠다.



*www.flowerandflour.nl 를 통해 정원에서 각종 플라워 웍샵을 합니다. 보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