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의 가드닝을 통한 최애 꽃과 꽃작품들 (네덜란드)
나는 가드닝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정원이 있는 집을 샀다. 수년간의 무관심으로 이 소중한 공간이 점점 정글이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 집의 카오스를 좀 손보기로 결심하였다. 옆집 소개로 전문 가드너를 만나 정원을 보여주던 나의 주문은 단순했다 - "꽃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정원의 꽃을 이용하여 부케도 만들어 판매하고 웍샵도 하고 있으니, 꽃을 심기 시작한 5년 전에 비해 우리 정원은 제법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나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초짜이고, 나 스스로에 대한 가든자격지심은 이전 글에서도 공유하였다.
그래도 어쨌든 그간 많은 식물들을 키워 보거나 시도를 했었다. 처음에 어슬픈 성공을 했다가 후에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처음엔 안 되다가 뒤로 가서 잘 되는 경우도 있다. 5년간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재배 성공율과 꽃꽂이 이용도 만족감을 모두 주는 꽃 리스트를 정리해 보려한다.
1) 작약 (Herbaceous peony) :
내가 키우고 있는 작약들은 네 종류인데, Peregrina (붉은색), Festiva Maxima (전체적으로 흰색 & 안쪽에 자주색), Petit Renee (진한 핑크색), Bowl of Beauty (겉은 연핑크, 안은 크림색) 이다. 작약은 크고 우아해서 보는 이들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켜 버린다. 장미에 버금가는 향기도 지니고 있어 꽃을 눈앞에 두고 보고 있으면 황홀함을 느낀다.
꽃이 피는 기간이 짧고 조금만 날이 더우면 갑자기 개화를 해버려 꽃꽂이에 쓰기엔 좀 까다로운 꽃. 하지만 작약이 풍성한 한 달은 (5월 중순이나 말경부터 한달 정도 꽃이 피고 진다) 특별한 꽃꽂이를 해볼 수 있기에 내 정원의 가장 비옥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구근은 Peony Shop Holland에서 구매하였다. 2020년 겨울에 하나에 8-10유로 가량에 구입했던 걸로 기억한다. 정원 뒤쪽의 남향 자리에 심은 11그루는 지금까지 너무 잘 자라고 있고, 꽃도 잘 펴준다. 지난여름, 처음으로 꽃의 양이 줄어든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겨울과 내년 봄, 질좋은 거름을 줄 계획이다.
작약은 키우기 쉬우면서도, 엄청난 내공의 정원사라는 인상을 주는 꽃이어서 누구한테 보여줄 때마다 어깨가 으쓱한다. 아마도 키우기 까다롭다는 평판이 좀 있어서 그런 듯 한데, 봉우리 생기면 지지대를 해 줘야 하는 것 말고는 손 볼일이 없다. 피기 직전까지 꽃 봉우리에 개미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나, 잘라 쓸 때는 괜찮아지고, 가끔 있어도 털어 쓰면 된다. 무엇보다 민달팽이가 관심 안 갖는 식물이라서 맘 편히 기를 수 있다.
2) 장미 :
꽃 중의 디바답게 장미는 구설수가 많은 식물이다. 처음 리서치할 때 본 유튜브 몇 개가 다들 '장미가 무척 까다롭다고들 하는데...' 라고 시작을 하길래 겁을 먹고 괜스레 머뭇거렸던 꽃이 장미다. 그래, 꽃시장 가면 제일 흔하게 살 수 있는 꽃인데 뭐 굳이 이걸 심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처음 몇 년은 장미를 외면했다. 그런데 1년전, 용기내어 심어보니, 그리고 꽃꽂이에 써보니, 장미의 아름다움은 좀 차원이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드닝 업체를 써서 흙관리받은 우리 마당 프리미움 자리에 장미 Bare Root (나근)을 10개 정도 심었다. 역시 남향인 그 자리가 우리집 볕이 가장 좋은 자리인데, 장미는 일단 해를 많이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미는 뿌리의 특성상, 화분에 넣어 기르기가 쉽지 않은 식물이고, 따라서 살 때도 겨울에 나근을 사서 땅에 직접 심는 것이 건강하게 자랄 확률도 높고 값도 싸다.
어느 유튜브를 봤는데, 장미는 사실 엄청 강하고 죽이기 힘든 식물이란다. 어떤 기후에도 잘 적응한단다. 실제로 잔뜩 약을 치거나 하지 않아도, 잘 자라주는 식물이다. 가지치기 및 deadheading 정도만 신경을 써주고 있다. 아직 우리 집 장미들의 꽃의 양은 좀 미미한 편인데, 어떻게 좀 더 꽃의 양을 늘릴지가 다음 단계의 관건이 될 예정이다.
이곳의 날씨가 장미와 잘 맞는지, 초여름 피기 시작해서 초겨울까지 지속적으로 피고 지는게 장미이다. 그래서 장미를 집 앞의 잘 보이는 곳에들 심는 거다. 어릴 때 마당 있는 집에 살때 붉은 그리고 핑크색 장미가 있었다. 그래서 장미를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때 멀리했다가 요즘 다시 푹 빠진 이 장미가 너무나 예쁘다.
3) 헬레보어 (Hellebore) :
난 네덜란드 오기 전엔 이 꽃을 본 적이 없다. 우리 정원의 동백꽃들 모여 있는 자리, 키 작고 시커먼 다년생 꽃이 바닥에서 피어나는데 처음엔 좀 흉측하다고 생각했다. 브라운에 가까운 어두운 자주색이었고, 알다시피 헬레보어는 향이 전혀 없다. 첫 해는 아마도 내가 이걸 파내어 버리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뿌리가 어찌나 깊은지 죽이는 데에 실패한 셈이다.
그러다가 3-4년 전이던가, 헬레보어가 유행이 도는데, 플로리스트들이 이 꽃으로 그야말로 찬란한 작품들을 올리는 것을 보고 다시 보게 된 꽃이다. 찬찬히 보니 꽃의 종류와 색의 다양성이 엄청났다. 최근엔 수급이 많아져 예전보다 가격이 안정되었고, 한번 심으면 매년 꼬박꼬박 황량한 1-2월 부터 꽃봉우리를 맺기 시작한다. 지금은 색깔별로 사서 정원에 심고 있다. 죽이려 했던 그 자주색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모른다. 생각하니 미안하네.
헬레보어는 Waterdrinker Green Trade Center에서 주로 산다. 꽃이 은근히 늦봄까지도 계속 피어주니, 4-5개월 꽃을 볼 수 있는 식물 중 하나이고, 역시 손이 갈 곳이 별로 없는, 강하고 믿을 수 있는 반가운 친구같은 꽃이다.
4) 월플라워 (Wallflower or Erysimum Cheiri):
무릎 높이 가량 자라는 아담한 사이즈의 관목(bush)이고, 봄부터 가을까지 노랑, 주황, 보라색 등의 향기로운 꽃이 핀다. 영국의 유명한 가드너인 Sarah Raven의 책에서 그녀의 반복되는 '강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작은 여러 개의 꽃들이 비교적 선명한 색으로 피는데 꽃의 칼라가 약간의 그라데이션 (gradation)을 갖고 있어 꽃꽂이에 쓰기에 좋다. 꽃이 오래 가 정원의 잘 보이는 앞쪽에 어울린다.
월플라워는 가드닝 초반에 씨로부터 시작했다. 꽃씨는 Bloei & Groei에서 샀다. 첫 두 해는 꽃이 안 피고 그냥 초록의 줄기가 천천히 자란다. 잘 몰랐던 그 시절, 혹시 이게 잘못된 건가 싶어서, 뽑아 버릴 뻔한 적이 몇 번 있다. 3년차 부터 피기 시작하더니, 척박한 모래 땅인 우리 앞마당에서도 잘 자란다. 참고로 다년생 식물을 씨로부터 시작하려면 첫 1-2년은 꽃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를 인내를 갖고 기다려 줘야 한다. 대신 한번 자리 잡으면 매년 아무런 노력 없이 꽃을 피우게 된다. 작년에 보라색을 첨으로 화분으로 사봤다. 엄청나게 커지길래, 얼마 전 네 등분해서 옮겨 심었는데, 이 겨울을 잘 살아남고, 내년에도 풍성한 꽃을 주기를..
5) 다알리아 :
정원 가꾸기 시작하고 거의 처음으로 심은 꽃이 다알리아다. 큼직한 구근을 심자 싹이 쑥쑥 자라길래 이건 참 쉬운 꽃인가 했는데 웬걸. 민달팽이들이 다알리아를 한번 맛보면 그 한 그루가 죽어 나갈 때까지 먹어 치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겨울이 되면 이것을 땅에서 파내어 따로 보관을 한 뒤, 봄에 다시 심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다알리아로 부터 최대한의 꽃을 얻어내려면, 꽃이 시들기 시작할 때 deadheading 을 해줘야 한다. 잘라 주어야 새로운 꽃을 계속 피어 올리는 게 다알리아이다.
봄에 처음 싹이 나 한참 자라야 할 때가 달팽이 공격이 가장 심하다. 상황이 안 좋을 땐 어둑어둑해지는 밤에, 그리고 해가 막 올라오는 이른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slut patrol 달팽이 진압대'가 되어 소탕작전을 펼친다. 매일 1-2백 마리씩 잡아도 계속 나온다. 정말 꿈에 나올 지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알리아는 포기할 수 없다. 관리만 잘 해주면 정말 많은 꽃을 선사해 주기 때문에. 그리고 꽃의 색깔과 모양, 크기의 종류가 무한하게 많고 무엇보다 나에겐 첫사랑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두어가지 새로운 달팽이 진압의 아이디어가 있다. 맞짱 또 뜨는 거지. 일이 고단한 꽃인데도 생각하고 있으면 설레는 그런 꽃. 다알리아 구근은 Fluwel과 Waterdrinker Green Trade Center에서 구입한다.
6) 튤립과 수선화 :
아직 봄기운이 올까 말까 망설이는 4월, 네덜란드 여기저기를 찬란하게 장식하고 있는 튤립과 수선화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이 꽃들이 꽃꽂이에 하기에 얼마나 좋은 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모양과 색상을 모두 갖추고 있고, 화병에서 일주일은 너끈히 가는 꽃이다.
네덜란드에 사는 이상 매년 튤립과 수선화 구근을 정기적으로 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수선화도 튤립도 사실 포장지에는 다년생을 약속하지만, 이미 2년째가 되면 반 정도는 더 이상 피지 않는 듯하고, 3년 째는 더 남아있는 숫자가 줄어든다. 이래서 매년 주문을 하게 되는 법.
4월이면 선선한데도 큼직하게 다양한 색과 형태로 쑥쑥 피어주는 꽃들이라 플로리스트들에겐 정말 선물같은 꽃이다. Fluwel과 Waterdrinker Green Trade Center에서 구입한다.
7) 스위트피 (Sweet Peas) :
매년 쉬지 않고 기른 1년생 식물 중 하나가 스위트피이다. 야들야들한 꽃잎은 너무나 다양한 색을 자랑하는데, 레이스같은 모양이 꽃꽂이 할 때 전반적으로 아주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정말 유용한 꽃이다. 향은 또 얼마나 달콤한지.
스위트피는 그야말로 콩이라서, 씨가 큼직하니 심으면 일단 잘 자란다. 문제는 10센티미터 이상이 되면 무언가를 타고 자라는 넝쿨식물이기 때문에, 지지대를 해줘야 한다는 것. 나는 작년, 아이들이 더 이상 타지 않는 마당의 미끄럼틀을 이용하여 망을 설치하고 거기를 타고 올라가도록 스위트피를 주변에 심었다. 역시 deadheading 을 열심히 해줘야 꽃을 오래 많이 피어 올리는 식물이다.
처음으로 Fam Flower Farm 이라는 곳에서 주황색 스위트피 씨를 샀다. 아직 심지 않았는데 기대가 크다. 가을에 씨를 모아서 다음 해 봄에 쓰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저 콩씨들이 식물에 달린채로 까맣고 단단하게 여물때 까지 기달렸다가 가을에 수확한 뒤 봄에 심으면 된다.
8) 나이젤라 또는 니겔라. 한국말은 흑종초 (Nigella) :
처음 보고는 생김새가 너무 신기해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가, 하고 감탄을 했다. 하늘색, 파란색, 검은색이 막 섞이고, 펜으로 꽃잎 위에 낙서한 것 같은 무늬에, 들꽃치고는 그 모양이 참 오묘한 거다. 난 생전 처음보는 이 꽃이 유럽에서는 아주 '전통적인' 꽃에 속한다고 들었다. 엄마와 할머니가 키우던 꽃이라고들 표현하는 걸 봤다.
겨울을 잘 나기 때문에, 나는 주로 늦여름에 씨를 뿌리고, 5-6 센티미터의 상태로 정원에서 겨울을 나게 한다. 봄에 씨를 뿌리는 것보다, 이렇게 해주면, 초봄부터 성장에 스피드가 붙고, 훨씬 튼튼하게 자란다. 지난 2-3년간 좀 잊고 지냈는데, 지난여름 씨앗 뿌린 데서 싹이 제법 돋았다. 기대가 된다. 씨는 Bloei & Groei에서 구입.
9) 디기탈리스 (Digitalis) :
꽃꽂이를 해보니, 꽃을 보는 눈이 좀 달라진다. 처음 디기탈리스를 본 건 이 꽃에 열광하는 친구 덕분이다. 그녀가 '이게 내가 젤 좋아하는 꽃이야' 하며 첨 보여줬을 때 난 생각했다. 으 - 징그러. 그런데 꽃꽂이를 해보니 이 꽃의 남다른 카리스마를 보게 되었고, 심어보니 해충도 없고 꽃도 오래가더라는.
그래서 이젠 틈틈이 디기탈리스를 심는다. 정원이 있는 분들에게 적극 권한다. 씨에서 시작하고, 일반적인 씨 구입처에서 구입해도 무난하게 자란다.
10) 해바라기
예전에 심었던 해바라기는 그야말로 길고 굵은 꽃대에서 꽃이 달랑 하나가 피고, 그걸 쓰고 나면, 허무하게도 끝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종자 개량의 결과인지, 그냥 행운인지, 해바라기가 가지가 꽤 생기더니, 거기서 꽃이 대 여섯 개는 충분히 생기는 거다. 그것도 순차적으로 피어주니, 꽃을 하나 심어 놓으면 이게 여름 내내 쓰게 되는 거다.
요즘 해바라기는 색도 다양하다. 나는 참고로 갈색 해바라기를 노란색 보다 더 잘 쓴다. 그리고 꽃잎이 모두 떨어진 후에 가운데 동그란 씨 부분과 그 옆 녹색 꽃받침만 남은 해바라기를 사실 제일 좋아한다.
해바라기 씨 역시 쉽게 구할 수 있다. 최근엔 칼라나 사이즈 등이 매우 다양해졌으니 취향에 따라 구매할 수 있다. 너무 커지기 전에, 지지대를 해줘야 가을에 바람불 때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이상은 모두 내가 다년간 키워본 식물들이다. 그 말인즉슨 키우기가 비교적 쉽다는 뜻이다. 요즘 가드닝에 다시 열정을 불사르고 있어, 내년에는 좀 새로운 꽃들을 시도해 볼 계획이다. 이미 가을에 싹 틔워 정원에 옮긴 애들도 있고, 아직 씨만 사놓은 것도 있어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내가 가진 정원이라는 소중한 땅을 좀 더 잘 써보고 싶다. 누구는 매일 새벽에 눈 뜨자마자 꽃밭으로 향한다는데, 나도 그 정도의 부지런함을 실현해 봐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저자는 네덜란드의 Heemstede에 살면서 정원의 꽃으로 부케 제작 및 플라워 웍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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